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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 있는 2층의 아치형 구조물로 로마시대에 건축되어 거대하기가 마치 다리같아서 수도교라 불림
▲ 수도교 세고비아에 있는 2층의 아치형 구조물로 로마시대에 건축되어 거대하기가 마치 다리같아서 수도교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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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에는 세고비아 기타가 없다

오늘은 세고비아에 간다. 세고비아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세고비아 기타 때문이리라. 지명에서 유래된 이름인 줄 알았던 세고비아 기타는 안드레스 세고비아라는 유명한 기타연주가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랜드란다.

골목길의 담장 하나도 아름다워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듯하다.
▲ 세고비아 골목길 담장 골목길의 담장 하나도 아름다워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다독여주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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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세고비아 버스터미널에 내려 근처의 관광안내소에 들어갔다. 직원은 지도를 주면서 가볼만한 곳의 이름과 위치를 지도 위에 표시해 주었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 이곳에는 로마시대에 건축됐다는 수도교가 남아 있다고 했다. 2천년이 지난 오늘, 동양여인이 이 건물을 보겠다고 먼 곳까지 날아왔다. 수도교는 터미널 근처에 바로 있었다.

수도교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위로 올라오니 도시가 한눈에 보인다. 수도교는 거대한 성벽같다. 수로 하나까지도 조형미를 생각하고 아름답고 웅장하게 만든 로마인들의 장인 정신이 놀라웠다. 그냥 물을 흘려 보낼 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어렵게 아치형으로 쌓았을까? 그것도 무려 2층으로. 현재는 수로로 쓰이지 않는다고 하나 2천여년을 버텨온 이 건축물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로마의 건축문화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로마문화를 흔히 실용주의적이라고 하는데 단순한 실용주의만이 아니었다. 수도교는 실용주의에 예술적인 조형미까지 고려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수도교가 완성됐을 때 세고비아 시민들은 얼마나 감격적이었을까? 수도교 아래에 섰을 때는 위압감이 느껴지더니 위로 올라와 보니 세월의 무게와 장엄함이 느껴진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수도교 위에서 내려다 보고, 아래서 올려다 보고 어떻게 보아도 아름답다. 수도교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기에 세고비아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세고비아 마요를 광장에서 바라본 세고비아대성당-외관이 아름답고 우아해 카테드랄의 귀부인이라 불린다.
▲ 마요르광장 세고비아 마요를 광장에서 바라본 세고비아대성당-외관이 아름답고 우아해 카테드랄의 귀부인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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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젊은 처자를 탐하다

'대성당의 귀부인'이라 불리는 세고비아대성당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성당의 겉모습만 보면 톨레도대성당처럼 숨막히게 화려하지는 않다. 마치 수줍은 시골처녀의 풋풋함과 수수함이 느껴졌다. 톨레도대성당은 8유로였던 것에 비해 세고비아대성당의 입장료는 3유로이다. 가격이 저렴해서 별로 볼 게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내부는 규모도 작고 장식도 단조로운 편이었다. 그렇지만 스테인드 글라스나 벽에 장식된 조각들은 하나하나 아름다웠다.

루벤스가 그린 <시몬과 페로>의 모작인듯하다. 진품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 시몬과 페로 루벤스가 그린 <시몬과 페로>의 모작인듯하다. 진품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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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안에는 많은 성화들이 있었지만 특히 내눈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었다. '저 그림은 뭐지?' 충격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연은 이랬다. 로마시대에 시몬이란 사람이 왕의 노여움을 사서 감옥에 갇혔다. 시몬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하는 형벌을 받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해산한 지 얼마 안 된 시몬의 딸 페로는 죽어가는 아버지를 그대로 둘 수 없어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젖을 물렸다. 결국 딸의 효성에 감동한 왕이 시몬을 풀어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이 많이 만들어졌고 루벤스의 <시몬과 페로>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였다.

자식이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생각은 서양에서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진품은 암스테르담 미술관에 있다 하니 이 작품은 아마도 모작인 것 같다. 내용을 알지 못하면 지극한 효성이 담긴 그림을 이상야릇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니 흥미롭다.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라는 교훈이 담긴 세상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그림이란다. 이 그림을 통해 편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백설공주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 알카사르 백설공주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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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을 나와 디즈니 만화영화 <백설공주>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알카사르로 향했다. 성 주변을 돌아보는데 성은 절벽 위에 지어져 있었다. 성의 옆모습도 보고 싶은데 절벽이라 접근할 수가 없으니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성 옆으로 난 샛길을 찾아 한참을 내려가서 올려다보니 정말 동화속의 모습 같았다. 안타깝게도 성주변에 나무가 무성해서 성의 모습을 제대로 사진에 담기가 어려웠다.

성에스테반 성당의 종루-로마네스크식 건물로 종루가 아름답고 규모가 거대해서 탑의 여왕이라 불림
▲ 탑의 여왕 성에스테반 성당의 종루-로마네스크식 건물로 종루가 아름답고 규모가 거대해서 탑의 여왕이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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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스테반 성당의 종루 꼭대기에 수탉이 서있다.
▲ 수탉 성에스테반 성당의 종루 꼭대기에 수탉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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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길이 있는데 오른쪽으로 가세요

다시 구시가로 들어가 세고비아 버스터미널로 갔다. 세고비아의 구시가는 톨레도에 비해 작았다. 구경하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오늘은 마드리드로 일찍 돌아가자. 내일이면 마드리드를 떠나야 하니 남은 시간은 마드리드 시내를 더 돌아보자.

마드리드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숙소까지는 거리가 얼마 안되니 걸어가면 어떻겠냐고 딸이 묻는다. 좋다고 했다. 이젠 3일쯤 지나니 여행에 적응이 된 것도 같았다. 숙소 가는 길에 레알 왕궁도 보고 가잔다. 지도를 보며 왕궁을 찾아 가는데 갈림길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두 갈래 길이 있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니 좀 더 아름다운 쪽으로 가세요"라며 자세히 일러준다. 길을 가는데도 아름다운 길로 가라. 마음씨가 정말 곱다. 길 하나를 가르쳐주는데도 아름다운 길을 가르쳐 주다니 스페인사람들은 뼛속까지 아름다운가? 이런 유전자가 있어서 길도 건축도 예술도 탄생했을까? 사소한 일에 감동이다.

해가 진 후의 레알 왕궁
▲ 레알왕궁 해가 진 후의 레알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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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길로 가는데 눈앞에 하얀 대리석 건물이 나타났다. 이게 레알 왕궁이구나. 해진 후에 보니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보였다. 해진 후의 코발트색 하늘과 하얀 왕궁의 모습이 환상적이다. 왕궁 앞에는 연못이 있다. 잔잔한 연못에 거울처럼 비치는 왕궁의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다.

궁전 옆 광장에는 실외 스케이트장과 회전목마 등의 놀이시설이 있다. 데이트를 즐기는 가족과 연인이 많이 보였다. 이번에는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와 등장인물인 돈키호테, 산초 동상이 있는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이곳에도 역시 연못이 있다. 동상이 워낙 커서 물에 비친 모습과 함께 담으려니 쉽지 않다.

관광객들이 동상 옆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이 물러나길 기다려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흔들린 것 처럼 선명하지 않다. 삼각대 없이 찍어서다. 여행 떠나기 전 했던 고민이 생각났다.

'삼각대를 가져가? 말어? 한밤중에 사진찍을 일은 별로 없을 테니 가져가지 말자. 가까이 가서 찍으면 되지.'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런건지 아쉽다.

마드리드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근처에서 식사를 하려다가 이곳에서 추로스를 먹지 않으면 마드리드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하는 유명 맛집을 찾아갔다. 다행히 큰 길가에 있어서 쉽게 찾았다. 사람이 많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라고 하더니 역시나 줄이 길다. '맛있다는데 줄서는 것 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서 있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매의 눈으로 빈 테이블을 찾았다. 사람들로 빽빽했지만 옷만 놓여진 의자가 있어 옆사람에게 물었더니 치워주며 앉아도 된단다.

20센티미터쯤 될듯한 길다란 추로스 6개와 초콜라테 한 컵이 나왔다. 우선 하나를 먹어 보았다. 바삭바삭하고 고소했다. 또 하나는 초콜라테에 푹 찍어서 먹었다. 입안에 퍼지는 바삭거리는 식감과 초콜라테의 달달함은 예술이다. '음 이맛이야' 두 개까지는 맛있게 먹었지만 세 개째 먹으려니 느끼해서 못먹겠다. 두 개씩 먹고 남은 두 개는 싸서 가지고 나오는데 딸은 초콜라테가 아깝다며 마신다. 초콜릿을 녹인 진하고 걸쭉한 액체를 마신다니 보는 내가 속이 니글거린다.

마드리드 솔광장에 있는 제로포인트-이곳이 스페인 전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이며 이곳을 밟으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을 찰덕같이 믿고 꾹 밟다
▲ 제로포인트 마드리드 솔광장에 있는 제로포인트-이곳이 스페인 전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이며 이곳을 밟으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을 찰덕같이 믿고 꾹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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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들어가기에는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솔광장의 곰동상을 찾았다. 곰동상은 마드리드의 상징으로 솔광장에 위치해 있다는데 우린 솔광장에 여러 번 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못봤던 것이다. 찾고 있는 중에 톨레도에서 파라도르 야경을 같이 봤던 처자 둘을 만났다.

우린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포옹을 했다. 반가웠다. 곰동상을 찾는다고 했더니 저쪽 구석에 있다며 가르쳐 준다. 그리고 꼭 밟아야 한다며 제로포인트까지 알려줬다. 스페인 모든 지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시발점이란다. 제로포인트를 밟으면 마드리드에 다시 오게 된다는 전설을 찰떡같이 믿으며 우리도 함께 꾹 밟고 인증샷까지 찍었다.

덧붙이는 글 | 수도교란 로마시대에 도시의 낮은 곳에서 위쪽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된 다리 모양의 수로이다. 수도교는 현재 남아 있는 길이가 약 800여미터에 달하고 가장 높은 구간은 약 30여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16킬로미터나 떨어진 프리오 강으로부터 세고비아까지 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들어졌단다. 웅장하고 견고한 다리같아서 수도교라 부르고 아치형 받침대가 있어 조형미가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태그:#세고비아, #수도교,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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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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