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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에 붙은 대자보. '박근혜 선배님은 안녕하십니까'
 서강대학교에 붙은 대자보. '박근혜 선배님은 안녕하십니까'
ⓒ 김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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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 학생이다. 나는 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박근혜 선배님은 안녕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를 썼다. 이 대자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1년 임기에 대한 평가와 책임을 물었다.

다음은 대자보 전문이다.

박근혜 선배님께서는, 안녕 하십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이후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부터, 기초연금법 등 경제민주화·복지 공약들의 후퇴와 폐기,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화, 공무원노동조합의 설립신고 반려와 서버 압수수색, 최근에는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 7천여명의 직위해제와 간부 체포영장 발부 및 압수수색 등등. 2013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퇴행과 공안탄압, 노동권을 포함한 각종 인권 유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습니다.

이런 '하 수상한 시절'에 하나둘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시종일관 침묵과 무관심으로 대처하였고, 마침내는 '왜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느냐'고 질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상황의 본질입니다. 국민들이 더이상 후퇴하는 사회, 거짓말하는 정부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지경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그 의미를 대통령과 측근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렸습니다. 열악하게 일하던 많은 알바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복직 약속이 미뤄지고 있는 한진 중공업의 해고 노동자도, 대법원판결 이행 않는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도, 삼성 안에서 노동권을 주장하던 노동자도 자살했습니다. 얼마전 철도파업에 무리하게 대체인력을 투입한 결과로 한 승객이 사망하기도 하였지요. 돌아가신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 24명을 추모하던 분향소는 작년 겨울 무자비하게 철거되었고, 대선 때 약속했던 국정조사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일에는 송전탑 공사에 반대하며 음독하신 밀양 주민 고 유한숙씨의 분향소 또한 무자비하게 철거되었습니다. 1년동안 똑같은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합니다.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 ―얼마전 한 고등학생이 학교에 써붙인 대자보에 있던 구절입니다. 지금 온갖 곳에 써붙여지고 있는 대자보들은, 저 모든 죽음들에 대해, '내 탓이다' '우리 탓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의 삶을 즈려 밟고 그 위에서 살아가려니, 도저히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력 자급률이 2.8%인 서울에서 모자란 전력을 가난하고 힘없는 지역에서 끌어오느라 밀양의 할매들이 이 겨울에 벌거벗은 채 내동댕이쳐지고 있다고, 그것을 보니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철도가 자본의 논리만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고,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겠다며 생계를 뒤로하고 싸우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려니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평범한 대학생과 수많은 국민들이 '안녕하지 못'한데, 비상식적이고 야만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려니 '안녕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안녕' 하실까요. 국민의 호소에 질책으로 답하는 모습을 보니, 국민들이 내 탓이라며 느끼는 책임을 오히려 대통령께서는 느끼지 못하고 계시는 것 아닌지 의문스럽습니다. 대통령을 양성했다며 자랑하는 서강대학교의 교육이념은,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타인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선배님! 저는 선배님이 부끄럽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안녕 하십니까?
어떻게 안녕 하실 수가 있습니까?

2013. 12. 18.
사회 08 김윤영



태그:#안녕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박근혜, #서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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