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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 호반 임도를 따라가면서 본 풍경이다.
 장성호. 호반 임도를 따라가면서 본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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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문순태의 장편소설 <징소리>가 있다. 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실향민의 고향 잃은 아픔을 그리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뭉클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칠복이가 고향을 떠난 지 삼년 만에 미쳐서 돌아와 징을 두들기며, 댐을 막은 뒤부터 밀려드는 낚시꾼들을 쫓아댔다.…(중략)…뒷동산 각시바위에 댕돌같이 앉아서는 목이 터져라고 마을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대는가 하면, 느닷없이 징을 두들기며 겅중겅중 도깨비춤을 추었다."

갈 곳은 물론 그들의 역사와 사랑, 희망까지 잃어버린 아픔과 몸부림의 절규를 표현했다. 그 배경이 전남 장성의 수몰지구였다.

장성호반 임도. 장성호를 따라 걷는 길이다. 이른바 '생명의 녹색길'이다.
 장성호반 임도. 장성호를 따라 걷는 길이다. 이른바 '생명의 녹색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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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반 임도. 차량통행이 통제돼 있어 호젓한 분위기에서 걸을 수 있다.
 장성호반 임도. 차량통행이 통제돼 있어 호젓한 분위기에서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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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생명의 녹색길은 소설 <징소리>의 주인공인 허칠복의 고향을 생각하며 걷는다. 장성댐 제방에서 수변의 임도를 따라간다. 지난 11월 30일이다. 장성호는 영산강 유역의 홍수피해를 막고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1976년이었다.

길의 오른편은 산골짜기로 물이 가득 차 있다. 왼편은 잡목 우거진 숲이다. 길섶에 억새, 수크령 등 가을 들꽃이 아직도 남아 있다. 길은 화물차도 다닐 만큼 넓다. 하지만 차량통행이 통제돼 있다. 차도, 사람도 없는 숲길이 고즈넉하다. 온전히 나만의 길이다. 전망 괜찮은 곳에 팔각정자도 서 있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수변을 따라 오른쪽 수성마을로 간다. 왼편은 북일면소재지로 가는 길이다. 수성마을을 거쳐 장성호 조정경기장까지 가는 길도 한산하다. 가끔 호수의 정적을 가르는 보트만 지날 뿐이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수변 따라 수성마을로

장성호 보트. 초겨울 장성호의 적막을 가르고 있다.
 장성호 보트. 초겨울 장성호의 적막을 가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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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칠복의 쓰린 가슴을 떠올리기에 맞춤이다. 허칠복의 흔적이 남아있을 율행마을, 임실마을, 용암마을, 도곡마을, 장평마을을 그려본다. 지금은 물속에 잠긴 옛 장성군 북상면의 마을들이다.

도시를 떠돌다가 돌아와 물속에 잠긴 고향을 보면서 옛 친구들을 찾는 그이를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정신이 온전할 수 없었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초겨울의 경물이 고향 잃은 수몰민의 슬픔을 대변하는 것 같다.

수성마을을 지나자 길은 아스팔트 도로의 인도를 따라 간다. 햇볕 짱짱한 날이라면 걷기 부담스럽겠다. 걷는 길도 밋밋하다. 그러나 장성댐의 수려한 풍광이 발걸음을 위무해 준다. 저만치 보이는 내장산국립공원의 남창계곡과 입암산성도 아름답다.

남창계곡. 장성호반 임도에서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진다.
 남창계곡. 장성호반 임도에서 아스팔트 도로로 이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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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반 임도. 호젓한 숲길을 체험할 수 있다.
 장성호반 임도. 호젓한 숲길을 체험할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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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요양원에서 길은 남창계곡으로 이어진다. 입암산 남쪽에 위치한 계곡이다. 길이가 10리에 이른다. 계곡의 물길은 여섯 갈래로 나뉜다. 계곡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사철 아무 때라도 비경을 선사한다.

길도 계곡을 따라 지루하지 않게 이어진다. 계곡보다도 더 멋스러운 오솔길이다. 몇 개 남은 단풍 든 낙엽도 낭만적이다.

남창계곡에서 발길을 돌려 장성호관광지로 간다. 호반에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 간다. 데크 길을 연인들이 나란히 걷고 있다. 팔과 어깨로 서로를 감싸주며 걷는 모습이 예쁘다. 발걸음에서도 사랑이 묻어난다.

장성호 수변데크. 호반을 따라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장성호 수변데크. 호반을 따라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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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 수몰문화관. 호반 마을의 옛 풍경을 전시해 놓고 있다.
 장성호 수몰문화관. 호반 마을의 옛 풍경을 전시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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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길 끄트머리에 장성호관광지가 있다. 청동으로 빚은 임권택 영화감독이 반긴다. 장성이 낳은 불세출의 감독이다. 오른쪽으로 큰 물레방아가 보인다. 패랭이 모양의 정자도 멋스럽다. 그 정자 맞은편에 '장성호 북상면 수몰문화관'이 있다. 대를 이어 살아온 고향을 등져야했던 수몰민 5000여 명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1층에서 수몰 전 마을의 모습을 축소된 모형으로 만난다. 마을의 옛 사진과 당시에 쓰던 생활유물, 농기구가 보인다. 2층은 회의장, 3층은 수몰민들의 사랑방으로 꾸며져 있다. 실향민들이 아무 때라도 와서 고향 집처럼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곳이다. 옥상은 실향의 아픔을 달래면서 장성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쓰이고 있다.

"지금도 눈에 선하죠. 땀방울 배인 논과 들이 물에 잠기고, 우리가 뛰어놀던 마당 아래로 물살이 엉금엉금 기어들어오는 모습이요. 여기에 서면 매번 향수에 젖어들어요."

장성호관광지관리사무소 김경식(51)씨의 말이다. 김씨는 1977년 북상초등학교 36회 졸업생이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가슴 한켠이 또 애잔해진다.

장성호 북상면 수몰문화관... 수몰민 5000여 명의 애환 서려

수몰문화관과 수몰민. 주민들이 수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수몰문화관과 수몰민. 주민들이 수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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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 모양의 정자. 장성호 관광지에 들어서 있다.
 패랭이 모양의 정자. 장성호 관광지에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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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관광지 한쪽에 있는 조각공원으로 간다. 시와 글, 그림과 어록을 주제로 갖가지 조각작품이 세워져 있다. 김소월과 윤동주의 운율이 흐르고 있다. 장승업과 신윤복의 그림도 감상한다. 이순신 장군과 김구, 안창호 선생의 어록을 새긴 작품도 본다.

청백리로 칭송 받는 박수량 선생의 백비(白碑)도 한시와 함께 작품으로 서 있다. 보잘것없는 공이나 직위라도 크게 치장하는 요즘, 이름 하나 남기지 않았던 선생의 삶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작품 하나하나에 눈 맞추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장성호의 풍광도 아름답다. 호반을 걸으면서 봤던 풍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며 잠시 내 고향도 그려본다.

장성호 조각공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장성호 조각공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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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와 조각공원. 조각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장성호와 조각공원. 조각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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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장성나들목에서 1번국도를 타고 고창방면 야은교차로로 나간다. 여기서 석정온천방면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장성댐수변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태그:#장성호, #생명의녹색길, #장성댐, #장성호 수몰문화관, #장성호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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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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