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모녀 동반자살'을 보도하며 '정부 복지 정책'을 강조한 <MBC 뉴스데스크>.
 '세모녀 동반자살'을 보도하며 '정부 복지 정책'을 강조한 <MBC 뉴스데스크>.
ⓒ MBC

관련사진보기


나는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잘 보지 않는다. 며칠 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세 모녀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됐다. 그 죽음은 온종일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두통에 시달리게 했다.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세 모녀 죽음을 보면서 왜 명옥 언니 얼굴이 겹쳐지지? 언니는 그래도 어렵다고 말해서 다행"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나도 남의 일 같지 않음, 하지만 난 악착같이 살 거야"라고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온종일 머리가 아팠고 우울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뒤늦게 언론에서 세 모녀가 '사회구성원에 속하지 못했다'느니 '가족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느니 '넘어지면 죽는 사회'라느니 운운하는 것을 봤다. "가난·질병·장애가 게으름이나 무능력·부끄러움이 되는 사회에서 뒷북치며 떠드는 당신들이 세 모녀만큼 절박한 상황을 맞아봤느냐"고 소리치고 싶어진다. 나 또한 세 모녀 못지않게 절박한 상황에서 부끄러움도 체면도 팽개치고 잡초처럼 끈질기게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사회구성원에 속했더라면' '가족에게 도움을 구했더라면'이라고 말하지만, 사회공동체가 해체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 박탈은 곧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위 박탈로 이어진다. 세 모녀가 스스로 구성원의 지위를 포기한 게 아니라 사회구성 체계가 그들을 밀어냈다는 이야기다.

"엄마가 어찌 그리 무식하냐"는 말... 눈물이 났다

1992년, 당시 나는 직장을 잃고 시어머니가 계신 당고개 무허가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당시 생후 10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말이다. 그때 나와 아이를 보호해 줄 사회적 안전장치는 전무했다. 돈이 없어 2년 가까이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이 나도 쉽게 병원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

어느날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이 갑자기 구토와 설사를 시작했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던 나는 속수무책 아이를 사흘 동안이나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는 내가 사는 모습에 속이 상할 게 뻔한 친정 부모님께 연락조차 안 하고 살았다. 아이가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울면서 친정 엄마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그러다 애 죽이겠다, 당장 애 데리고 와라, 병원 앞에서 기다린다"며 전화를 끊었다.

친정집 근처 병원에 아이를 데려갔을 때 의사는 내게 야단을 쳤고, 나는 내 처지가 서글프고 부끄러워 울었다.

"엄마가 어찌 그리 무식합니까? 아이가 아프면 당장 병원을 찾아야지... 빨리 왔으면 며칠이면 고쳤을 병을 키워가지고 왔네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후 나는 일자리를 구했고, 수중에 얼마 정도 돈이 생겼다. 60여만 원의 밀린 보험료를 내고 지역 의료보험카드를 만들었다. 의료보험 카드를 손에 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이후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의료보험료만큼은 열심히 내는 편이다.

가난한 여성 가장이 된 초라한 삶이 부끄러워 나는 친정도 멀리하고, 친구들과는 소식을 끊었다. 그런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인터넷 때문이었다. 철거민들이 모여 살던 당고개는 가난한 동네다. 교육 환경이 무척 열악했다. 주변 학교에 컴퓨터실이 있었지만 대부분 문을 잠가뒀기에 어쩌다 기본적인 작동만 해보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아이의 교육 보험으로 컴퓨터를 장만했다.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았더니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할 수 없이 인터넷을 연결하고 인터넷 비용이라도 뽑아 보고자 누리집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여성신문>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여성신문>에서 해고됐을 때 나는 <오마이뉴스>에 '대한민국 사십 대는 설 자리가 없다'는 기사를 썼다. 그 기사를 본 방송대 강사는 자기 학원에 일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실낱같은 소통의 끈을 잡고 악착같이 버텼다.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은 이들이 나와 같은 선택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높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벽

혹자는 쉽게 말하지만, 장애인 복지카드나 기초생활수급·비상생활지원금 신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 등록도 마찬가지. 지체장애가 있는 나도 의사의 권유를 받고 장애인 등록을 결심하는 데만 3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벽이 너무 높다.

기초생활 수급도 부양의무제 등 여러 문제 때문에 실질적으로 수급이 필요한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나도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권유받고 신청하려 했지만, 부양의무제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에 결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언론은 세 모녀의 죽음을 두고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번지수가 틀린 지적이다. 공동체가 해체된 요즘, 다른 가족들에게 금전 문제를 논의하는 건 쉽지 않다. 가족에게 거절당하면 타인에게 거절당한 것보다 상처가 더 크고 깊기 때문에 쉽게 금전 문제를 꺼내지 못한다.

위와 같은 이유들이 세 모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한다. 가장 역할을 하던 어머니가 일자리를 잃는 순간, '사회구성원 테두리' 밖으로 밀려났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으리라.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에 세 모녀가 월 50만 원이 아닌 10만 원 안팎의 저렴한 집세를 내고 살 수 있도록 주택 정책이 안정됐다면 어땠을까. 나는 20년 가까이 15평 연립주택에서 담보 대출금의 이자를 내며 살고 있다. 2000만 원에 달하는 원금을 언제쯤 갚을 수 있을 지….

의료보험이나 기초생활수급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이 유럽처럼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가난한 이들의 약값이나 진료비를 사회공동 책임으로 차등 지불을 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세 모녀의 선택은 다르지 않았을까.

가족에게조차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니라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만들어져 누구나 부끄러움 없이 사회에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세 모녀는 지금도 살아있지 않을까.

거대 자본과 기업에만 싼값으로 전기나 수도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 사회 빈민층에게 최소한의 범위에서는 난방이나 전기요금·수도요금을 할인하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누구든 세 모녀처럼 선택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식고 돈을 사랑하게 된다"고. 이 구절은 인류 종말의 징후를 경계한다. 사람의 자리에 자본의 논리가 들어서는 순간 공동체의 삶은 파괴된다. 돈이 없으면 더 이상 사회구성원이 아닌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 층위가 얇아지고 그 자리에 물질이 들어서는 순간, 가난한 사람들은 소외와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세 모녀의 죽음을 보면서 나는 이런 해법을 제안해본다. 생존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각지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성 회복과 더불어 실질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물질이 인간의 정신과 가치를 잠식한 시대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가치를 지탱해 주는 정신의 뿌리를 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난이나 질병, 장애나 나이 많음이 부끄러움이 되는 사회여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도 최소한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주거·의료·공과금 등의 무게를 덜어주는 쪽으로 설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 없이 여전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 부양의무제, 장애인등급제라는 수많은 핑계로 사회적 의무를 방기하면서, 면피용 정책, 무늬만의 복지를 지향한다면? 소외된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에 긴급구호 신호를 보내는 일조차 시도해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태그:#세 모녀 죽음
댓글3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