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쿵!'

순식간에 들리는 소리, '으으....' 마치 풀밭에서 뱀이라도 밟은 소름 돋는 느낌으로 차를 세우고 내렸다. 뒷 문짝이 푹 찌그러져 들어가고 열리지도 않는다. 상대방차에서도 젊은 청년이 내려서 나왔다.

"다친 데는 없어요?"
"저는 괜찮은데 어떠신가요?"


뭐 대충보니 차만 상하고 사람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러니 아름다울 상황은 아니지만 죽고 살 일도 아니다. 어차피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수리해야 할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차 소리 높이고 욕 비슷하게 따지는 거 하는 스타일이 아닌 나는 안부를 묻고는 서로 보험사에 연락을 하자고 말했다.

10년만에 난 접촉사고

'힘든 짐을 지고 가는 중에는 깃털 하나라도 올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런 종류의 작은 사고도 무거운 쇳덩어리가 되어 발에 매달리는 느낌이다.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임에도...
▲ 차 접촉사고 '힘든 짐을 지고 가는 중에는 깃털 하나라도 올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런 종류의 작은 사고도 무거운 쇳덩어리가 되어 발에 매달리는 느낌이다. 누구나 있을 수 있는 일임에도...
ⓒ 김재식

관련사진보기


상당히 오래된 낡은 내 차보다 젊은 청년의 하얀색 새 차가 수리비 훨씬 많이 나오게 생겼다. 운전 20년만의 두 번째 접촉사고, 10년쯤 전에 어머니 모시고 포항을 갔었다. 좋아하시는 물회 사드린다고 주차장 들어서면서 가볍게 접촉사고가 났다. 내 차는 오래되어 고치는 것도 포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10년만의 접촉사고다.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하나?

'왜 사고가 났을까? 그것도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서있던 차와 비어 있던 차선을 둘이 동시에 들어가다가 옆구리를 푹 들이받히는 어이없는 사고를...'

한 가지 생각이 아무래도 걸렸다. 사고 나기 방금 전 학교기숙사로 막내 딸아이를 데려다 주고 왔다. 가는 차 안에서 막내아이는 나와 아내에게 걱정스런 숙제를 넘겼다. 군대생활처럼 규제를 받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기숙사생활이 너무 싫다고 호소를 했다. 어려움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결국은 한 학기만 다니고 2학기에는 자진해서 나오겠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병원에서 7년차 들어가는 환자로 살고 있다. 나는 간병하느라 24시간 메여있고, 도저히 아이 숙식을 살펴줄 형편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렇다고 싫어서 너무 힘들다는 아이에게 강요만 하는 게 해답도 아니고, 그 문제로 내가 아무래도 주의를 덜 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학사 자진 퇴소와 관련 엄마와 의논해보마 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나 그 걱정을 나도 모르게 운전 중에 하느라 그만.

그렇다고 그게 썩 좋은 핑계는 안 되는 거 안다. 어디 시외버스나 택시기사님들은 모두 가정이 없고 아무 걱정도 없어서 날마다 안전운행 하는 건 아니니까. 그 일들이 차 접촉사고와는 직접 연관이 없는데도 한꺼번에 범벅이 되어 피곤함으로 나를 덮친다. 나도 모르게 뱉어지는 한 숨, '살기가 왜 이리 힘들어...'

"잘 고쳐주세요!"
"최대한 비용이 적게 나오게 좀 부탁합니다."


이야기 중에 내 형편을 얼핏 들은 보험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수리할 공업사 사람에게 부탁했다. 나는 접촉사고 상대에게 악수를 했다.

"새 차가 망가져서 속상하겠네요. 설 명절을 앞두고, 그래도 금방 고친다니 마음 풀고 설 잘보내세요!"

속도 좋은 건지, 정말 감정없이 잘 마무리해서 그런지 돌아와서는 마음이 좀 평안해졌다.안 그러면 한참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려 밤 12시 40분에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왜 아직 안자고?"
"나 때문에 그런 거야?"
"아냐, 아빠가 진짜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하늘에서 아주 가벼운 걸로 정신 차리라고 해주셨다! 아무도 안 다치고!"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내가 올린 페이스북의 넉두리를 딸아이가 본 모양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걱정할까봐 아무 말도 안했는데 인터넷은 정말 무서운(?) 소통이다. 밤 11시에 쓴 글을 12시에 공부 끝나는 아이가 보고 한 시간도 안 지나서 전화를 해오다니!

아직 직접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 그럼에도 보내주시는 음식으로 병원 음식의 아쉬움을 채운지가 일 년이 되어 간다. 고마운 분들이 주는 힘.
▲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의 음식 나눔 아직 직접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 그럼에도 보내주시는 음식으로 병원 음식의 아쉬움을 채운지가 일 년이 되어 간다. 고마운 분들이 주는 힘.
ⓒ 김재식

관련사진보기


차를 공업사에 보내고 꼼짝 못하고 며칠을 보냈다. 그런데 아는 분께서 설 명절 음식을 해서 택배로 보내려다가 상할까봐 시외버스로 보내주셨다. 걸어가서 찾아서 낑낑 메고 병원으로 돌아와 풀어보니 완전히 종합선물이다. 전이랑 잡채, 시금치와 고사리 나물, 과일까지, 벌써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헷갈릴 정도로 여러 번 보내주셨다.

<경향신문> 1면에 실린 우리 가정 이야기


상하는 마음과 빠져 들어가는 우울한 상태를 돌려 세울만한 기쁜 일이다. 그래서 기운을 내려는데 세상이 그렇게 단편드라마처럼 호락하지 않다고 또 누가 뒷통수를 때렸다. 음식이 오는 날 아침에 나온 조간 <경향신문> 1면에 우리 가정의 이야기가 실렸다.

- ‘중증환자, 절망 더 깊어진 이유’라는 제목으로 나간 기사, 작년의 쓰라린 장애등급 추락으로 속상하던 일이 다시 떠올라 많이 힘들다. 그럼에도 자기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추적하고 압력을 느끼게 한 공공기관의 태도로 다시 힘들다. '유서라도 남기고...'라는 끔찍한 충동을 일으켰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 2014년 1월24일 경향신문 - ‘중증환자, 절망 더 깊어진 이유’라는 제목으로 나간 기사, 작년의 쓰라린 장애등급 추락으로 속상하던 일이 다시 떠올라 많이 힘들다. 그럼에도 자기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추적하고 압력을 느끼게 한 공공기관의 태도로 다시 힘들다. '유서라도 남기고...'라는 끔찍한 충동을 일으켰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혹독한 댓가를 치른다.
ⓒ 김재식

관련사진보기


작년, 그러니까 2013년 2월12일 <경향신문> 1면에 복지관련기사로 실렸던 후속 기사로 1년 만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취재한 기사다. 그야말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요?'라고 묻는 질문에 쌓인 속상함들을 풀어놓았더니 기사에 그대로 나갔다. 4대중증질환 비용 국가부담이니, 상급실비, 간병비도 국가가 지원한다던 공약(公約)[)이 다른 의미로 공약(空約)이 되어버린 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겪고 아는 문제니 넘어가고, 장애등급 재판정의 억울했던 과정도 토로했다. 그리고 힘든 병원비용 문제도,

그걸 본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항의성 전화가 신문사 취재기자에게 왔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기자분이 내게 물었다.

"심평원에서 연락처와 병원을 알려달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왜 그러는데요?"
"왜 보험으로 해주는 인공도뇨 의료용품비용까지 안주는 것처럼 말하느냐고, 확인하겠다네요"
"그건 종합병원이나 비뇨기과가 있는 상급병원에서는 처방에 의해 지원해주지만 작은 규모의 대부분의 재활전문병원에서는 환자가 자기 비용으로 모두 구입해서 인공도뇨를 하는데요?"

그랬다. 아내도 응급실 거쳐 강남 S병원이나 지금 다니는 국립암센터에서는 넬라톤 의료용품이 다 지급이 되었다. 보험처리로, 하지만 교통사고나 다른 난치병 등으로 장기환자가 된 사람은 거의 병원에 오래 있지 못하고 작은 재활병원이나 요양원으로 가게 제도를 만들어놓고는 뭔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그리고 항암주사도 보험처리가 되는데 안 되는 것처럼 말했다면서..."
"그건 암환자야 당연히 적용해주지만 아내 같은 희귀난치병 환자는 100% 비보험으로 현금만 받아요. 참 답답하네요. 국회에 가서 사례발표회도 가지고 청원까지 해도 외면하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마음으로 물어보는 거라면 다 알려주라고 기자에게 병원이름과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연락처까지! 하지만 아닌 경우라면 취재원보호차원에서 말해주지 않겠다고 그 기자분은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후에 또 다른 곳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의 병인 다발성경화증 환우회 실무자에게 심평원이라면서 같은 질문을 하더란다. 그 분은 걱정 반, 궁금 반, 내게 사실을 말해주면서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겠냐고,

"해마다 희귀난치협회와 환우회에서 넬라톤용품과 기저귀 등을 지원해주잖아요. 우리도 두 번이나 받았고, 만약 보험으로 병원에서 다 준다면 왜 그렇게 지원하겠어요?"
"그렇네요. 근데 왜 물어보지요? 그걸 모르나?..."


통화를 곁에서 듣던 아내는 불안한가보다. 이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입원해있는 병원에도 물어보고 하면 참 애매한 압력이 된다. 귀찮아지고 행여나 불이익이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 원망도 듣게 된다. 참 속상하다. 할 말을 한 것뿐이고, 심지어 뭘 기대안하니까 그저 더 나빠지는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나 안 되었으면 좋겠다. 그걸 소원이라고 인터뷰 끝에 말했을까. 그런데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여기저기 쑤셔댄다. 세상 참 살기 힘들게 한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가장으로 해야할 일을 해야 하고, 제 힘으로는 거동 못하는 5급 장애인 같지 않은 5급 장애인 아내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 또한 설이 가까워지면서 건강한 사람들과 비교되어 울적해지는 심사를 감당하느라 허덕인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는 이유

살라는 건지 살지 말라는 건지 세상인심 참 박하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고 어깨가 쳐저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오랜 간병일기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책 내용으로 제작한 CBS기독교방송국 '새롭게하소서'에서 드디어 방송일자가 잡혔단다.  설 연휴를 마치고 일에 복귀하는 2월 3일 오전 중에 방송이 나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개편 분위기에 어울리는 1분짜리 애니메이션 예고편도 유튜브에 올렸다.

어느 페이스북 친구가 그걸 보고서 메시지를 보내 왔다. '눈물 나서 혼났다'고, 듣고 보니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희귀난치병 환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그것도 점점 지원이 줄어드는 추세인 장애인 정책과 복지정책 속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정말 눈물 나게 힘들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실감한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 말은 절망이 아니다. 벌써 몇 개월째인지도 셀 수 없는 긴 시간을 장애인 및 기초수급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길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 때문에 미안해서, 고마워서! 그리고 그로 인해 조금씩 사회 여론이 움직여지고 법 개정이 되어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새해의 1월 후반기 간병일기



태그:#새롭게하소서,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희귀난치병, #경향신문, #중증질환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