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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 취임하였다. 그는 약 1300여년 만에 유럽이 아닌 지역에서 선출되었다. 교황청은 26일 홈페이지를 통해,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the Joy of the Gospel)'이란 제목으로 교황의 첫 번째, '교황 권고(apostolic exhortation)' 원문을 공개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란치스코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재위: 2013년 3월 13일~)이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1969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 되었으며, 2001년에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2013년 2월 2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함에 따라 열린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회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면서 예수회 출신 교황이며, 남반구 국가 중에서 나온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지난 8월에 교황이 직접 원고를 직접 작성했다고 하는 권고문은 과거 교황들이 의례적으로 작성한 형식적이고 딱딱한 문서는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했던 그의 경험과 애정이 따뜻한 언어로 녹아있다. 전체 244쪽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원문은 천주교가 앞으로 주로 어떤 부문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특히 제2장 1항,'현대 사회가 직면한 몇 가지 도전 과제'가 돋보인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어느 경제학자 못지않게 통렬히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폐, 금융투기, 불평등, 낙수효과 등 경제학 용어를 사용하여 현대 경제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과히 교황의 경제학이라 부를 만하다. 그 핵심은 각각의 소제목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교황 권고문의 해당 부분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현대 세계가 직면한 몇 가지 도전 과제
(Some Challenges of Today's World)

오늘날 인류는 많은 영역에서 이뤄진 발전을 통해 역사적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 교육, 통신과 같은 부문에서 이루어진 변화들만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시대의 대다수는 겨우 하루 벌어 살 정도로 비참하게 살고 있으며 또 수많은 질병에 걸려 살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이른바 부유한 국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다.

삶의 기쁨은 희미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고, 폭력은 늘어나고 있으며, 불평등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은 거의 사라지고 인간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시대사적 변화는 과학과 기술에서 일어난 막대한 질적, 양적, 급격한, 누적적인 발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다양한 영역에서 과학과 기술의 즉각적인 응용을 통해서 추동된 것이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종종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만들고 있다. 

배제의 경제는 아니다 

십계명에서 '살인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인간 삶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명확한 경계를 그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유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때다. 그러한 경제는 살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늙은 노숙자가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주식시장이 2포인트만 하락해도 뉴스가 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는 배제의 사례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먹을 것을 계속 버리고 있다. 이런 사회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는 불평등의 사례다. 오늘날 모든 것은,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누르고 사는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예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다수 대중들은 스스로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일자리도 없고, 희망도 없으며, 이를 벗어날 어떤 수단도 없는 채로.

배제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에서 어떤 의인간은 그 자체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다. 우리는 지금 만연하고 있는, '버리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는 더 이상 단순히 과거의 착취나 억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다. 미를 지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배제된 사람들은 단순히 사회의 변방이나 박탈된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심지어 그런 것의 일부조차도 아니다. 그들은 착취된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찌꺼기'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어떤 이들은 여전히 낙수이론(trickle-down theories)을 옹호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자유시장이 촉진하는 경제성장은 궁극적으로 좀 더 정의롭고 포용적인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 한 번도 사실로 입증된 바 없는 이러한 견해는, 현존 경제체제를 신성화하고,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의 선의를 맹목적으로 믿겠다는 조잡하고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배제된 이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타인을 배제하는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그러한 이기적인 이상에 대한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관심의 세계화가 발전하고 있다.

이를 알지도 못한 채,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에 대해서 동정을 느낄 수 없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함께 눈물 흘릴 수도 없으며, 그들을 도울 필요성조차 느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다. 마치 그런 모든 것들은 그들의 책임이지 내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번영의 문화는 우리를 죽이고 있다; 시장이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흥분하고 만다. 반면 기회의 부족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들은 단지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우상숭배, 화폐는 아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 중 하나는 화폐와의 관계에서 밝힐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화폐가 지배하는 현실을 우리는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 금융위기는 심오한 인간 자체의 위기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의 위기란 바로 인간이 최고라는 믿음의 부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창조하였다.

고대 황금 송아지를 숭배했던 이들이, 인간을 위한 진실한 목적이 결여된 비인격적 경제의 독재, 그리고 화폐에 대한 우상숭배로 위장하여 새롭고 무자비하게 복귀하였다. 금융과 경제에 영향을 미친 세계경제 위기는 그들의 불균형을 폭로하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한 것 중 하나로 환원되고 있다. 바로 소비다. 

소수의 소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가 분리되면서 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그 이데올로기는 시장과 금융투기의 절대적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떠한 형태의 통제를 실행하고, 공동선을 경계할 책임이 있는 국가의 권리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지만 가끔은 가상적인,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법칙과 규칙을 부과하는, 새로운 독재가 탄생하였다.

부채와 이자가 쌓이다 보니, 국가는 자신의 경제적 잠재력을 실현하기 어렵고, 시민들은 실질 구매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위의 것들과 더하여 만연한 부패와 전 세계적인 조세회피도 있을 것이다. 권력과 소유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윤의 증가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집어 삼키는 경향이 있는 이러한 체제에서, 환경과 같이 그것이 아무리 취약하다 하더라도, 유일한 규칙인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방어할 수 없게 되었다.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금융시스템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 뒤에는 윤리와 신에 대한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 윤리는 이제 모욕적인 조롱거리로 취급받게 되었다. 윤리는 돈과 권력을 상대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비생산적이고 지나치게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윤리는 또한 인간에 대한 조종과 가치하락을 비난하기 때문에 위협으로 느껴지고 있다. 실제 윤리는 시장 범주 밖에서 헌신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신으로 우리를 이끈다. 시장의 영역이 절대화 될 때, 신은 단지 통제될 수 없으며, 관리될 수도 없고, 심지어 위험한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의 완전한 자기실현과 모든 노예 형태로부터 해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이데올로기적인 윤리는 좀 더 균형적이고 인간적인 사회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 나는 금융 전문가와 정치 지도자들이 고대 격언 중 하나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의 부를 가난한 이와 공유하지 않는 자는 그들의 부를 훔치는 것이자 그들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재화는 우리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니라".

이러한 윤리적 고려를 담은 금융개혁은 정치적 리더들에게 관점상의 일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각각의 특수한 사항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안목으로 확고하게 변화를 맞이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화폐는 (인간에) 복무해야 하는 것이지,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교황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의무가 있다. 나는 우리들이 너그러운 연대성을 발휘하고, 인간에게 유리한 윤리적 관점으로 경제학과 금융이 돌아올 것을 권고하고 싶다.

폭력을 낳는 불평등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지역에서, 더 큰 안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사회와 인간 간 배제와 불평등이 회복되기 전까지, 폭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빈자와 극빈자들이 폭력을 일으킨다고 비난받고 있다. 동일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양한 형태의 공격과 충돌이 번성하여 결국에는 폭발하게 될 것이다. 지역, 국가, 또는 세계적으로, 사회가 자신의 일부를 변방에 남겨놓고자 한다면, 어떠한 정치 프로그램이나 법률 집행이나 감시 시스템에 자원을 지출하더라도, 무한정 평온함을 보장할 수는 없게 된다. 불평등이 체제로부터 배제된 이들로 하여금 폭력적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뿌리부터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선이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불공정한 악에 대한 인내는 사악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을 조용히 침식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시스템이 얼마나 견고하게 보이는 것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모든 행위가 결과를 지닌다면, 사회의 구조에 배태된 악은 분열과 죽음에 부단한 영향을 지니게 된다.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기반이 될 수 없는, 불공정한 사회적 구조에 확고히 뿌리 내린 악이다. 지속가능하고 평화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아직 충분히 고안되고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역사의 종말'이라는 부르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경제적 메커니즘은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또한 불평등과 결부된 억제되지 않는 소비주의는 사회적 구조물을 갑절로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불평등은 결국, 무력에 호소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무기와 폭력은 해결하기보다는 새롭고 더 심각한 충돌을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무력에 대한 호소는 안전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떠들썩하게 외치는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제공할 뿐이다.

어떤 이들은 빈국과 극빈국을 비난하면서 자신들 문제의 근원에 그들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부적절한 일반화에 빠져서, 그들을 해롭지 않은 존재로 만들고, 길들이고 진정시킬 수 있는 '교육'에 해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던 간에, 수많은 국가의 정부, 기업, 기관 등에서 뿌리 깊게 만연한 부패를 감안하면, 그러한 주장들은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고문을 통해 밝혔듯 현 경제체제의 문제점은 바로, 배제와 불평등, 화폐 숭배 그리고 금융투기이다. 프란치스코는 이 시스템을 새로운 '독재'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이는 마르크스, 케인즈, 폴라니…. 그 누구의 경제학도 아닌 바로 인간의 경제학이다.

원문이 발표되고 난 후 반향이 적지 않다. 영국의 가디언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단어를 인용하며, 부유층은 부를 공유하고 글로벌 지도자들은 일자리, 교육, 그리고 의료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교황의 발언을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교황이 현대 경제의 문제점을 밝힌 부문에 대해서,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짤막한 해설과 함께 13가지 차트를 추가하여 블로그를 게재하기도 하였다. 미국의 <The Atlantic>이라는 잡지는 20세기 후반기, 바티칸이 공산주의 세계와의 갈등에서 이제는 반자본주의로 급격한 전환을 이루고 있다며, 다소 과도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교황은 "교회가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가는" 현실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날로 확대되고, 민주주의는 갈수록 퇴보하는 지금 시기에 발표된 이 권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여경훈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재가공된 것이므로 완결된 보고서를 보고싶으신 독자는 새사연 홈페이지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태그:#프란치스코 , #복음의 기쁨, #교황 , #교황 권고, #교황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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