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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2012년 4월 5일. 경기도 군포에 출마한 이학영 민주통합당 후보쪽에서 보도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는 세번째로 총선에 출마한 유영하 새누리당 후보(현 국가인권위원)가 "강간범"을 변론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09년 한나라당 군포시 당협위원장이던 유 후보는 당시 여중생 집단 성폭행범을 변호하며 무죄임을 강력히 주장, 피해자에게 정신적 사형 선고를 했을 뿐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잘못을 반성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유정 당시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유 후보가 여중생을 성폭행한 범인들을 변호하며 무죄를 주장하기도 했다"라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네거티브 선거전'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러한 유 후보의 전력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월 20일 유 후보는 국가인권위원으로 선출됐다. 그와 함께 그의 '성폭행 사건 무죄 변론' 전력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강간했는데도 피해자가 원해서 한 것처럼 주장했다"

 

'군포 성폭행사건'은 지난 2008년 여러 명의 남학생들(고교생 등)이 한 여학생(여중생)을 수차례에 걸쳐 강간한 사건이다. 수원지법은 사실상 강간혐의('위력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를 인정해 가해자들에게 짧게는 '단기 1년 6월'에서 길게는 '장기 3년'의 형을 선고했다. '소년범치고는 무거운 형량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가해자 여러 명 가운데 3명을 변론한 이는 유영하 변호사였다. 검사출신인 유 변호사는 당시 한나라당 군포시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두 차례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던 그는 당내에서 '친박인사'로 분류된다. 당시 피해자를 지원했던 군포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등에 따르면 유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남학생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라며 강간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피해 여학생을 지원하고 있던 군포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지난 2009년 2월 한나라당 중앙당과 군포시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던 유 변호사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상담소는 질의서에서 "(유영하 위원장은) 가해 아이들의 변호인으로서 가해 아이들이 피해자를 불러내어 강간을 했는데도 마치 피해자가 원해서 한 것처럼 주장했다"라며 "가해 아이들의 무죄 변론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보호하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지적했다.

 

상담소는 "변호사가 가해 아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라며 "문제는 가해 아이들의 문제 행적과 질 나쁜 범죄 행위에도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피해자의 상처를 오히려 가중하고, 가해 아이들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할 기회를 어렵게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상담소는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피해 가족의 고통을 가중하고, 피해자의 신뢰있는 동석자로 이미 법원의 허가를 받은 바 있는 부모의 퇴장을 여러 차례 강력하게 요구해 피해자의 최소한 권리조차 지키기 힘들게 했다"라고 주장했다.

 

상담소는 "현재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정서적 상태는 장기 입원해야 할 상황이다"라며 "특히 피해자 엄마는 수면제의 양을 늘리면서 잠을 못 자고, 피해자는 최근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상담소는 같은 해 2월과 4월 수원지법에 낸 진정서에서도 "가해 아이들의 변호사는 가해 행위자들이 쉽게 갖고 있는 잘못된 통념을 이용하여 가해 행위를 변호하고 있다"라며 "상황적 압박에 끌려 자신을 포기한 피해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행실이 나쁜 아이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주장을 해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포기한 상황을 오히려 성관계를 자발적으로 한 것으로 유도하는 가해 변론은 피해 여학생에게는 2차 성폭력을, 가해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행위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상담소는 "유영하씨는 변호사와 정치인이 서로 무슨 상관이냐고 상담소에 반문했다"라며 "그렇다면 변호사로서 가해행위를 변호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여성이 잘 사는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뻔뻔한 처사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2012년 총선 때 유 후보쪽 인사 가해자 아버지 기자회견 주선

 

또한 군포여성민우회는 지난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 후보로 다시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에게 보낸 공개질의서에서 '군포 성폭행사건'을 무죄라고 변론한 전력을 문제삼았다.

 

"유 후보자의 변론은 피해자와 가족에게는 심각한 2차 피해를, 가해자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주고 있었다. (중략) 수원 법정에서 만난 유 후보자는 자신도 딸이 있고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말을 하여 피해자와 가족을 더욱 화나게 하였다. 변호사가 따로 있고 정치인이 따로 있으면 얼마나 편리한가? 돈 받을 때는 가해자의 무죄를 주장하고, 정치인일 때는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서로 다른 입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군포여성민우회에서 공개질의한 직후 가해자 아버지가 유 후보자의 선거본부장을 맡고 있던 송아무개(현 군포시의원)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또다시 무죄를 주장했다. 상담소는 "(가해자 아버지가) 불법으로 입수한 피해자의 일기를 들먹이며 2009년처럼 피해자가 정숙한 아이가 못되는 것처럼 말했고, 이 일기만 제출되었으면 무죄였을 거라고 발표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라며 "가해자 아버지까지 불러들인 유 후보측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라고 밝혔다. 

 

이후 경기여성단체연합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군포여성민우회는 유 후보에게 보내는 항의문에서 "이미 끝난 사건을 악용하지 말라"라고 촉구했다. 이에 유 후보 선거대책본부는 "이학영 후보측의 왜곡된 문제제기로 시작된 '중학생 성폭력 무죄 변론' 관련 공방전으로 시민 여러분께 검증받을 기회가 상실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선거 후 빠른 시간 내에 여성민우회 관계자를 만나 여성 인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지길 바란다"라고만 답변했다. 

 

유영하 인권위원 "강간이 아니라 위력에 의한 간음이다"

 

유영하 인권위원은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군포 여중생 성폭행사건'을 변론하게 된 과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사건의 피의자 중 한 명이 초등학교 친구의 아들인데 그 친구가 와서 '아이들이 피해 여자애랑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는데 구속돼서 억울하다고 하니 변론을 맡아 달라'고 했다"라며 "실제 아이들을 접견해보니 모두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지 강제로 한 게 아니다'라고 진술해서 사건을 맡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유 인권위원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위력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이라고 표현했듯이 (군포 성폭행사건은) 강간이 아니라 간음이다"라며 "피해자쪽에서 강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조문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형량은 강간죄에 준해서 처벌받지만 강간죄가 아니라 위력에 의한 간음죄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당시 피해자 여학생을 지원했던 심용선 군포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위력에 의한 미성년자 간음이 강간이 아니고 무어냐?"라며 "어떤 여자도 그런 식의 성관계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피해 여학생이 끌려가 위협받았다는 것이 사실로 인정돼 성폭력사건 전담 검사가 기소한 것이다"라며 "유 위원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지나 관점에서 변론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유 인권위원은 "1심에서 유죄가 나왔고, 부모들이 항소를 했지만 항소심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다"라며 "재판부도 이를 감안해 집행유예로 아이들을 풀어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 친구의 아들은 풀려난 뒤 두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유 인권위원은 "변호사는 살인범도 변론할 의무가 있다"라고 전제한 뒤, "저는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다"라며 "제 가치관과 맞지 않는 깡패사건이나 마약·사기사건 등은 변론하지 않지만 이 사건은 아이들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어서 무죄를 다툴 수 있다고 판단해 맡았다"라고 말했다.

 

유 인권위원은 지난 19대 총선 때 자신의 선거본부장이 가해자 아버지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과 관련해 "저는 당시 유세하러 나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알았다"라며 "(피해자 여학생의) 일기장은 공개하지 않았고, 그것을 재판에 제출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유 인권위원은 '성폭행 사건에서 무죄라고 변론한 변호사가 국가인권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이해할 수 없다"라며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곡해하는 게 유감스럽다"라고 답변했다.

 

유 인권위원은 "나중에 재심에서 무죄로 밝혀진 사건이 많지 않나?"라며 "진실이 무엇인지는 재판장도 모르고 하느님만 아신다, 저는 변호사로서 그들이 억울하다고 하니까 변론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도 딸을 키우고 있어서 최대한 여학생의 사생활을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변론했다고 자부한다"라고 강조했다. 


태그:#유영하, #군포 성폭행사건, #국가인권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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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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