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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정상들이 역사교과서 내용에 개입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1월 13일자 <뉴욕타임스> 사설
▲ 정치인과 교과서 한일 양국 정상들이 역사교과서 내용에 개입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1월 13일자 <뉴욕타임스> 사설
ⓒ 뉴욕타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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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이 보여주고 있는 교과서를 고치려는 위험한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부인하려는 위협이다.

지난 13일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사설 '정치인과 교과서(Politicians and Textbooks)' 후폭풍이 크다. 정부, 여당, 언론이 나서서 대대적으로 이 신문을 공격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신문의 관심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미국의 산적한 현안을 쓰기에도 부족한 지면을 통해 이 신문이 강조한 대목은 맨 마지막 문장, '역사 교과서를 고치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 집권 후 '역사 교과서'는 안녕하지 못했다. 역사 교과서에 이토록 집착했던 정권이 또 있었던가.

결국 교학사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8개 역사 교과서 중 하나로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지만 1794개 고등학교 중에서 이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0'곳이다. <조선일보>는 칼럼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전쟁'을 통해 '(교학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기술한 교과서'라고 평하면서 채택 거부를 좌파들의 공세로 비판했다.

언어의 마술사들인가. 과거를 긍정적으로 기술했다는 표현이 갖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과거'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박정희 시대도 포함돼 있다.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이 거부된 까닭은 신뢰도에서 찾아야 한다. 오류로 수정한 건이 1400여 건이고 최종 승인을 받은 교과서에서도 수백여 개의 오류가 지적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를 구하지 못한 교육부에서는 뜬금없이 '국정교과서' 신공을 발휘했다. 교학사 교과서의 참패를 확인한 후 교육부가 지난 13일 새누리당과 당정협의를 하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교과서 발행체계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양대 원칙을 제시했는데 '사실에 기초한 기술', '균형 잡힌 역사인식 담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집념은 집요함을 넘어선다. 여전히 교육부는 '사실'과 '균형'을 언급하고 있다. 자신들이 검정해서 시장에 배포한 교과서가 버젓이 있는데 지속적으로 사실과 균형 잡힌 역사관을 언급한다면?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부터 무형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 대대적 반격에 나선 박근혜 정부 왜?

교육부가 '한국사 구하기'에 올인하던 무렵인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한일 양국의 정상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반영해 역사 교과서를 다시 집필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제 식민시대와 그 이후의 한국 군사독재 부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신문은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세계 2차대전과 친일 협조에 민감한 집안 내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정면으로 언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 한국이 식민지배를 당하던 시절 일본 제국군대의 장교였으며, 1962년에서 1979년까지 한국의 군사 독재자였다"고 언급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교육부는 14일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가 반영된 교과서를 재집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외교부 역시 14일 "뉴욕타임즈 측에 잘못된 사설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가 미국 언론 사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UN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도 있다는 말인가.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가세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사실관계가 틀린 황당한 사설을 게재한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며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 윤 의원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해서 "(<뉴욕타임스> 사설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국제사회에 그릇된 편견을 조장할 것"이라고 지적한 후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공식 사과보도를 게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도 외국 언론 사설에 대해 이례적으로 맞대응을 했다. 이 신문은 16일자 사설 '한국사 교과서를 日 역사 왜곡과 같이 본 NYT는 사과하라'에서 "이 사설은 기본적인 사실부터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면서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등) 이들 교과서에 대해 특정 관점으로 재집필을 요구한 발언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주장하며 <뉴욕타임스>의 사과를 공식으로 요구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적인 권위지로 인정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처절한 자기반성'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2003년 3월 11일 이 신문은 1면에 자사 기자인 제이슨 블레어를 해고하며 그가 그동안 수십 건의 기사를 날조했음을 독자들에게 고백했다. 신문은 여러 개 지면을 통해서 "블레어의 기사는 본사 152년 전통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라는 점에서 사과드린다"며 처절한 반성을 했다. 편집인과 편집국장도 사퇴했다.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한 말처럼 '사과요구'를 한다면 <뉴욕타임스>의 대응은 어떠할까? 사과 요구 자체를 언론에 대한 압력으로 규정해 오히려 그것에 주목한 후속 보도를 할 것인지, 공은 <뉴욕타임스>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박정희 군사 독재를 무너뜨린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

김영삼 총재의 인터뷰를 게재한 79년 9월 16일자 <뉴욕타임스>. 이 인터뷰로 인해서 YS는 의원직에서 제명됐고, 부마항쟁이 발발했으며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인터뷰 김영삼 총재의 인터뷰를 게재한 79년 9월 16일자 <뉴욕타임스>. 이 인터뷰로 인해서 YS는 의원직에서 제명됐고, 부마항쟁이 발발했으며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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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35년 전으로 돌려보면 한국 정치사 중심에 또 다시 <뉴욕타임스>가 등장한다. 1979년 9월 16일자 지면에 한국 야당의 간판인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등장한다. 유신정권은 국내 언론은 통제하고 있었지만 외신까지 장악할 수는 없었다. 이 틈을 비집고 미국 언론이 김영삼 총재의 집에서 회견을 갖고 이를 가감 없이 보도했다. 김 총재는 이 자리에서 '미국은 독재정권인 박정희를 택할 것인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수를 택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김 총재는 "(1979년 6월) 카터 대통령의 방한이 박정희 대통령 위신을 크게 높여주었다"며 "박 대통령이 반대세력을 말살시키도록 힘을 실어주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내가 미국 관리들에게 '미국이 박 대통령에게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그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한국 국내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김 총재는 "나는 지금도 북한과 대응하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자유선거를 통해 우리 정부를 선택할 자유라고 확신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이해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 김 총재의 인터뷰가 게재된 직후 국회에서는 그에 대한 제명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시절에는 야당 총재가 외신과의 회견에서 현 정권을 비판하면 제명처리가 되었다. 제명의 후폭풍은 컸다. 야당이었던 신민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치는 아노미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 때 김 총재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마산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그리고는 궁정동에서 총탄 소리가 들렸다. 서울에는 봄이 찾아왔다.

<뉴욕타임스> 보도 4일 후 국내 언론에서는 1면 머릿기사로 김영삼 총재의 회견 소식을 전했다.
▲ 파문의 시작 <뉴욕타임스> 보도 4일 후 국내 언론에서는 1면 머릿기사로 김영삼 총재의 회견 소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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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회견에서 김 총재는 "(독재정권이) 나를 체포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는 유신정권이 야당 당사에 경찰을 진입시킬 정도로 이미 극한의 대립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김 총재는 이 신문과의 회견으로 정치인에서 제명됐고, 박정희 정권은 몰락했다.

그로부터 35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결의가 대단했던 야당 투사 김영삼 총재는 투병 중이다. 독재정권으로 비판받았던 박정희의 딸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또 다시 <뉴욕타임스>가 새해 벽두부터 한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를 고치려 한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35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체돼 있었던 것인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35년 전과 달리 보도 내용을 가지고 한국 정부에서 공식으로 항의했고, 이 신문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여당 고위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이 신문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35년 전과 다른 대목이다.


태그:#역사교과서, #뉴욕타임스, #김영삼 ,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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