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퀴즈 하나. 건강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딱 하나만 고른다면? 1. 잘 먹는다. 2. 운동을 열심히 한다. 3. 좋은 부모를 둔다. 일부 경험 많은 의사들 사이에 한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이 나돈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지목한 '답'은 3번이었다. 아무리 잘 먹고, 몸에 좋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 해도 건강한 양친을 둔 사람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현대 의학은 많은 질병의 원인을 유전에서 찾고 있다. 건강검진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겠지만, 주요 질환은 가족력 체크가 필수처럼 돼버렸다. 한 예로 부모나 형제 가운데 암 발병자가 있으면, 발암 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당뇨, 고혈압, 비만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정신 혹은 정서는 어떨까. 미국 등지에서 이뤄진 쌍둥이 조사연구에 따르면, 낙천적이거나 비관적인 성격마저도 타고날 확률이 매우 높다. 쌍둥이끼리는 외양만 아니라, 성격도 대체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서울 목동의 K씨 가족은 수십 년째 '종교 갈등'을 겪고 있다. 80대 초반인 K씨는 종교가 없고, 그의 아내는 가톨릭을 믿은 지30년이 넘은 신실한 신자다. K씨의 자녀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50대 중반인 큰 아들은 아버지처럼 종교가 없다. 하지만 나머지 자녀들은 다 종교가 있다. 40대 중반인 막내 아들과 며느리는 일요일이면 빠지지 않고 교회를 찾는 독실한 개신교 신도이다. 딸들은 다 어머니처럼 성당에 나간다. 그런가 하면 큰 며느리는 승려수준의 불교 수행자이다.
 
K씨네 '종교 갈등'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서로를 비방하거나 못마땅해 하는 바람에 생긴 게 아니다. 그보다는 종교가 없는 식구와 종교가 있는 식구들 사이를 갈라 놓는 평행선의 견해 차이가 갈등의 요체이다. 즉 K씨와 큰 아들에 대해 다른 식구들이 "제발 믿음 좀 가져보라"고 수십 년째 권하지만, 본인들은 꿈쩍도 않고 있다. "불교든,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종교를 택해 보라"는데, K씨와 큰 아들은 "도통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이냐"며 고개를 가로 젓기만 한다.
 
종교적 믿음을 가질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걸까. 믿음이 깊은 신부나 정진을 많이 한 스님도 한눈에 척 보고 종교를 가질만한 사람인지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헌데 놀랍게도, 신을 믿을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기계가 구분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이 믿는 기계는 여느 큰 병원이면 적어도 한대쯤은 있게 마련인, MRI(자기공명촬영장치)와 아주 유사한 것이다.
 
미국 오번(Auburn)대학교 연구팀은 미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으로 최근 자기공명촬영장치의 일종인 fMRI라는 장비를 이용해 종교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두뇌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놀라운 점들이 드러났다.
 
'신' 믿는 사람, 평소 공포심 조절하는 뇌 활발히 작동
 
일상생활에 '초월적 존재'(신)가 항상 함께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경우, 평소 공포심을 조절하는 뇌 부위가 활발히 작동했다. 반면 종교 교리와 지식 등을 훤히 꿰고 있는 사람들은 언어를 관장하는 뇌 영역이 왕성하게 움직였다. 이에 비해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종교적 믿음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시각적 이미지를 다스리는 뇌 부위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요컨대, 평소 머리 쓰는 패턴이 종교 유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종교 유무와 뇌 활동의 이 같은 특성들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죽음이나 내세 등에 대한 두려움 등이 큰 사람은 신에 의지하기 쉽다. 또 종교인이나 신자 가운데는 종교에 대해 이해가 깊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들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흡인력이 큰 설교나 설법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는 목사, 승려 등이 있는데 이들은 두뇌의 언어 기능이 남보다 탁월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다른 이들보다 잘 떠올리는 부류라고 추정할 수 있다. 기독교를 예로 든다면, 이런 사람들은 신앙을 권유 받았을 때,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건너는 등의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의심하며, 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의심할 확률이 높다.
 
한편 오번 대학 연구팀은 환경이나 교육 같은 후천적 요인도 종교 유무에 영향을 줄 것으로 추정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던 사형수 등이 감옥에서 갑자기 종교심이 발동한다면 이런 경우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종교가 진화 유전학적 차원에서 규명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최초 사례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신앙심마저도 타고날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http://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입니다.



태그:#종교, #신앙, #유전, #MRI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