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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 내년에 어린이집 보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아이가 낯가림도 심하고 먹는 것도 잘 못 먹는데 적응이나 잘 할지…."

늘 이맘때면 많은 엄마들의 고민 중 하나가 되어버린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생활. 지금부터 추천서를 받거나 줄을 서거나 상담을 받거나 하는 일 때문에 몸과 마음이 바쁠 시기이다. 좋은 보육 시설은 어찌어찌해서 잘 선택을 했다고 하지만 내년 봄에 아이 보낼 생각을 하니, "아휴~ 아직 어린데 내가 일한다고 너무하는 건 아닌지… 우리 아이 낯가림 심한데…" 이런 고민과 한숨으로 잠 못 드는 젊은 엄마들을 위해 나는 늘 이렇게 이야기한다.

"걱정마! 우리 아이들은 사실 우리들보다 나아."

"걱정마! 우리 아이들은 우리들보다 나아"

아이는 열심히 그린다. 자신의 세상을.
 아이는 열심히 그린다. 자신의 세상을.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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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익숙한 친구들과 뒹굴다 사회에 첫발을 딛고 직장으로 출근하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층층시하 시월드보다 더 무서운 '상월드(상사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기침소리 한번 내는 것도 조심스럽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나랑 맞지 않는 성격의 동료가 다가와서 자꾸만 친한 척 하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는 반찬들이 구내 식당에 즐비하다. 노래도 못 부르는데 회식 때 신입이라고 자꾸만 마이크를 주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것들 다 술술 잘 넘기고 5년, 10년, 20년 직장 생활을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눈만 뜨면 보이던 아빠,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보이니 우선은 불안하다. 그 불안을 울음으로 표현을 하면 왠지 우리 엄마가 어디선가 "철수야~" 하고 달려와 금세 나를 안고 집으로 가서 토닥토닥 해줄 것만 같다. 그런데 아무리 울어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 아이들 엄마도 안 오는 건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괜찮아", "이거 먹자", "우리 책읽자" 자꾸만 다독여준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우는 게 선생님한테도, 다른 친구들 한테도 미안해진다. '그래, 여기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 사실 놀다보니 엄마 생각이 별로 안 난다. 잠이 올 때 잠깐 잠깐 생각나서 투정도 부리지만 그래도 친구들이랑 노는 재미에 푹 빠져서 집에 가기 싫어질 때도 있다.

늘 엄마랑만 먹던 밥도 친구들이랑 먹으니까 매일매일 소풍 온 것처럼 맛있고, 잘 먹으면 선생님도 엄마처럼 칭찬해주신다.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놀이도 하고 한 달 정도 지나니 익숙해져서 오히려 주말이면 월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우리의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은 때가 묻지 않아서 의심도 하지 않고 잘 받아들인다.

엄마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그걸 느낀다. 그냥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를 잘 다독여주는 것이 최고다.

아이는 엄마만큼 말한다

"언니, 아이가 어린이집 다녀오면 무슨 얘기해요?"

나는 아이가 셋이다 보니 이런 질문 혹은 상담을 참 자주 받는다. 그럴 때면 늘 비슷하게 이야기해준다.

"너는 아이가 어린이집 다녀오면 무슨 이야기 해줘?"

보통의 엄마들은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녀와서 있었던 이야기를 짐보따리 풀 듯 술술 풀어놓기를 기대한다. '아이는 엄마만큼 자란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서 '아이는 엄마만큼 말한다'로 바꾼다. 아홉 살 큰아이, 일곱 살 둘째, 세 살 막내까지 집에 돌아오면 일하는 나를 붙잡고 열심히 뭔가를 이야기 해준다. 나의 이야기를 아이에게 먼저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찬아, 지난번에 택배 아저씨 배고프시다고해서 엄마가 사과 하나 드렸잖아? 오늘은 엄마가 택배 받을 일도 없었거든? 그런데 아저씨가 쑥 들어오시더니만 '이거 잡솨봐요' 하면서 붕어빵 한 봉지 던져주고 가시는 거 있지?"
"울아, 오늘 엄마가 꽂은 꽃 보고 손님이 조금 마음에 안 들어하셔서 엄마 기분이 많이 상했었거든? 그런데 나중에 손님이 전화오셔서는 받는 분께서 너무 좋아하셨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담아, 엄마가 오늘 책 정리하는데 사진이 한장 툭! 떨어지는 거야 글쎄, 보니까 엄마 어릴때 사진인데 우리 담이랑 똑같더라. 그러니까 우리 담이는 엄마 딸 맞는거야. 담이가 한 번 볼래? 네가 봐도 그럴 걸?"

친구나 남편에게 이야기하듯이 소소한 일상들을 아이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의 세상과 아이의 세상이 다르다고 대충 넘어가고 말 안 해주는 것은 회사에서 돌아온 배우자가 "오늘 친구 누구 만났어? 어땠어?"라는 질문에, "니가 말한다고 알아?" 하고 무시하는 거랑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이들도 부모의 일상이 궁금하고 듣고 싶다. 그렇게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비슷해진다.

'아! 우리 엄마도 내 이야기가 듣고 싶겠지? 내가 어떤 생각하는지 궁금하겠지? 저녁에 아빠 오면 이야기 해줘야하니까 잠 안 자고 기다려야지.'

아이들은 다양한 교재들로 배우고 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다양한 교재들로 배우고 놀이를 한다.
ⓒ 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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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에 하원하는 차 안에서 이미 엉덩이가 들썩일 수도 있다.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있었던 이야기 말해줘야지 하는 설렘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질문 한 가지!

"너 오늘 뭐 했어?"

어제 저녁에 아직 앳된 20대 초반의 아이 엄마가 아이와 이야기하는 화법에 대해 묻기에 내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오늘 뭐 하셨어요?"
"(상당히 당황해 하면서) 음… 그러니까 오늘 일하고 그랬죠."
"그럼, 무슨 일 하셨어요? 아니 일만 하셨어요? 밥은요? 사람들하고 이야기는요? 휴식시간에는요?"

그 말은 듣고는 적잖이 당황하는 눈빛에 내가 이야기 해줬다. 직장 상사가 일 열심히 하고 있는 내게 "오늘 일 뭐했어?"라고 물으면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 내가 오늘 회사 와서 한 일이 얼만데…. 학교 다니는 고등학생에게 부모가 "너 오늘 학교에서 공부 뭐했어?"라고 물으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아니 내가 0교시부터 7교시까지 얼마나 많은 수업을 듣고 왔는데. 야자에 학원까지. 하루종일 공부한 걸 어떻게 다 말하라고….

아이도 다를 게 없다. "오늘 뭐했냐"는 질문에 아이의 머리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가 되어버린다. 아침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 친구들과 인사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오전 간식도 먹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교재로 수업도 하고 점심도 먹고 소꿉 놀이도 하고 퀴즈 놀이도 하고 점심도 먹고 체육하고 오후 간식 먹고…. 그걸 다 이야기 해야하나? 뭐부터 이야기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면 아이는 귀찮아진다. 그래서 한 마디로 대답해 버린다.

"나 오늘? 놀았어."

아이들의 계획표,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렇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놀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 부모 마음에 찬물을 확! 끼얹는 것 같아도 어쩔 수 없다. 왜냐면 엄마의 질문이 구체적이지 못했으니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이의 계획표를 냉장고에 붙여두고 질문을 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원에서 나눠주는 주간 또는 월간 계획표에 참 친절하게 다 나와있다. 월요일엔 뭐하고 화요일엔 뭐하고 매일 뭘 먹는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동시를 배우는지 이번달 테마는 무엇인지.

이상하게도 계획표를 받으면 아이 소풍가는 날, 행사, 준비물 뭐 이런 것만 체크하고 버리는 부모들이 참 많다. 그것이 관심이 부족하고 아이와 이야기 나눌 준비가 덜 된 거라 말하고 싶다.

"울아, 오늘 오카리나 했지? 오늘은 무슨 곡을 연주했어요? 그거 불고 있으면 손 안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든 것 같아서 엄마도 배우고 싶은데 우리 공주님이 잘 배워서 엄마한테 선생님해줄래요?"
"찬아, 오늘 학교에서 탈만들기 했겠네? 넌 무슨 동물 만들었어? 갈기가 많은 사자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담이는 오늘 콩나물죽 먹었어요? 우와~콩나물 먹어서 담이가 엄마보다 키가 더 커지면 어쩌지? 쑥쑥커서 엄마가 올려다 봐야겠네요?"

아이는 이런 질문들 속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믿음 같은 것을 느낀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더 이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어제는 초등학생인 큰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찬아, 엄마가 너 학교 생활하는 거에 대해 몇 퍼센트 믿는다고 생각해?"
"음… 94%?"
"어머? 왜?"
"엄마는 아침마다 나한테 '찬아, 오늘도 잘 놀다와~' 하잖아요. 근데 나도 학교 가면 공부해요. 노는 것보다 공부를 더 많이해요."

진짜 헉! 소리가 나왔다. 이런! 공부도 놀이처럼 즐겁게, 하루를 그렇게 즐기다 오라는 말이었는데 매일 들으니까 좀 그랬나?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등 뒤에 대고 "찬아, 오늘도 공부 잘 하고 오세요~" 했더니 뒤돌아보며 씨익~웃는다. 그래, 엄마는 너를 믿는다. 공부도 열심히 잘 할 거라는 거 믿는다구!


태그:#육아,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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