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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하원 의원 레인 에번스를 아는 한국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미주한인 동포들이 많이 살지 않는 미국 중부지역 일리노이주에 지역구를 가진 미 연방하원 의원이었다. 한국과도 별로 인연이 없었으며 이미 지난 2006년에 지병인 파킨슨씨병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정계를 은퇴했기 때문이다.

레인 에번스. 나는 그가 아직 생존해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2007년 미 연방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위안부결의안에 결정적 동기를 제공했던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늦게나마 이 글을 쓴다. 식물인간이 되어 정계은퇴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6년이 넘게 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위해 끝까지 노력했던 레인 에번스 의원의 숨겨진 노고를 여기에 밝히고자 한다.

6년의 노력, 레인 에번스 의원을 아십니까

레인 에번스 전 민주당 하원 의원.
 레인 에번스 전 민주당 하원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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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인 에번스라는 미 연방하원 의원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05년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미국에 살았다. 세계의 많은 사람은 2차대전 때 나치의 유태인 학살 만행 등을 알고, 이를 끊임없이 규탄한다. 하지만 같은 2차대전의 전범국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점에 나는 놀랐다.

나는 노골적인 일본의 침략 역사왜곡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고 일본의 진실한 사죄와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공소시효가 없는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5년 UN창설 60주년을 맞아 뉴욕의 UN본부 앞에서 일본의 위안부강제동원과 악명 높은 일본군 731부대의 인간생체실험을 고발하며 사죄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아내와 함께 두 달째 계속했다.

2005년 8월 10일부터 UN본부 앞에서 시작한 일제침략만행규탄 1인 시위를 UN정기총회가 끝나는 9월 30일에 끝마쳤다. 그 후 고등학교 선배이자 청와대에 함께 근무했던 당시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 위성락 정무공사(현재 6자회담 수석대표를 거쳐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대사로 근무하고 있음)에게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고발하기 위해 필요한 친한파 미 연방의원들에 관한 자료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미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 위안부결의안이 6년째 계속 제출되고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레인 에번스라는 연방하원 의원이 일본 측 로비스트들에 의해 해마다 통과가 좌절되면서도 6년간 계속해서 위안부결의안을 제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뜻밖이었다. 사실, 2007년 미 연방하원에서 본격적으로 위안부청문회가 열리고 만장일치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될 때까지도 6년째 계속해서 위안부결의안이 제출됐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과 별 인연이 없다는 레인 에번스 미연방하원 의원. 그는 왜 무엇 때문에 그리도 끈질기게 6년간 계속해서 위안부결의안을 제출하는지 궁금하고 요청한 자료도 얻기 위해 2006년 워싱턴DC에 갔다.

그때 레인 에번스 의원의 오랜 여자친구가 한국인 서옥자라는 분이란 걸 알았다. 서옥자씨는 미주 동포들로 구성된 한국정신대문제 워싱턴DC대책위원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서옥자씨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 분노한 레인 에번스 의원은 2001년부터 6년째 끈질기게 위안부결의안을 미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계속 일본 측 로비스트들의 집요한 방해로 통과되지 못 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1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인,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검정무효화 국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1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학사 교과서 폐기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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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서옥자씨를 만나 6년째 계속해서 레인 에번스 의원이 위안부결의안을 제출하게 된 과정을 들었다. 서옥자씨는 워싱턴DC 연방의원 사무실에서 일하는 애나벨 김이라는 한국여성, 필리핀계 여성들과 함께 연방의원 사무실을 꾸준히 방문해 위안부결의안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6년 레인 에번스 의원은 지병인 파킨슨씨병 때문에 식물인간이 되어 마지막으로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 위안부결의안을 여섯 번째 제출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6년의 꾸준한 노력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된 외교위원회 동료의원들과 캘리포니아에 지역구를 가진 톰 랜토스 하원외교위원장의 도움으로 그의 마지막 위안부결의안이 외교위원회를 전격적으로 통과했다. 미연방의회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미주 한인 사회에도 관련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6년 12월 말로 끝나는 미연방하원 본회의 종료와 함께 위안부결의안도 자동으로 폐기되고 만다.

미 연방하원 본회의에는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지만, 그의 6년간의 끈질긴 노력과 감동적인 스토리가 다른 동료 의원들에게 전해지면서 캘리포니아에 지역구를 둔 일본계 마이클 혼다 의원이 2007년도 연방의회 시작과 함께 위안부결의안을 다시 연방하원에 제출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뒤 뉴욕, 뉴저지, 워싱턴DC, 샌프란시스코, LA, 캘리포니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미주 한인 동포들의 나섰다. 이들의 적극적인 풀뿌리 로비와 성원으로 미 연방의회에서 본격적인 위안부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식물인간이 되어 정계은퇴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안부결의안을 제출한 레인 에번스 의원. 그에게 감동받은 하원 외교위원회 동료의원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홍보, 때마침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에 취임한 샌프란시스코 출신 낸시 팰로시 의장과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마이클 혼다 의원이 2007년 연방하원에 다시 위안부결의안을 냈다. 이 안은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의 지지를 받으며 일본 측 로비스트들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고 극적으로 만장일치 속에 미 연방하원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었다.

한국의 교과서는 도대체 왜...

레인 에번스,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던 미 연방하원 의원. 그는 우연히 한국인 여자친구를 통해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알고 용서할 수 없어 파킨슨씨병으로 식물인간이 되어 정계은퇴를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위안부결의안을 제출했다. 

그의 6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이 결국 미 하원에서의 위안부결의안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꽃다운 청춘을 잃어버리고 수십 년 동안 가슴 깊은 한을 품고 살아왔다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원통한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전 세계를 향해 우리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목청껏 소리높여 고발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만련된 것이다.

미국의 여러 주정부를 비롯해 유럽의회,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등에서도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위안부결의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4년에 미 연방하원은 2007년도에 미 연방하원을 통과한 위안부결의안을 근거로 미국무부 해외업무 세출법안에 '2007년 7월 30일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H. Res. 121) 통과를 주목하고 국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일본 정부가 이 결의안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독려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내용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러나 얼마 전, 우리나라 역사교과서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던 위안부가 마치 일본군을 따라다닌 것처럼 표현했다. 그러다 국민들의 엄청난 분노와 저항으로 "강제로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았다"라는 표현으로 바꿨다고 한다. 정말 그런 내용을 교과서에 담아 발행하려 했는지, 그런 역사교과서를 승인해준 대한민국 교육부는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참으로 기가 막힌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친일축소와 친일미화 내용의 역사교과서를 만들게 한 배후에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는 사설까지 실었으니 정말 나라 망신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오도록 만든 교육부 당국자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태그:#역사교과서, #위안부결의안, #교학사교과서, #뉴욕타임스, #박근혜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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