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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아닌 오지를 자전거와 함께 달려가는 여정을 즐기는 여행가 노마드.
 도시가 아닌 오지를 자전거와 함께 달려가는 여정을 즐기는 여행가 노마드.
ⓒ 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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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자주 다니고 좋아하는 사람에겐 누구나 닮고 싶은 여행가가 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산들을 오른 독일사람 라인홀트 메스너와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 2천 킬로의 거리를 4년간 걸어서 횡단한 프랑스 사람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있다. 각각 <검은 고독, 흰 고독>, <나는 걷는다>는 여행기를 읽고서 알게 된 분들이다. 이들이 놀랍고 존경스러운 건 둘 다 오롯이 혼자서 등정과 여행을 했으며, 50~60대 장년의 나이였다는 거다.

수년 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전거 여행을 꿈꿀 무렵, 인터넷 자전거 카페에서 인상적인 사진을 보게 되었다. 앞 뒤 바퀴로 짐 가방을 둘러멘 낡은 자전거 한 대가 동물들이 죽은 메마른 몽골고원의 고비사막 위에 당당히 서 있었다. 더 놀라웠던 건 이 자전거 주인이 50세가 훌쩍 넘은 데다가 홀로 오지를 여행하고 있었던 것. 아!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용감하고 멋진 여행가가 있었구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금속말 탄 유목민에게 외로움과 고독은 친구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열흘 걸려 횡단한 몽골고원의 고비사막.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열흘 걸려 횡단한 몽골고원의 고비사막.
ⓒ 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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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외롭고 힘든 순간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절망도 희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러 일을 겪은 후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지요. 젊은 친구들에게 자전거 여행을 권합니다. 순간순간 어려움도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거든요. 게다가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한 자산이니까요."

자전거 애호가 사이에서 '노마드 (Nomad, 유목민, 방랑자)'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자전거 여행가 박주하(61)씨가 사진의 주인공이다. 환갑의 나이에도 그는 '자전거여행학교'라 이름 지은 인터넷 카페를 열고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혹은 다녀온 사람들과 매달 캠핑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활동하고 있다. 지난 18일, 마침 작은 회의실을 빌려 정모 겸 자전거여행 세미나를 하고 있어서 겸사겸사 찾아갔다. 오랜만에 얼굴도 뵙고 인사를 나누었다.

온·오프라인 모임인 '자전거여행학교'는 등산 학교처럼, 자전거 여행도 체계적인 이론 교육과 실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단다. 직장생활의 경험을 살려 자전거 여행에 필요하지만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서바이벌 키트'와 자전거 여행용 핸들바 랩, 케이지, 각종 스트랩 등을 손수 제작하기도 했다.

덕분에 기자의 애마인 작은 바퀴의 미니벨로 자전거도 '투어용 바이크'로 재탄생했다. 이 밖에도 어디로 여행할 것인지에서부터 자전거 관리와 캠핑, 짐의 효율적인 수납까지···. 정모를 겸해서 정기적으로 여는 세미나에서 그가 생생하게 풀어놓는 경험담과 생존법은 자전거·도보 등 오지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겐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지식이 된다.

노마드님이 운영중인 인터넷 카페 자전거 여행학교의 정모겸 자전거 여행 세미나.
 노마드님이 운영중인 인터넷 카페 자전거 여행학교의 정모겸 자전거 여행 세미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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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배낭여행을 하기도 했던 그는 회사에서 퇴직한 후 50대의 나이였던 2006년 처음 자전거 여행을 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유행처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쉰 살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혼자서 해외여행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자전거 여행지가 잘사는 선진국의 도시들이 아님은 물론이다. 이후 해마다 한 번씩 중국, 몽골, 시베리아, 실크로드, 산티아고 등 노마드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오는 4월엔 3개월간 동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역시 혼자서.

몇 년 전 자전거를 타고 일본 규슈지역을 여행하다 일 주일 만에 포기하고 돌아왔던 기자를 부끄럽게 하는 분이다. 우리말은 물론 영어도 안 통하고 물설고 낯설은 먼 타지, 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엄습하는 외로움도 만만찮다. 물 위에 뜬 배라는 의미의 주하(배 舟, 물 河)라는 이름 때문일까. 그는 외로움이나 고독함이 오히려 사람을 성찰하게 하고 크게 만든단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히말라야 산맥의 험산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하고 와서 고독에 대해 쓴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외로움과 고독을 점점 두려워하는 요즘 세상에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주장'이다. 확실히 자전거는 인간에게 어떤 '사유'와 '내면의 철학'을 끄집어내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맞는 듯싶다.

"사실 자전거 여행가의 길은 생각보다 외롭진 않아요.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또 다른 자전거 여행자, 이동하는 길에 잠시 들렀던 마을의 주민들, 하다못해 타지에서 발견한 자전거 가게의 주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타 지역의 문화와 특징에 관해서도 알게 되고, 그것은 여행의 또 다른 경험으로 남아 자신을 더욱 풍성하고 노련한 여행가로 만들어주지요."

자전거로 시작한 인생 2모작

고기국수와 우유로 여행자를 반겨준 마을 주민들, 가져가라고 사진속의 염소 한마리를 주었다고.
 고기국수와 우유로 여행자를 반겨준 마을 주민들, 가져가라고 사진속의 염소 한마리를 주었다고.
ⓒ 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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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박 11일 걸려 고비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어요. 보통 사막이라고 하면 끝없는 모래밭을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모래밭은 10% 정도밖에 안 돼요. 지형이 변화무쌍해서 잔디밭도 나오고, 자갈길도 지나게 되고,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길도 있어요. 한 번은 늪에 빠져서 100m 가는 데 30분도 넘게 걸린 적이 있어요.

겨우 빠져나왔는데 바퀴에 진흙이 끼어 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을 때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싶더라고요. 그럼에도 계속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긍정적인 마음가짐 덕분이었어요. 그래서 천재지변, 비상상황에 대비한 요령도 일러주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의지를 더 강조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자전거 여행에서는 장비나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거든요."

2006년 50대의 나이에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 횡단에 도전한 이래 고비사막 종주, 중국 내륙지역 횡단, 시베리아, 산티아고 순례길 등 지금까지 40여 개국을 여행했다. 게다가 그가 찾은 곳은 대부분 유명 관광지가 아닌 데다 대중교통으로도 닿기 어려운 오지였다. 이 정도면 자전거가 친구를 넘어 '반려 기계'다.

'가고 싶은 길을 가라'는 서문이 쓰여 있는 그의 여행 블로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자전거 도난 사건이다. 시베리아 횡단 후, 카자흐스탄으로 내려오던 중 알타이 지방의 농촌을 지나던 날, 텐트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자전거가 사라져 버렸다. 동네 마트에 갔다가 자전거를 도난 당해도 몇 주간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그 먼 땅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한 애마를 잃어 버렸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결국, 나머지 여행 일정을 배낭여행으로 마무리한 그는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체력이 아닌 의지를 꼽는다. 일본에서 작고 사소한 시련의 연속적인 발생으로 자전거 여행의 의지가 꺾여 버렸던 기자의 경험을 미루어 보니 아주 적확한 말이다.

환갑의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매달 자전거 캠핑을 떠난다.
 환갑의 나이에도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매달 자전거 캠핑을 떠난다.
ⓒ 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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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사람의 땀과 힘으로 움직이는 인간적인 도구여서 그런 건지, 자전거 여행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과 마주쳐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꼭 있다. 우천이나 무서운 개, 타이어 펑크로 인해 잠시 멈추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만, 반면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인적이 드문 조용한 숲이나 아름다운 해변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때로는 현지 마을의 주민이 반갑게 맞아 줘 특별한 음식이나 문화를 경험하는 행운이 따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모험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험난한 여행을 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전거를 타고 국내·외를 누비는 여행자에게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 생길 것이란 점이다. 언덕길, 외로움, 무거운 짐 그리고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 그러고 보니 자전거 여행은 인생과 너무도 비슷한 점이 많다.

인생의 2모작으로 자전거 타기와 자전거 여행을 선택한 노마드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과 삶의 깨달음이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가 오는 4월 동유럽으로 자전거 여행을 혼자서 떠날 예정인 그는 지금도 자전거 여정을 계획하고 여장을 꾸리노라면 가슴이 뛰고 절로 밤을 지새우게 된단다.

자전거는 환갑이 넘는 즈음의 나이를 먹은 아저씨들에게서 볼 수 있는 증상인 아집이나 '꼰대스러움'도 사라지게 하나 보다. 자전거 여행 중 캠핑하면서 자연을 아끼며 사랑하게 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환대와 도움을 받으면서 타인에 대한 고마움과 배려, 겸손함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매달 한참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자전거 캠핑여행을 떠나고 자연스럽게 친화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나이를 더 먹으면 저런 어른이 되어야 겠구나라고 마음을 먹게 된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길을 떠나라
그 길에는 친구가 있고 그 길에서 너는 강해진다
할 수 있다면 마음이 가는 쪽으로 가라
자기 길을 찾아갈 때
힘이 되고 방향이 되며 목표가 된다
아무것도 그 누구도 너를 막지 못한다
-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 가운데

덧붙이는 글 | '내 나이가 어때서' 응모글



태그:#자전거여행, #노마드, #자전거여행학교, #자전거여행가 , #박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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