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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전문가, 제 아내를 소개합니다.
 피겨스케이팅 전문가, 제 아내를 소개합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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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심사위원들이 크게 잘못 했어"
"그걸 누가 모르나. 어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심사위원들이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1등을 주기 위해 개별적으로 점수를 높게 준 것이 집계결과 자기네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게 나왔고, 김연아에겐 낮게 준다고 한 것이 모든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게 나왔다는 거지."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 아내가 요즘 동계올림픽 전문가가 됐다. 정확한 데이터가 아닌 순전히 감으로 하는 평가이다 보니 신빙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일리는 있다.

룰도 제대로 모르는 아내, 그녀는 피겨 스케이팅 전문가다

"어떻게 김연아가 나오는데 당신은 잠잘 생각을 하냐?"

지난 21일 새벽에 열린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김연아의 우승을 자신하지만, 심판 진들의 불공평한 판정이 불안하다며 각 나라별로 출전한 전선수의 경기를 시청하던 아내는 "결과만 알려줘"라고 말하며 잠을 자겠다는 내게 핀잔을 준다.

"저 선수는 김연아에 비해 점프가 낮고, 스핀 기술이 어떻고,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둥 나름대로의 평가에 집착한 것 까진 좋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라고 꼭 내게 묻는다. 옆에서 아내의 질문에 대비한 답을 생각해야 하는데, 어떻게 잠이 오겠나.

드디어 4그룹 세 번째로 출전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선수가 출전할 땐 방안에 냉기까지 돌 정도였다. 아내의 환호를 들으려면 저 선수가 엉덩방아라도 찧어야 되는데, 별 문제없이 프로그램을 소화해 냈다. 아내는 또 어떤 평을 내릴까.

"김연아가 실수만 안하면 돼. 조금 전 저 선수 착지자세가 불안전한 게 한번 있었고, 멈칫한 적도 있었어."

언제 봤을까. 아내는 기술에 대한 점수나 예술성 같은 건 모른다. 더더구나 피겨스케이팅 용어는 점프 정도만 아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김연아 선수가 (넘어지는)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지막 주자로 나서니까 얼마나 부담이 크겠어. 그치만 연아니까 잘 해 낼거야"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사자인 김연아 선수보다 아내가 더 불안 해 했을 것 같다. 때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하고 저러다 심장마비라도 걸릴까 걱정도 됐다. 마지막 주자인 김연아 선수가 등장할 때까지 금메달 획득보다 아내의 행동이 더 불안했다.

누가 우리 연아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해 줘요

김연아 선수를 비롯한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단 모습
 김연아 선수를 비롯한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단 모습
ⓒ 오마이뉴스 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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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최고, 역시, 퍼펙트, 멋지다..."

기다리던 김연아 선수가 연기를 펼칠 때마다 아내는 좋다는 수식어는 다 가져다 붙인다. 4분여, 피날레를 장식하자 아내의 얼굴은 마치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딴 듯한 표정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 이미 (자신의 평가 기준으로)확정을 지어 놓은 듯 했다.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맨트 때문이었을까. 이변이 없는 한 1위는 확실한 듯 보였다.

"어제 열린 쇼트를 생각하면 맘을 놓을 수 없긴 하다"
"설마 세계의 언론에서 잘못된 심사라고 혹독하게 지적했는데, 또 그러겠어?"

하긴 그랬다. 전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짜다'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심사위원들이 김연아 선수의 점수엔 인색하고 러시아 선수에게는 후했던 결과가 또 반복될지 모른다는 우려. "세계의 이목이 있는데, 어떻게 또 그럴 수 있느냐"는 아내의 말에 위안을 삼으면서 TV를 통해 결과를 지켜본 나는 경악을 하는데,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버린 아내는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내 어떤 말도 아내에겐 위로가 되질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싸늘하기만 한 거실 분위기. 스마트폰을 찾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누가 우리 김연아 선수에게 전화 좀 해 주세요. 당신은 영원한 피겨 여왕이라고..."

페이스 북에 올린 글. 100건이 넘는 호응이 있었다.
 페이스 북에 올린 글. 100건이 넘는 호응이 있었다.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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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수상식에서 애써 미소를 짓는 김연아 선수를 보며 콧등이 찡해졌다. 아내의 얼굴을 외면했다. 안 봐도 증오와 슬픔, 애처로움이 점철된 표정이었을 테니 말이다.

스포츠 외교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김연아 재심사 청원 사이트
 김연아 재심사 청원 사이트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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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바쁘지 않으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그래...뭔데?"
"지금 김연아 재심사 청원 사이트가 만들어졌대.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 만든 거래. 메시지로 주소 보낼 테니까 투표하고, 직원들에게도 전달 해줘"

오후 2시쯤,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 어디서 어떻게 알았던지 아내는 분을 삭이지 못한 아내는 내게 투표 좀 해 달란다. 목소리로 보아 "이미 지난 걸 가지고 뭘 그렇게 연연하냐?" 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다. 알려준 사이트에 접속해 투표를 미치고 투표독려를 위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연아 선수의 도둑맞은 금메달을 다시 찾자는 게 아니야. 적어도 잘못된 것을 알리자는 취지고, 앞으로 (국력이나 스포츠 외교가 약한)다른 나라의 유능한 선수가 이런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사는 화천에서 매년 열리는 '용화축전'은 주민 화합을 일궈낸다.
 내가 사는 화천에서 매년 열리는 '용화축전'은 주민 화합을 일궈낸다.
ⓒ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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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김연아, #소치,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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