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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표지, 알랭 드 보통이 2002년에 지은 책이고, 2011에 우리말로 번역됐다. 역자는 정영목.
 <여행의 기술>표지, 알랭 드 보통이 2002년에 지은 책이고, 2011에 우리말로 번역됐다. 역자는 정영목.
ⓒ 청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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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1990년 2월 즈음, 겨울의 막바지이자 봄이 오는 길목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대학 동기생 둘과 주머니 속에 달랑 만원 짜리 한 장만 쑤셔 넣은 채 여행을 떠났다. 친구 한 놈은 보헤미안적인 행색과 기행으로 인생의 멋을 좀 아는 녀석이었는데 그 친구의 안내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경기도 외곽의 덕소 어딘가 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시작된 히치하이크는 꽤 성공률이 높았다. 사복경찰관인 듯한 신사의 차를 얻어 타기도 했는데, 그 분은 과묵하고 표정도 없어서 우리가 어려워 했으나, 마음은 따뜻했던 모양이다. 휴게소에서 우리에게 밥을 사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대화가 아주 재미있었던 어느 노부부의 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얻어 타니 어느새 강릉이다. 강릉에서는 지금은 없어진 열차, 비둘기호를 타고 한반도의 등줄기를 훑어 내려갔다. 울산에 도착한 우리는 마중 나온 여자 동기생을 만났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했던 여행은 그렇게 오래도록 흐뭇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이면 당시 거리의 레코드 가게에서 울려 퍼지던 유행가를 우연히 다시 듣거나 동창회에서 이젠 머리도 벗겨지고 얼굴엔 주름이 자글거리는 그때의 친구들을 발견할 때 갈색추억으로 되살아난다.

기억 속에서는 아름답게만 남은 여행이지만 사실 무전여행은 무한한 고통을 수반한다. 얻어 탈 수 있는 확률이 높긴 했지만 시커먼 사내 세 명을 태워줄 자가용 운전자가 나타나지 않을 때면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셋이 일렬로 뚝 떨어져서 걷노라면 신세가 그렇게 처량할 수 가 없다. 그런데 비까지 부슬거린다. 2월이었으므로 겨울 비. 여행은 비극이 된다.

그래서 1884년에 출간된 J.K. 위스망스의 소설 <거꾸로>의 주인공, (파리에 사는) 데제생트는 디킨스의 소설을 읽다 말고 런던을 여행하기 위해 짐까지 싸서 집을 나섰다가 온갖 거추장스럽고 피곤한 물리적 고통을 상상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여행의 현실과 기대가 일치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이렇게 현실과 기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화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목조 오두막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여행 중 발생한 일행들과의 불협화음은 아름다운 여행지를 감상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여행지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몰이해와 원한에 휩싸인' 여행자의 고통과 불행은 더욱 심화된다. 여행의 기대와 현실이 다를 수 있는 두 번째 지점이다.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라고 했던 보들레르의 말에 따르면 그래도 우리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떠나기로 결정했다면, 목적지는 어디로 해야 하는가. 여행지에 대한 저자 드 보통의 생각은 '목적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욕망은 떠나는 것이었다.' 떠남 그 자체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싫어하는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를 떠나 어디로든 떠나고자 했던 보들레르를 떠올리면서.

그렇다. 진정한 여행을 위해서는 굳이 특별한 곳으로 향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저자의 설명대로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기' 때문에 떠나는 행위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라며 소크라테스처럼 여행의 목적을 설명하는 저자의 멋진 말은 우리의 동의를 구하기에 충분하다.

동기

'삶은 근본적으로 혼돈이며, 예술을 제외하면 질서를 창조하려는 모든 시도는 우리의 삶의 조건에 대한 부인, 까다롭게 굴면서 내숭이나 떠는 부인 행위라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는 혼돈에서 나오는 이국정서를 좋아했던 19세기의 플로베르다.

이상적인 여행은 무장해제되는 느낌을 준다. 무의식 중에 내재해 있던 새로운 에너지가 발현되며 기존의 가치는 전복된다. 사춘기 이후로 자신이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고집했던 플로베르가 이집트를 여행하고 나서 평생에 걸쳐 이 나라를 동경하게 된 것도 일종의 가치전복이 아닐까? '이집트 사람들이 보여준 말없는 힘과 겸손은 플로베르 자신이 속한 노르망디 사람들의 부르주아적인 오만과 대조를 이루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국적인 면을 생각해 보면 내가 자주 하는 출장도 여행인 것이 맞다. 사람, 언어, 건물의 구조 등을 꼼꼼히 보게 되면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외면적으로 도드라진 차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그 나라와 사람에 대해 훨씬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난다 하더라도 일 이야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기작가 슈바르첸베르크는 어렸을 때부터 유럽인들이 가보지 않은 먼 나라를 여행 해보고 싶어 했다는 독일인, 훔볼트가 특별히 호기심을 느꼈던 영역을 다섯 가지 소개하고 있다. 첫째, 지구와 거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 둘째, 우주, 인간, 동물, 식물, 광물을 지배하는 자연의 더 높은 법칙들의 발견, 셋째, 새로운 생명형태의 발견, 넷째, 지금까지 불완전하게 알려져 있던 땅과 그 다양한 생산물의 발견, 다섯째, 인류의 새로운 종에 대한 지식 등이다.

저자는 호기심, 즉 '세상을 향해 물어볼 올바른 질문'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사물을 볼 때 질문이 떠오르지 않으며, 질문이 없으므로 흥분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가 추측하는 훔볼트의 질문들을 따라가 보자.

"훔볼트에게 큰 질문은 '왜 자연이 지역마다 다를까?'하는 것이었다.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성당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왜 사람들은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일 수도 있고, 심지어 '왜 우리는 신을 섬기는 것일까?'일 수도 있다. 이런 소박한 출발점으로부터 시작해서 호기심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왜 지역이 달라지면 교회도 달라질까?', '교회 주류 양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주요한 건축가들은 누구였고, 그들은 어떻게 성공을 거둘었을까?'하는 질문들을 포괄할 수도 있다." 저자는 자연스럽게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통해 여행자가 새로운 정보를 권태와 절망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한다.

풍경

윌리엄 워즈워스가 태어난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워즈워스의 도시에 대한 불만에는 매연, 혼잡, 가난, 추한 외관 등 말고도 중요한 것, 도시가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가지 감정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이미 18세기에 도시의 해독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하고 나선 시인이 있었다는 얘기다.

1850년 시인이 여든의 나이로 세상을 떴을 때, '진지한 비평가들은 자연을 자주 여행하는 것이 도시의 악을 씻어내는 데에 필수적인 해독제라는 워즈워스의 주장에 거의 만장일치로 동조했다'고 한다.

덕소에서 히치하이크로 강릉까지 가서 비둘기 호 열차에 몸을 싣고 울산까지 가서 여학생 네 집으로 간 나는 일행과 헤어져야 했다. 울산역에서 건천역(경주 다음역)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야학교사로 활동했는데, 봄에 있을 검정고시 시험을 보기 위한 접수를 해야 했다. 필요한 서류 중 하나가 학생들의 출신학교 졸업증명서인데, 내가 그 여행하는 김에 그 임무를 맡은 거다. 그 중 한 학생이 졸업한 학교(당시엔 국민학교)가 건천초등학교였던 것이고.

건천역에서 혼자 내린 사람은 나뿐이었다. 안개가 내린 선로 양 옆으로 나란히 정렬해 있던 등이 안개 속에서 노란빛을 부옇게 뿜고 있었는데, 전혜린 에세이에 등장했던 슈바빙이라는 독일의 도시가 떠올랐다. 안개와 가랑비, 우중충한 회색 빛 하늘 등의 풍경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경주시의 건천역 근처 어느 여관방에서 혼자 용기라면을 후루룩거리던 남루한 내 모습과 야학에서 학생들과 근사하게 수업을 하며 유식한 척 하던 내 모습이 모두 나라는 것이 신기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

제대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는 빈센트 반 고흐는 34살의 나이에 파리에서 프랑스의 남부지방인 프로방스로 이동한다. 여기서 그가 그린 그림에는 과장된 듯한 빛과 요동치듯 힘찬 붓 자국이 보인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빛과 붓 놀림은 전혀 과장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사실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고흐의 1889년 작품인 <사이프러스>에 대한 설명을 보자

'우듬지로부터 아래를 향해 부드럽게 내려 앉은 소나무 가지들과 달리 사이프러스의 잎은 땅에서 위를 향해 밀고 올라간다. 더욱이 이 사이프러스의 줄기는 유난히 짧아, 위의 3분의 1은 완전히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다. 떡갈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가지는 흔들리지만 줄기는 꼼짝도 않는데 반해, 사이프러스는 줄기 자체가 구부러진다. 나아가 줄기의 둘레를 따라 수 많은 곳에서 잎이 자라나기 때문에, 여러 축을 따라 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중략… 사이프러스는 원뿔 모양이기 때문에 바람에 신경질적으로 퍼덕이는 불길을 닮았다.'

저자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는 유명한 말을 인용하면서 '고흐가 사이프러스를 그리기 전에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행을 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느 노래 말처럼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 말이다. 1856년부터 1860년 사이에 영국의 비평가 러스킨의 일차적인 지적 관심은 사람들에게 데생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인류에게 글쓰기 기술보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며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만 한다.'고 말하며 실제로 러스킨은 <데셍의 기초>와 <원근법의 기초>라는 책을 쓰고, 강의까지 했다고 한다.

러스킨이 데셍 기술을 강조한 이유는 뭘까? 러스킨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목수를 화가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목수로서 더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데생에 대한 애착이 명성이나 다른 사람들 또는 나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과 비슷한 어떤 본능에서 생긴 것이다.' 러스킨은 어디를 가든 뭔가를 스케치했다고 한다.

귀환

돌아갈 곳이 없는 여행은 더 이상 여행일 수 없다. 바베이도스를 여행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저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자신의 방에 절망한다. 그러면서 여행의 또 다른 관점을 언급한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의 <나의 침실 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하면서 말이다.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면 파자마 한 벌이면 여행준비 끝이란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이기심과 맹목성을 떨쳐버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내면을 여행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기술 - 개역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청미래(2011)


태그:#여행,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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