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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일 오전 11시 50분]

지난 10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빈소 모습.
 지난 10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빈소 모습.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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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 막내아들이었다. 상주는 그의 두 형이다. 누나도 둘 있다. 그의 딸은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다. 빈소는 그의 직장 동료들이 채웠다. 갑작스런 죽음에 친척들은 아직 많이 모이지 못했다. 그의 동료들은 대부분 회색 점퍼나 짙은 푸른색 조끼를 입었다. 그도 생전에 하루 종일 같은 옷을 입고 일했다. 그들의 왼쪽 가슴에는 'SAMSUNG(삼성)'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른 지역에서 온 동료들도 비슷한 모양의 옷을 입었다. 멀리 부산에서 차를 몰고 새벽에 도착한 이도 있었다. 천안의 한 장례식장이다.

그는 지난 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된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그는 전날 결근을 했다. 출근을 안 해 걱정하는 동료에게 오후 6시 "내일 출근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그는 다른 동료와 술을 한 잔 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느 술자리처럼 살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오후 9시쯤 헤어졌다. 그리고 노동조합 단체메시지 방에 글을 남겼다. 자정쯤에는 사촌형을 찾아가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저 최OO이,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가 노조 단체메시지 방에 남길 글이다.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그를 찾아 나섰지만 만날 수 없었다. 31일 오후 5시 30분 천안의 한적한 도로에 세워진 차에서 그를 발견한 주민이 신고를 했다. 경찰은 그가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노조 단체메시지 방에 남긴 건 유서였다. 그가 "전태일님처럼 그렇진 못해도"라는 말을 그의 동료들은 계속 떠올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평소에도 전태일을 이야기 했었는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수입 줄고, 감사받고 그에게 닥친 시련

지난 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장례식장에 협력업체 사장의 조화가 들어오자 조합원들이 이를 불태우고 있다. 이 협력업체 사장은 사망한 노동자에게 심한 욕설과 폭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장례식장에 협력업체 사장의 조화가 들어오자 조합원들이 이를 불태우고 있다. 이 협력업체 사장은 사망한 노동자에게 심한 욕설과 폭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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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0년 5월부터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일했다. 에어컨 수리 전문기사였다. 거기서 일하는 동안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다. 그의 수입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에어컨 수리 요청이 많은 여름철에는 한 달에 400만 원도 벌었지만, 주유비 같은 업무를 보는데 드는 비용을 모두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실제 수입은 성수기에도 200만 원 정도였고, 그것도 하루에 10건 이상,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야 벌 수 있었다. 일이 적은 계절에 실수입은 100만 원가량으로 떨어졌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지난 7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위장도급 문제를 제기했고,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건설되고 전국에 분회가 생겼다.

그가 속한 천안센터에도 천안분회가 깃발을 올렸다. 그는 소극적인 조합원이 아니었다. 전국 조합원이 함께 사용하는 SNS 방에서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자신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고 때로는 다른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1인시위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가 속한 천안분회 또한 높은 조직률을 달성했다. 협력업체 직원 90명 가운데 42명이 조합에 가입했다. '모난 돌'은 아니었지만 노조에 열심이었던 그와 천안분회는 모두 무노조 삼성의 '정'을 맞는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원래 그가 담당했던 지역에 본사 직원들이 들어왔다. 수리 건수가 많던 지역을 갑자기 나누고 그걸 본사에 넘긴 거다. 그는 명목상 여러 항목의 월급을 받았지만 사실은 수리 건수로 계산되는 수수료로 돈을 번다. 담당 지역이 줄어들면 수리 건수도 줄 수밖에 없고 수입은 당연히 떨어진다. 그나마 1년 중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여름철 성수기에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천안을 비롯해 포항, 부산 등 노조가 잘 조직된 곳에서 주로 발생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업무효율을 위한 시스템 개편이라고 한다.

그는 감사도 받았다. 보통 감사면 그 이전에 감사한 내용은 다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감사는 달랐다. 올해 3월에 감사가 있었지만, 3년 전 자료까지 끄집어냈다. 당시 부품사용이 잘못됐다며 손실금액을 월급에서 차압한다고 했다. 그를 포함해 내외근 직원 8명이 집중적으로 감사를 받았다. 천안센터 분회장과 부분회장이 포함돼 있었고, 모두 조합원이다. 분회장은 "오늘 아침에도 예전 자료를 들이밀고 압박했다, 표적감사다, 고통스럽다"라고 말했다. 떠난 그도 비슷했다고 한다.

사장의 폭언 "고객을 찢어 죽이든지 했어야지"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보낸 조화를 최씨의 동료들이 부수고 있다.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보낸 조화를 최씨의 동료들이 부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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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난 9월 23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녹취록 하나를 <오마이뉴스>에 보냈다. 협력업체 사장과 직원의 대화였다. 천안센터 협력업체 사장과 그였다. 사장은 "OO아, 오늘 VOC(고객의 소리) 띄운 거 있냐?, 그걸 왜 OO팀장하고 OO차장이 무릎 꿇고 빌어야 하냐"며 말을 시작했다. 그가 말한 팀장과 차장은 천안센터의 협력업체와 본사 직원이다. 그가 "거기 가서 무릎 꿇었다고요? 아니아니 그 사람들이 왜 가서 빌어요?"라고 하자 사장은 폭언을 시작했다.

"임마 새끼야. 고객이 주장하는 게 있으니까.(가서 빌지) 네가 지져불든지 칼로 찔러서 꼭꼭 조사서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벌든지 그렇게 하던지 해야지, 왜 말이 나오게 해가꼬 얘들이 가서 빌게 만드냐 이거야. OO아. 그렇잖아. 죽이려고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리든지 해야지."

"아니 제가 오늘 있었던 일 그대로 이야기 해드릴게요."

"너 얘기는 뭔 말인지 알아. 그러니까 고객을 잡으려면 확실히 개같이 잡아버리라는 얘기야. 왜 말 나오게 해가지고, 내일 사장 와서 무릎 꿇고 빌라는데, 내가 갈 거 같아?"

4분 가량 진행된 통화에서 사장은 끊임없이 욕설을 했다. 그는 식사 중이었다. 통화의 결론은 "내일 아침에 와서 네가 맞다이 까든지 내가 무릎 꿇고 빌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해"로 내려졌다. 천안센터 분회장은 당시 항의했던 고객이 지역의 전직 경찰이었다고 전했다. 그가 수리를 하는 자세를 트집 잡고 "술 마신 거 아니냐"며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술 마시지 않았다고 하면서 입으로 '후후' 불었는데 그게 그 전직 경찰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거다.

당시 녹취내용을 기사화 하려고 했지만 계속 일해야 하는 그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 지회와 분회 차원에서 제보를 철회했다. 그 결정을 듣고 그는 상당히 안도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평소 쾌활한 성격이지만 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잘 말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지만 그 일로 인해 한동안 그는 괴로워했고, 일과 수입이 줄어드는 어려움까지 동시에 겪어야 했다.

시끄러웠던 새벽이 지나고 날이 밝아 올 때 즈음 빈소를 지키던 이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그의 아내가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여기저기 누워 있던 사람들을 깨웠다.

예정대로라면 2일이 발인이다. 하지만 그가 편히 쉬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유족들은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에 모든 장례진행을 위임했다. 이들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주노총장으로 장례를 추진한다. 전국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그의 죽음과 관련해 삼성 측의 사과를 요구할 예정이다.

앞서 노동계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지적해 왔다. (관련 기사: "20년 일해도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 노조가 삼성전자서비스측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태그:#삼성, #삼성전자서비스, #천안, #위장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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