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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전자 소속의 헬기 충돌 사고가 발생한 16일 오전 영동북단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 아파트(왼쪽 건물). 짙은 안개로 뿌옇게 보인다.
 엘지전자 소속의 헬기 충돌 사고가 발생한 16일 오전 영동북단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 아파트(왼쪽 건물). 짙은 안개로 뿌옇게 보인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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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민간헬기가 고층아파트와 충돌하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짙은 안개가 원인이라는 추정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다른 원인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 중이던 헬기가 건물의 북쪽 면에 충돌하면서 항로이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건물 꼭대기 안 보일 정도 안개 심했다"

이날 오전 8시 55분경 엘지전자의 사고 헬기는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30층 아파트) 23층부터 27층 사이에 충돌했다. 김포에서 출발해 사고현장에서 약 2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잠실 헬기장으로 가던 길이다. 잠실에 도착 후 엘지전자 임원을 태우고 전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헬기는 1차 목적지인 잠실 헬기장에 거의 다 와서 사고가 난 것이다. 잠실 헬기장은 탄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사고 당시 서울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으며 가시거리는 1.1킬로미터 정도로 매우 짧았다. 가시거리가 1킬로미터 이하가 되면 항공기 운항이 제한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짙은 안개가 이날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아파트 관리인 역시 "쿵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 헬기가 떨어져 있었고, 건물 꼭대기가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짙게 끼었다"라며 "건물 절반 정도가 보이지 않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 역시 "현장에 도착했을 때 헬기에서 연기가 발생해 더 잘 안보이는 것도 있었지만 안개가 확실히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며 "조종사가 안개 때문에 건물을 보지 못하고 충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는 또 "헬기의 몸통이 건물에 부딪친 것 같지는 않다"며 "피해 건물의 형태를 봤을 때 조종사가 건물을 피하려고 방향을 틀었고, 주 프로펠러와 꼬리 쪽이 건물에 부딪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사고원인을 분석 중인 국토교통부 사고대책반 역시 짙은 안개를 원인으로 예상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블랙박스와 사고 잔해를 수집해 정밀 조사를 해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지전자 소속의 헬기가 충돌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 아파트 사고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대원들이 추락한 헬기 잔해를 조사하고 있다.
▲ 헬기 사고 조사하는 국과수 엘지전자 소속의 헬기가 충돌한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 아파트 사고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대원들이 추락한 헬기 잔해를 조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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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조종사 둘, 그들은 왜 남쪽으로 향했나

그러나 아무리 안개가 짙게 꼈다고 하더라도 조종사가 둘이나 탄 헬기가 건물과 부딪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다. 특히 사고 아파트는 건물 자체가 높을 뿐 아니라 경기고등학교 건너 편 언덕 위에 있어 주변에 다른 건물보다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다. 총 3개 동으로 이뤄진 건물이 30~40미터 간격으로 밀집해 세워진 것도 특징이다. 안개로 인해 시야가 제한된다 해도 아예 안 보일 정도는 아니라 게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다.

무엇보다 헬기의 충돌 지점이 북서쪽이라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충돌지점은 102동 23층에서 27층 사이로 거의 정 북에 가까운 북서 방향이다. 헬기가 이 지점에 충돌하려면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이동해야 가능하다. 헬기가 정상적으로 잠실 헬기장을 향했다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을 것이고, 설령 건물과 충돌한다고 해도 건물의 서쪽 면에 충돌했어야 한다. 단순히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해 충돌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안개로 인해 방향을 잃었을 가능성도 제기 되지만 헬기의 진행 방향이 목적지와 정반대 방향이라는 점에서 희박하다. 보통 민간헬기 도심지역보다는 한강변을 따라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사고 헬기 역시 김포를 출발해 한강을 따라 잠실 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충돌지점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려면 동에서 서로 이동하던 헬기가 목적지를 불고 1~2킬로미터 앞둔 지점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꺾었다는 얘기가 된다. 항로를 완전히 이탈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재영 서울지방항공청장은 "한강 위 경로대로 운행을 하다가 잠실 선착장 주변에서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경로를 이탈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반적으로 도심상공이나 인구밀집지역의 (항공기) 운항은 가급적 하지 않도록 돼 있다"면서 "시계비행에서 특별한 고도제한은 없지만 인구밀집지역에서 최소한 장애물 높이에서 300미터 떨어져 운행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사고 헬기 조종사들이 상당한 베테랑이었다는 점도 사고의 의문점을 배가 시킨다. 이날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고로 사망한 기장 박인규씨의 아들은 "아버지와 부기장 모두 군에서 대통령 전용기를 조종한 베테랑이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조종사가 둘이나 탄 헬기가 목적지 부근에서 아파트와 충돌했다는 것은 단순 안개만으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이유로 이들이 남쪽을 향하게 됐는지를 밝히는 게 이번 사고 원인 규명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오후 3시 현재 국토교통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소속 6명의 조사관이 현장에 출동해 헬기 블랙박스와 헬기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국토부가 블랙박스를 분석하고 공식적인 사고 원인을 공식발표하기 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태그:#헬기사고, #아이파크, #엘지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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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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