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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와 상근 기자로 현장 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1주일여에 걸쳐 기획 보도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안 씨가 송전탑 공사장을 보면(원안)서 한숨을 쉰다.
 안 씨가 송전탑 공사장을 보면(원안)서 한숨을 쉰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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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압 송전선은 허공만 가르는 게 아니었다. 송전탑에 세워지기도 전에 경남 밀양 산외면 희곡리 골안마을의 공동체를 두 쪽으로 가르고 있었다. 높은 산자락을 둘러싸고 다랑논이 펼쳐진 청정 마을의 평화를 깬 것은 한전이 내민 보상금이었다.

지난 16일 밀양 송전탑 107번, 108번이 지나는 골안마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는 경찰 버스 6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50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 길 곳곳에는 100여 명의 경찰들이 배치됐다. 평균 70세 가량의 노인들이 거주하는 시골 마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안녕들 하냐고? 속이 부글부글... 우린 죽고 싶다"

이 곳에서는 송전탑 공사장 교대시간인 아침 7시와 오후 2시에 어김없이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노인들이 송전탑 공사장으로 향하는 작업자들을 몸으로 막아서면서 일어나는 싸움이다. 마을경로당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안 씨가 붙여 놓은 한전사장, 경찰,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대자보가 경찰들이 오르내리는 노인회관 입구에 결려있다.
 안 씨가 붙여 놓은 한전사장, 경찰,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대자보가 경찰들이 오르내리는 노인회관 입구에 결려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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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사장, 경찰, 대통령에게 요청합니다. 우리 주민들은 재산권 건강권을 위해 9년간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안녕'이라는 말은 남의 동네 이야기이고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 한전 국가가 되어 줄 것과 우리 주민의 수탈을 지금 당장 중지하기 바랍니다. 밀양 시장은 시민분향소 설치를 즉각 허용하기 바랍니다. 국민여러분들 침묵은 금이 아니고 악입니다. 불의와 거짓에 대하여 당당히 '아니다'라고 말해 주세요. -밀양765송전탑 경과지 주민 영수 드림" 

마을 회관으로 들어서니 10여 명의 주민들이 앉아서 기자를 맞았다. 기자가 "안녕들 하신가요?"라고 묻자 험악한 말부터 튀어나왔다.

"8년째 안녕하지 않다."
"죽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있다."
"총이라도 있으면 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때려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

부산에서 은행에 다니다가 퇴직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영수씨는 "이곳은 소나 돼지 한 마리도 안 키우는 청정지역으로 마을 주민들이 가족처럼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이었다"며 "옛날에는 길이 좋지 않아서 시집을 와도 가마 타고 산자락(송전탑 공사 중)을 넘었다"라고 회고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안씨의 모친은 최근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최근에는 헬기가 안 뜨고 있지만, 헬기소음에 귀가 거슬리고 겁이 난다. 정신이 산만해지고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차 타고 가도 헬기 소리로 들릴 정도로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송전탑) 공사 한다고 불을 환하게 켜진걸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든다."

"손자 같은 전경들이 군홧발로... 창피하다"

송전탑이 구불구불하게 힘 있는 지역은 비켜가고 약자들이 사는 마을만 지나가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송전탑이 구불구불하게 힘 있는 지역은 비켜가고 약자들이 사는 마을만 지나가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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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은 순식간에 정부와 한전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함께 둘러앉았던 어르신들이 너나없이 한소리씩 주고 받는다.

정년으로 퇴임하고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영수 씨
 정년으로 퇴임하고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안영수 씨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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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같은 전경들이 밀치고 자빠트려 놓고 머리 위로 군홧발을 들었다 놨다 한다. 창피해서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경찰) 저들은 법을 어기면서, 우리가 살짝 밀치기만 해도 '공무집행방해'로 (경찰서) 와라 가라 한다. 우리는 사람취급을 받는 게 아니고 짓밟히면서 개처럼 취급당한다." 

"경찰이 노인들을 시멘트 바닥에 쓰러뜨리고 있는데 안녕은 무슨 안녕이냐. 행복하게 잘 살던 아랫마을(양지)이 보상금 때문에 찬성하면서 지금은 철천지원수가 되어 버렸다.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욕만 하고 살고 있다."

"한전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보상금 가구당 516만 원을 지금 받지 않으면 앞으로 받지 못한다'고 소문을 내면서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평당 30~40만 원 하던 땅값도 떨어졌는데, 누구 하나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 내 재산은 하락하고 송전탑이 들어서면 조망권, 건강문제 등 피해가 한둘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해서 독립운동가 다 죽였는데, 그 놈들이 다시 나라를 장악하면서 나라 꼴이 이 모양이다."

안영수씨가 또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마을 이장도 반대한다고 해서 세워 놓았는데 언제 포섭이 되었는지 찬성한다고 떠들고 다녀서 주민들이 이장 취급도 안 하고 산다"며 "옛날에는 보름에 행사도 같이하고 즐겁게 지내던 아랫마을이 피해가 덜하다고 합의금 몇 푼에 눈이 멀어버렸다, 한전도 (주민) 몇 놈 합의했다고 이 지역이 다 합의한 것처럼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사과농사와 콩 농사를 하고 있다는 안씨는 송전탑 반대하느라 어제(15일)야 사과를 다 따서 밭에다가 두고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안씨의 집으로 따라갔다. 넓은 마당에는 사과 상자(10kg 2천 상자)와 콩(1.5톤) 자루가 쌓여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죽은 벌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김장을 위해 소금에 절여 놓은 배추도 그대로 눈에 띈다.

안씨는 "사과, 콩 등 농산물 직거래로 팔고 있는데 주문이 오면 제때 보내야 하는데 철탑 공사 막으러 다니느라 사과도 못 팔고 메주콩도 하나도 못 팔고 그대로 있다"며 "벌통도 관리를 못 해서 다 죽고, 나락도 아직 탈곡도 못 하고 그대로 쌓여 있다, 배추도 언제 절였는지 모를 정도로 부부가 (송전탑 반대) 이 일에만 매달리면서 집안 꼴이 엉망이다"라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마지막으로 안씨는 "밀양 외에 다른 분들이 이곳 실상을 정확히 모르고 우리가 나쁜 놈처럼 치부해 버린다"며 "송전탑에 대해 정확히 알고 우리를 욕해도 욕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송전탑 문제로 제2~3의 밀양 사태를 만들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지 한전은 입만 열면 거짓말뿐이라 그들은 믿지 못 한다"고 못을 박았다.

양지마을 주민들 "노인들이 불쌍하지만..."

안 씨 마당에는 미처 들이지 못한 사과가 쌓여 있다. 마당 한쪽에는 벌들도 죽어서 나뒹굴고 있다.
 안 씨 마당에는 미처 들이지 못한 사과가 쌓여 있다. 마당 한쪽에는 벌들도 죽어서 나뒹굴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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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 집에서 나와 송전탑 공사 전까지만 하더라도 골안 마을과 평화롭게 살았다는 양지마을을 찾았다.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부에서 하는 일인데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서 막겠느냐"며 "괜스레 정부에 밉보여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 윗마을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얻은 게 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는 일이고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울 자식들이 도시에 있는데 혹시라도 반대하다가 자식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면 그때는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라며 "우리도 마을 입구에 매일 같이 경찰이 와서 있는 것을 보면 안쓰럽고 불쌍하다, 늙은 사람들이 참아야지 얼마나 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반대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돈도 없고 혼자 살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힘이 있다고 반대를 해요, 괜히 나섰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병원비는 또 어떻고, 개인적으로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고 자리를 떴다. 

송전탑 공사에 찬성하는 주민을 좀 더 많은 접촉을 시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것이다"며 인터뷰 자체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혹시 피해가 올지 모른다며 사진 찍는 것도 극구 거부했다.

 밀양경찰서 "주민 인권과 안전에 최우선"
밀양경찰서는 26일 오후 <오마이뉴스> 보도와 관련 대한 입장문을 보내왔다.

밀양경찰서는 이 입장문을 통해 "지금까지 경찰에서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자빠트려 놓고 군홧발로 위협하는 행위는 없었다"면서 "현장배치전에 고령의 주민들을 고려하여 인권과 안전에 최우선하여 근무토록 교양하고 있고, 현재 배치된 병력의 착용 신발은 군화형태가 아닌 일반 등산화 형태"라고 밝혔다.

경찰은 또 "107-108번 공사현장 진입로에서 주민들이 한전의 공사인력 통행 및 경찰 급식차량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면서 "그간 마찰 과정에서 여경의 뺨을 손으로 할퀴어 상해를 입힌 주민 1명에 대해서만 밀양서에서 출석요구한 상태"라고 밝혔다. 



태그:#밀양 송전탑 , #밀양에서 보낸 편지, #밀양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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