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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련 측이 2013년 11월 7일, 기성회비반환청구소송 2심을 앞두고 마련한 펼침막
 한대련 측이 2013년 11월 7일, 기성회비반환청구소송 2심을 앞두고 마련한 펼침막
ⓒ 박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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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대 기성회비 문제가 다시 한번 논란의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성회비 납부가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이 연달아 나왔으나 국·공립대와 교육과학기술부(아래 교육부) 측은 '어쩔 수 없다'며 다시 한번 기성회비를 징수할 예정이다.

기성회는 1963년 전국 국·공립대학에 설치된 단체다. 당시 국가 재정만으로 국립대학을 운영하기 어려워 학부모들로부터 후원금 성격의 자금을 거출했던 후원단체였다. 기성회비는 1963년 문교부 훈령에 따라 부족한 학교시설과 학교운영 등에 필요한 비용을 보충하기 위한 자금을 뜻한다.

본래 기성회비는 부족한 일반회계를 보충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등록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국립대 등록금 인상의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국립대학 등록금 중 기성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74.5%였다.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기자가 납입한 2013학년도 2학기 등록금 277만2990원 중 기성회비는 267만3000원으로, 그 비중이 약 96%나 됐다.

기성회비가 국·공립대 회계에서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이유는 '대학 자율화'의 영향이 크다. 1988년 9월 노태우 정부 당시 등록금 자율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국·공립대 스스로 기성회비를 책정할 수 있게 됐다. 대학 회계는 일반회계와 기성회계, 두 가지로 나뉜다. 국가가 지원하는 국비가 일반회계, 학생들이 낸 등록금 중 수업료를 제외한 기성회비가 기성회계에 들어간다. 이후 정부는 대학재정이 기성회비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을 방치했다. 국·공립대는 총장과 부총장,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기성회 이사회를 통해 기성회비 비율을 꾸준히 증가시켜왔다.

이에 2010년 11월 서울대·부산대를 포함한 전국 8개 국·공립대 학생들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아래 한대련), 반값등록금운동본부가 함께 구성한 '기성회비반환청구소송인단'은 국가와 각 대학 기성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3년 1월 1심과 11월 2심에서 연달아 소송인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1월과 11월 판결의 요지는 '국가가 아닌 대학 기성회가 학생 1인당 10만 원씩 반환하라'는 것이었다.

두 판결은 공통적으로 '기성회비 납부에 법령상의 근거가 없다'는 점과 '대학 기성회의 부당이득에 대해 국가의 반환책임은 없다'고 명시했다. 2013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방송통신대 학생 10명이 제기한 기성회비 전액 반환청구 소송에 대해 "대학이 원고에게 각각 79만2500원~396만7000원을 반환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기성회비 반환청구 소송이 학생 측의 승리로 끝나도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육부와 국·공립대는 대학재정이 파탄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원이 '국가의 책임은 없다'고 판단하면서 기성회비 반환 주체를 각 대학 기성회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국·공립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이 재판을 근거로 반환소송을 제기할 시, 국·공립대가 반환해야 하는 금액은 최대 13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공립대에 재학 중인 기자의 '전체 등록 내역'
 국공립대에 재학 중인 기자의 '전체 등록 내역'
ⓒ 오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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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75%가 기성회비... "국가가 국·공립대에 책임 다하라"

국·공립대 측은 앞으로도 기성회비를 계속 걷는 것과 동시에, 정치권에 법적 근거 마련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자가 취재한 복수의 국공립대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방침이 내려오기 전까지 학교 측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국립서울과학기술대 남궁 근 총장은 2013년 12월 31일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여야는 기성회비의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주기 바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교육부 역시 지금으로서는 등록금에 기성회비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대학정책과 박성하 사무관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국회에서 발의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 하고 있는 중"이라며 "교육부도 근본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싶지만, 법안(재정회계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현재로서는 기성회비를 포함해 등록금을 거둬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3년 7월 새누리당 민병주 의원 등 10여 명의 의원들은 기성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아래 재정회계법)을 발의했다. 재정회계법은 논란이 됐던 '기성회 회계'와 국가가 관리하는 '일반회계'를 통합하여 운영하는 방침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국립대학도 사립대처럼 잉여금 이월 및 적립금 적립 등이 가능해진다. 교육부와 국·공립대가 기대를 걸고 있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공립대의 재정 운영이 사립대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며 재정회계법에 반발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재정회계법이 발의된 직후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기성회 회계 문제는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을 도입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부담하는 기성회비를 정부가 국고로 충당하고 기성회 회계를 폐지해야 한다"며 "정부가 국립대학 재정 부담 책임을 학부모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편법으로 도입한 기성회 회계 제도를 없애지 않고서는 어떤 개선책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주도한 한대련의 박지향 정책선전위원장 역시 재정회계법을 "최악의 해법"이라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기성회비 반환 소송은 '기성회비 징수 근거가 없다', '반환금을 받느냐 마느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국·공립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성회비 폐지가 대학재정 붕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한대련 측은 2013년 11월 7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정부가 나서서 그동안 국·공립대가 재정 마련을 위해 걷을 수밖에 없었던 기성회비를 법에 따라 폐지하게 하고, 국·공립대에 대한 예산지원을 대폭 확충해 60년간 방치해둔 국·공립대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덧붙이는 글 | 오주석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기성회비, #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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