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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개별임원에 대한 보수를 공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임원 개인별로 보수를 공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17대, 18대 국회에서도 있었는데, 당시 재계가 이에 대해 적극 반대하며 법개정이 좌초된 바 있다. 재계의 반대논리는 임원간 위화감 조성 우려 내지 프라이버시 보호 등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들이 임원별 보수를 공시하는 쪽으로 제도를 변경함에 따라 재계의 반대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졌고, 올해 법개정에 이른 것이다. 한편, 금융위는 법의 시행을 앞두고 지난주 세부 시행방안을 발표하면서 개별임원 보수공시의 윤곽이 완성되었다.

개별임원 보수 공시의 목적

그렇다면 우선 개별임원에 대한 보수 공시가 왜 필요한지부터 알아보자. 그동안 개별임원에 대한 보수를 공시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로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기존 공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현행 임원에 대한 보수 공시가 총액공시 방식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개별 임원의 보수는 알 수 없고, 주주 내지 이해관계자가 회사 경영진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둘째, 이러한 불투명한 보상체계에 따라 지배주주나 CEO가 임원보수 책정 과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하여 이사회를 장악하는 것이 용이하였다. 셋째, 임원보수를 공시하는 것은 주주 및 투자자의 중요한 회사경영에 대한 판단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데 전혀 활용되지 못하는 등 공시로서의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임원들은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총수 내지 지배주주에게 충성하고, 유능한 인재가 회사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등의 왜곡된 보상체계를 형성함으로써 경영의 건전성 내지 투명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 한 요인이 되었다.

개정안의 임원 보수 공시체계, 문제 없나?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임원 개인에게 지급된 보수가 5억 원 이내의 범위에서 시행령으로 정하는 금액 이상인 경우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도록 하였다. 이에 대한 금융위의 시행방안은 공시의 대상을 법에 정한 상한인 5억 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임원(등기이사 및 감사)으로 정하고, '보수의 산정기준 및 방법'을 '필수사항'(보수총액이 산출된 내역을 소득세법상 근로소득, 퇴직소득, 기타소득으로 구분하여 기재)과 '자율사항'(세부적인 보수 산정기준 및 방법은 회사 자율적으로 기재)으로 구분하고, 공시 대상이 되는 보수를 급여⋅상여금⋅퇴직위로금 등 명칭과 형태를 불문한 세법상 근로소득, 퇴직소득, 기타소득으로 구분하여 기재하도록 하였다.

우선, 공시의 대상과 관련하여 시행방안은 연간 총 보수액이 5억 원 이상인 임원으로 정했는데, 이는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범위에 해당된다. 올해 4월 기준으로 상장법인이 1663개인데 이중 평균보수액이 5억 원을 상회하는 법인이 200여개 정도이고 대상자는 620여명 가량 된다고 한다. 대략 12%정도만이 공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어떻게 제도의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보수의 구체적인 내용(항목) 공시만을 강제하고,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산정기준과 방법의 공시는 회사 자율에 맡긴 점을 들 수 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 제도의 취지는 누가 얼마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임원 개개인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 성과에 연동하여 보수를 책정하는 기준, 그리고 이를 정하고 집행하는 절차를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회사 임원의 유인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세부 시행방안은 그 기준과 절차의 공시를 회사 자율에 맡김으로써 사실상 임원 개인별 보수액 만을 공시하는 제도로 전락할 빌미를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 이는 금융위가 법개정의 취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임원 보수공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개별임원에 대한 보수 공시는 주요 선진국에서 선행되었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서의 운용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CEO, CFO, 연봉 10만 달러 초과 상위 3명 임원에 대한 보수공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 따를 경우 등기임원에 대해서만 보수공시가 이루어지므로 등기이사 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경영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보수는 전혀 공시되지 않는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개별임원 보수공시에 따른 부담 때문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는 제도를 운용하기도 전에 허점이 이미 드러난 것으로, 미국과 같이 등기이사 외 연봉 상위자에 대한 공시를 의무화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처음부터 부실한 제도를 만든 것이다.

한편, 일본의 경우 해당 회사뿐만 아니라 주요 연결자회사로부터 받는 연결보수가 연간 1억엔 이상인 경우 연결보수도 공시하도록 하고 있고, 독일의 경우에도 개별회사뿐만 아니라 콘체른 차원에서 부여받은 주식옵션 등의 보수도 모두 포함하여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원보수를 해당기업에 한정하고 있고 스톡옵션의 경우 미행사된 부분은 포함하지 않고 있는데, 이 경우 공시 대상자의 범위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수의 산정기준 및 방법을 공시하는 것인데, 주요 선진국의 경우 명확한보수산정의 근거와 절차 및 방법 등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보수정책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주주 및 투자자의 중요한 경영판단의 참고자료인데 이를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이번 세부방안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에서 공시하라고 한 보수의 산정기준 및 방법을 시행령이 규정하지 않은 것은 시행령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금융위는 임원 개인별 보수공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이사회 산하에 이를 전담할 보상위원회 설치를 유도하고, 성과측정 및 보수산정의 구체적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여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입니다.



태그:#개별임원 보수공시, #임원보수, #보수 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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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혁연대는 소액주주 권익보호,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부의 재벌·금융정책 감시 등 1997년 이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활동을 보다 전문화하고 발전시키려는 경제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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