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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선 직후에 페이스북(페북)에 가입했다. '멘붕'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결과 때문이었다. 어디에서든지, 또는 그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그 누구와 함께라도 '동병상련'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가입하고 페북에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많지는 않았지만 댓글도 달렸다.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그뒤로도 페북에 제법 많은 글을 올렸다. 대다수는 <오마이뉴스>에 올라간 내 기사를 링크하는 수준이었다. 흔히 말하는 민감한 사생활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내 페북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친구'가 자신들의 사생활을 거리낌없이 올려놓고 있었다. 어느 식당에 가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있는지, 바로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중계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연애의 마지막까지 페북에 올릴까. 한 동료 선생님이 자신의 제자 이야기라며 내게 해준 얘기다. 자신의 남친과 보낸 마지막 순간의 이야기가 페북에 올라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페북에 올린 그 정보가 디지털 세계의 '유령'이 되어 떠돌 수 있다는 걸 그 선생님의 제자는 정녕 몰랐을까. 하지만 "강력한 인맥 형성 기능으로 10억 명의 제국"(138쪽)을 만든 페북의 매력은 그런 민간한 사생활 정보까지도 자연스럽게 노출하도록 만든다.

2011년 10월에 선보인 '타임라인' 서비스는 이용자가 올린 게시물들을 시간순으로 보여준다. 지인들끼리 추억을 공유하는 기능을 강화한 것이다. 타임라인만 살펴보면 한 인간의 삶을 짚어볼 수 있을 정도다. 한 번에 사생활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138쪽)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수집이 식은 죽 먹기?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겉그림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겉그림
ⓒ 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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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은 날로 발전하는 아이티(IT)시대의 '그늘'인 사생활 침해 문제를 다룬 책이다. 현직 신문기자들인 세 명의 저자들은 전통적인 개인정보인 주민등록번호(주민번호)제도를 비롯해 시시티브이(CCTV),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위치기반서비스(LBS), 빅데이터 등의 문제를 다룬다. 저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될 수 있겠다.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수집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니 당신의 모든 데이터를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지켜라!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자신의 사생활을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전해주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휴대전화번호와 같은 민감한 정보조차 중대한 '개인정보'로 보지 않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주 순식간에 보편화한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일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다종다양한 개인정보의 보고다. 이 정보들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유출될지 모른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보통신기술 덕분이다. 악의적인 사생활정보 수집꾼들은 개인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약간의 '해킹' 기술만으로도 수십 만 명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순식간에 빼내 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들은 왜 '나'의 정보를 수집하는가. '돈'이 되고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2011년 한 해 동안 생성된 디지털 정보 양은 1.8제타바이트로 추산된다. 32기가바이트 용량의 아이패트 575억 개가 필요한 양이다. 이 아이패드 숫자는 서울 전체를 두 번이나 덮고도 남는다. 혹자가, "그냥 뇌두면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분리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이라고 옹호하는 빅데이터를 설명하면서 저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빅데이터는 유용한 기술이다. 저자들의 설명을 들어 보자. 빅데이터는 한 마디로 '돈'이 된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자동차 위치정보와 교통량 분석을 통하면 전 지구적으로 연간 6천억 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예측이 있다. 독감 예방이나 금융위기 예고 등에도 빅데이터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 50만 대 이상을 판매해야 발견할 수 있었던 차량 결함도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1천 대 정도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페북, 김선달도 울고 갈 지경

물론 그런 '장밋빛 청사진'만 있는 건 아니다. 저자들은, 과학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가 2012년 '올해의 혁신상'으로 선정한 '구글 나우(Google Now)'를 비중 있게 다룬다. 구글 나우는 2012년 7월에 구글이 내놓은 검색 기능을 말한다. 구글 나우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스마트에서 생성되는 거의 모든 개인 정보, 가령 위치정보와 스마트폰 주소록, 문자메시지, 앱 목록, 이메일 등등이 제공되어야 한다.

구글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어디에 쓸까. 구글은 이들 정보를 정교한 광고 마케팅에 활용한다. 구글이, "'30대 남성'이라는 단순한 정보보다는 '서울 종로구에 살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며 평소 여가 시간에 액션 영화를 자주 보는 30대 남성'이라는 구체적인 정보"(238쪽)를 원하는 이유다.

인터넷에서 게임을 즐기고, 페북으로 지인들과 소통하는 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제공하는 개인정보를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나 즐거움 등과 등가교환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개인정보의 가치는 결코 적지 않다. 저자들이 인용하는 '프라이버시픽스'의 추산치를 보면, 페북에 제공하는 개인정보는 1인당 연간 1.68달러도 있고 12달러도 있다. 12달러에 해당하는 사람은 그만큼 페북 사용량이 많다는 얘기다.

이들 금액을 페북 사용 인구를 10억 명으로 해서 계산하면, 1억6800만 달러 내지는 120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1800억 내지는 13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 모두 사용자의 자발적인 정보 제공으로 벌어들이는 돈이다. 페북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돈 버는 격이다. 천하의 봉이 김선달도 혀를 내두를 만하지 않은가.

개인정보나 사생활 문제를 살피는 데에는 주민번호제도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저자들은 주민번호를 개인정보의 '허브'에 비유한다. 주민번호를 통해 수많은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개인정보의 핵심이 주민번호다. 하지만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전 국민의 주민등록번호는 이미 다 털렸다.

대한민국 국민의 주민등록번호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신상번호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복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까지 유출된 주민등록번호 숫자를 단순합계 해보면 9000만 명에 달한다. 신생아 등 영아를 제외하면 어림잡아 전 국민이 2번씩 개인정보가 털린 셈이다. (35쪽)

저자들에 따르면, 네이트닷컴(3500만 명 주민등록번호 유출)이나 넥슨 '메이플스토리'(1320만명 개인정보 유출) 해킹과 같은 대규모 해킹 사건이 거의 매년 발생하면서 국내 개인정보가 중국 등지에서 무차별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대량 개인정보와 포털 게임 사이트의 아이디 암거래 시장도 활발하다. 중국에서 거래되는 한국인 개인정보는 건당 중국 돈 1~2위안 정도라고 한다. 중국은 한국인 개인정보가 노출된 국가 중 가장 큰 비중(48.6%)을 차지한다.

저자들은 주민번호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제도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도 국민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제도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주민번호처럼 하나의 개인식별번호로 보편적 신분 확인을 하지는 않는다. 국가가 발급한 번호는 공적인 부분에 한정해 이용하고, 사용하던 번호는 변경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개인식별번호(신분증번호) 변경이 가능하다.

사생활 침해의 또 다른 원흉, 시시티브이

시시티브이는 사생활 침해의 또 다른 '원흉'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시티브이의 범죄 예방 효과를 더 중시한다. 갈수록 흉흉해지는 세태 덕분에 시시티브이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어느 정도 감수한다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시티브이가 실제로 범죄를 예방하기는 할까.

이 책에는 시시티브이의 범죄 예방 효과 여부를 다양한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풍선효과 이론이다. 특정 지역에 시시티브이를 설치하면 범죄자들이 감시 범위를 벗어나 범죄를 저지른다는 논리다. 시시티브이를 모든 지역에 빈틈없이 설치하기란 불가능하다. 풍선효과 이론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저자들은 풍선효과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2009년 박철현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한다. 이에 따르면, 강남구에서 시시티브이를 정책적으로 대거 설치한다는 소식이 보도된 시점을 전후로 이 지역의 강도와 절도 범죄는 절반가량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강남구의 인접 지역에서는 폭행이 12퍼센트 증가했다. 강남의 경우 강도, 절도, 강간의 순으로 범죄 억제 효과가 컸으나 살인과 폭행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강남에서 억제된 강도는 서초구나 광진구로 옮아갔다.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면 CCTV가 역으로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장소를 특정 짓는 효과를 갖고 있는 셈이다.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일부 지역으로 범죄가 집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역별로 CCTV를 설치할 수 있는 여력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가난한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일수록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서울 내에서도 자치구별로 CCTV의 숫자가 10배씩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87쪽)

저자들은 시시티브이에 대한 국민들의 과신을 '시시티브이의 신화'로 규정한다. 시시티브이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효과는 천차만별이며, 시시티브이를 설치하더라도 이것만을 믿고 상주 경비 인력과 같은 방범 요소를 줄인다면 오히려 위험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절도나 강도와 같은 계획 범죄의 예방 효과는 어느 정도 있지만, 성폭행이나 각종 충동적 범죄, 심리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범죄 등에서는 별다른 예방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사생활'은 헌법상 국민의 권리다.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그렇지만 평범한 우리는 그 권리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 페북에 자신의 마지막 연애 이야기를 올린 어느 여학생의 이야기도 남일처럼만 다가오지는 않았다. 사생활 노출이 그 여학생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지레 깜짝 놀라 페북에서 탈퇴한 이유다.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온 나를 페북 친구들은 어떻게 볼까. 이 자리를 빌려 무조건 용서를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김주완·이승우·임원기 지음 | 거름 | 2013. 11. 5 | 255쪽 | 13,800원)



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 그들은 왜 나를 수집하는가?

김주완.이승우.임원기 지음, 거름(2013)


태그:#<대한민국 사생활의 비밀>, #김주완, 이승우, 임원기, #거름, #개인정보, #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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