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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가 간파한 바 있듯, 지금 박근혜 정부에게 남은 카드는 오직 종북 카드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럽을 방문하여 각국의 정상들과 나란히 선 모습을 전송해 뿌리도 없이 덜컥거리는 권력의 정통성을 조금이나마 만회해 보려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부정선거의 오명만 알리고, 국민도 모르게 행하려던 '조공 외교'만 들통났다.

그때 마침, 꼭꼭 숨겨도 시원치 않을 부정선거의 수치를 에펠탑에서 펼쳐들고 성토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자, 박근혜의 근위병을 자처하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무기 '종북스티커'를 이들을 향해 마구 붙인다.

집회에서 참석자들 출석 부르고 소속 정당 확인하나

프랑스 파리 시위자들에게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위협해 논란을 빚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발언 경위는 여당 국회의원 자격을 떠나, 이념과 정파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말을 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 시위자들에게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위협해 논란을 빚은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 발언 경위는 여당 국회의원 자격을 떠나, 이념과 정파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할 말을 한 것 뿐"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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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집회한 사람들.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이 한마디로 극우계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신 김진태 의원. 발이 구름 위에 있는지 땅에 붙어있는지 구분조차 안 되는 듯, 횡설수설 일베식 화술로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말실수를 크게 하였건만, 그건 그저 일상적 사고가 말로 나왔을 뿐이기에 수습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동안, 그는 윤창중을 이을 현 정권의 '트러블메이커' 1위 자리를 거머쥔다.

무명의 설움을 단박에 떨칠 수 있었던 초특급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으나 그 강도가 너무 셌다. 언론의 조명을 연일 받던 그는 "내가 어떻게 시위대가 통진당(통합진보당)인 걸 알겠느냐, 주불한국대사관이 보고해서 알았을 뿐"이라며 핑계를 대는 찌질함과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게 뭐 나쁜 말이냐"는 '초딩 수준'의 멘탈을 들킨다.

급기야 민주당은 국회 전체의 품위를 격하시키는 김 의원을 국회윤리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결정하고, 집회를 주도한 재불 한인들은 끝내 사과를 거부한 김진태 의원 퇴출을 위한 청원운동을 시작한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명자는 1만 명에 육박한다.

그러자 이제 우파의 구원투수가 등판한다. 채동욱을 낙마시킨 1등 공신, 어깨에 빡 힘주고 등장한 <조선일보>는 11월 13일자 신문에서 이러한 헤드카피를 뽑아들었다.

"프랑스 파리서 反박근혜 시위, 통진당 가담 확인".

얼씨구.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이 집회의 주체는 아니고, 한 단계 내려잡아서 이젠 '가담' 확인! <문화일보>를 인용하며 들이댄 근거를 보니, 진보당 파리분회의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자유발언을 한 거란다. 집회 주최 측이 이미 닷새 전에 말한 사실이다. 그 진보당 당원은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데 이어, 진보당을 강제 해산하려 한다며,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촉구했다.

틀린 말 하나 없었고, 부정선거로 탄생한 박근혜 정권 혹은 김무성이 새롭게 폭로한 '찌라시 정권'에 대한 매우 타당한 성토였다. 그 사람 말고도 또 진보당 당원이 있었다?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집회에서 참석자들 출석 부르고, 소속 정당 확인하나? 그들도 한국 국민으로서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과 반민주를 비난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불-북 친선협회' 아니라 '프랑스-한국 친선협회'였다 

11월 13일자 조선닷컴 기사.
 11월 13일자 조선닷컴 기사.
ⓒ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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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당원 자유발언'이란 증거로는 막강 구원투수의 위신이 안 선다는 걸 알았는지, <조선일보>는 2번째 카드를 꺼낸다(역시 <문화일보>를 인용하며). 그 이름하여, '불·북(佛·北) 친선협회'의 프랑스 인사 두 사람이 참석했다는 것. 그러면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다. 이 협회의 이름은 프랑스-한국 친선협회(L'amitié France-Corée)이지 불북 친선협회가 아니다. 이 악의적인 협회 이름 바꿔치기는 <조선일보>가 투척한 이 기사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 역시 집회 때, 이 협회의 사람이 온 것을 보았다. 내가 그를 알아보았던 건, 10월에 있었던 위안부 할머니의 에펠탑 수요집회에서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위안부 집회 때,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져야 할 책임을 제대로 역설하던 그 프랑스 남자를 기억한다. 당시, 자신이 프랑스-한국 친선협회를 대표해서 왔다고 밝혔기 때문에, 그 협회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그 협회는 한국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인들의 단체였다. 그들이 남한보다 북한에 더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프랑스 사람들의 흔한 성향이기도 하다. 프랑스 언론 또한 남한보다 북한 기사를 훨씬 더 많이 다룬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인들이 이 집회에 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들이 집회에 왔다는 사실이 이 집회가 친북단체에 의해 조직된 것을 입증한다면, 위안부 할머니들도 이제 '친북세력'이라고 말할 것인가? 일베와 국정원 직원도 그 집회에 일부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일보>식 논리라면, 이 집회는 일베와 국정원이 적극 가담한 집회이기도?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정권이 840만 달러를 북한에 보낸 데 이어, 또다시 630만 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지난 9월 3일자 신문에서 보도했다. 우리가 주최한 집회에 친북 성향의 사람이 몇 명 있었다는 걸로 우릴 종북세력이라고 몰 수 있다면, 집권한 지 1년도 안 되어, 15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북한에 건네는 박근혜 정권이야말로 거대한 친북세력, 종북정권이라 불러 마땅하지 않은가.

"종북 카드 하나 달랑" 가지고 정통성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의 모든 자연인들에게 주어진 의사표현의 자유를 진보당 당원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집회 참여와 발언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진 않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진보당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반민주적인 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해온 그들이 한국 진보세력 몰락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진태 의원이 들락거린다는 일베사이트에선 나를 이 집회의 주동자로 지목하고, 마녀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진보당 반대세력이 진보당과 손잡고 집회를 주최한다? 이게 논리적으로 맞는 시나리오인가?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는 국가의 수장을 암살했고, 국정원은 오늘 유사 이래 최대의 선거개입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거침없이 수장시키고 있다. 국정원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정통성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범죄를 저질렀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국정원은 더 이상 존재의 의의를 상실한 기관이다.

국정원에게 콩알 만한 정보력이라도 있다면, 내가 가진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집회를 주최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우리는 조직도 아니고, 정당은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집회를 주최한 사람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치적 지향점도 없다. 그러나 대선에서 부정이 저질러졌고, 이 중대 범죄의 수사를 방해까지 하는 정권에 분노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정치적 동기가 필요치 않다.

지극히 기본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을 가진 사람, 이유없는 굴종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상황에 분노하며, 그 분노를 표출할 기회가 있다면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파리 집회의 배후가 있다면 부정선거를 획책한 국정원이며 그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한 박근혜 정권이다. 평범한 유학생들과 해외교포들을 투사로 만들어버린 이 무능하고도 반민주적인 집단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 파괴를 규탄하는 파리교민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 국정원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모든 양심있는 민주시민들에게 종북의 딱지를 붙이고, 김진태라는 자는 서투른 바람몰이를 하며, 그 시도가 여의치 않자 <조선일보>라는 친일-반민주의 기수가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그리고 침묵이 주특기인 박근혜씨는 여전히 자긴 "개인적으로 아무런 추궁당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묵묵히 호위병들이 하는 짓들을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얼마나 더 "종북 카드 하나만을 달랑" 가지고 이미 누더기가 되어버린 이 정부의 정통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태그:#조선일보, #파리시위, #김진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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