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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 보이는 컨테이너 벽, 블록으로 쌓은 가림담에 임시로 끌어와서 만든 수도 세면장.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고 여름이면 온갖 날파리와 모기로 범벅이 되는 세면장이지만 정말 요긴했다. 밤에 캄캄한 마당을 건너 외할아버지 조립식 화장실까지 안가도 된다는 하나만으로도. (2009년 <사랑의 리퀘스트> 촬영화면 자료)
▲ 컨테이너방에서 보낸 5년 오른쪽으로 보이는 컨테이너 벽, 블록으로 쌓은 가림담에 임시로 끌어와서 만든 수도 세면장.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고 여름이면 온갖 날파리와 모기로 범벅이 되는 세면장이지만 정말 요긴했다. 밤에 캄캄한 마당을 건너 외할아버지 조립식 화장실까지 안가도 된다는 하나만으로도. (2009년 <사랑의 리퀘스트> 촬영화면 자료)



"엄마는 나만 보러 오면 아프고 다치고..."
"아니야! 그건 우연이지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러니 울지마."
"그래도 지난번에도 졸업식 날 왔다가 심하게 아프고, 이번엔 또 넘어져서 허리를 다치고..."

아이는 그렇게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울었다. 쓰고 있는 안경테로 떨어진 눈물 방울이 안경알로 퍼져갔다.

곰팡이 투성이 옷장, 딸아이가 여기서 살았다니...

7개월 전,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 처갓집을 다녀갔다. 그로부터 7개월 만에 추석명절이라고 다시 찾은 집, 정확하게는 우리 집도 아니고 아이 외할아버지네 한쪽에 붙은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 그 안에 보일러를 깔고 옷장이랑 아이 침대랑 살림을 다 집어넣고 막내딸아이가 살고 있다.

"아이가 보고 싶어..."
"그래, 나도 딸이 보고 싶다. 휴."

그렇게 아내는 노래를 불렀다. 기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아닌 그리움에 낮게 깔리는 슬픈 노래. 명절이라 오가기도 힘들고, 차표 마련도 불안해 막내 딸아이에게도 오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게 안 보려고 포기를 했는데 자꾸만 아내가 욕심을 부렸다. 한 번만 내려가 보자고, 아이도 보고 싶고 여름 장마를 넘긴 옷장이랑 침구들이 많이 걱정스럽다면서...

"그래! 가자! 그까짓 가다가 밀리면 쉬었다 가지, 뭐!"
"정말? 고마워요!"

아내는 이날 졸업식에는 참석 못하고 집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서는 심하게 아파 그만 재발이 오고 말았다. 아이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괴로워했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아프게 되었다고...
▲ 딸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날 아내는 이날 졸업식에는 참석 못하고 집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서는 심하게 아파 그만 재발이 오고 말았다. 아이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괴로워했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아프게 되었다고...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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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지난 번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날 다녀간 후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모험을 각오하고 병원을 출발했다. 명절이라 길이 밀려 5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한 충주집. 간신히 아내를 방으로 데려가 눕혀 놓으려는데 심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오 마이 갓! 세상에...'

이불장을 열어봤더니 온통 곰팡이 창고였다. 세탁하고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급한 대로 걸어 놓았던 겨울옷은 모두 밀가루를 뿌린 것처럼 가루옷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침대에 놓여진 이불과 요는 곰팡이는 없었지만 빨지 않고 오래 사용해서 때가 타고 기름기가 묻어 번질거렸다. 침대 아래 접어 넣어둔 옥매트와 여분의 이불은 곰팡이 덩어리로 완전히 시커멓게 좀이 쓸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당신은 지금 아이 방에 들어갈 수가 없어."
"그렇게 심한 거야?"
"좀..."

그런 방에 도저히 환자인 아내를 누여 놓을 수 없어 아이 외할아버지네 방에다 옮겨 눕히고 나는 대청소에 들어갔다. 100리터짜리 비닐 쓰레기봉투를 다섯 장을 사와서 옷이고 이불이고 베개를 모두 쓸어 담았다. 자그만치 쓰레기봉투 4개가 실려 나갔다. 살펴보니 작은 임시 세면장과 바깥 복도의 책장에도 곰팡이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녹슨 그릇과 세면도구를 씻고 치우면서 꼬박 하루를 보냈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리고 불을 피우고, 그렇게 1박2일을 꼬박 하니 좀 냄새도 빠지고 재채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았다.

"휴..."
"많이 힘들지? 저 속에 잠자고 살았을 애도 힘들었겠다."

이 지경이 되도록 둔 딸아이가 야속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새벽 6시 좀 넘어 일어나는 딸은 7시 첫 버스로 학교에 간다. 물론 아침을 먹는 날보다 굶고 가는 날이 더 많았으리라. 그리곤 야간자율학습까지 끝내고 밤 9시에 돌아온다. 숙제하랴, 씻으랴 하고 나면 잠에 떨어지기도 바빴을 텐데, 무슨 집 살림을 할 마음이 생길까.

일요일은 아침부터 데리러 오는 교회버스를 타고 교회에 가면 또 하루가 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가라는 엄마 아빠의 명령조의 부탁을 고스란히 들으려니 더욱 그렇다. 두 번 놀토 중 한 번은 일산까지 병원을 다녀오느라 꼬박 이틀을 다 보낸다. 그러고 나면 아이도 참 쉬고 싶을 거다. 한 달에 딱 하루, 종일 쉬는 토요일 한 번은.

"엄마가 걷는다" 아이의 환호성도 잠시... "쿵!"

그런 생각이 미치니 이런 심한 상태에서도 병 나지 않고 살아준 게 용하고 눈물 나게 미안했다. 어쩌면 잦은 기침을 하는 걸 보니, 벌써 기관지에 무슨 탈이 난 것도 같긴 하다. 그것도 모르고 감기약 지어 먹으라 잔소리만 해댔으니 참 몰지각한 아비였다.

"쿵!"
"이게 무슨 소리지?"
"야야, 빨리 방에 들어 가봐라, 무슨 일 생겼나 보다!"

일산 병원에 올라가기 위해 차에 짐을 싣다말고 장모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내는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옷을 입혀서 침대에 앉혀 놓았던 아내가 옆 장식장을 붙들고 움직이다가 그대로 폭 고꾸라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쓰러지고 만 것이다. 우당탕! 소리에 놀란 장인장모님과 내가 방으로 뛰어 들어 갔을 때는 이미 바닥에 처박힌 아내는 신음 섞인 울음을 울고 있었다.

청심환을 급히 사와 먹이고 꼬박 다섯 시간을 바닥에 누이고 허리 찜질을 했다. 그러다가 아이 학교 끝날 시간이 돼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오는 길에 그 일을 말했더니 딸아이가 울먹였다. 자기를 보러 올 때마다 부상과 후유증 재발로 고생 시킨다고 미안해 했다.

딸 아이와 단 둘이 3년 넘도록 살아준 여섯 번째 가족이 되어 준 고마운 고양이. 우리는 이 고양이를 '버터곰'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서늘하고 적적할 아이 방에서 늘 기다려주고 인기척을 내주고 놀아준 친구였다. 어쩌면 엄마 아빠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며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 느긋했던 가족.
▲ 여섯번째 가족 딸 아이와 단 둘이 3년 넘도록 살아준 여섯 번째 가족이 되어 준 고마운 고양이. 우리는 이 고양이를 '버터곰'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서늘하고 적적할 아이 방에서 늘 기다려주고 인기척을 내주고 놀아준 친구였다. 어쩌면 엄마 아빠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며 마음의 위로가 되어준 느긋했던 가족.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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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석에 충주집에 내려온 아내는 방에서 부억 식탁으로 이동하는 중에 나의 부축을 받으며 잠시나마 걸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이는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걷는다!"며 신기해 하며 기뻐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런데 그 웃음의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자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다.

가까운 병원으로 가자는 내 제안에 끝내 아내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은 예정보다 늦은 밤에 다시 일산 병원으로 올라왔다. 아내는 엑스레이를 찍고 다친 허리 근육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석 달을 다시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 지냈다. 재활치료를 받으러 운동실 가는 휠체어도 탈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이런데 언제 좋은 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장청소를 한 후 아내의 기저귀를 가는데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갑자기 지난 날 소원이 떠올랐다. 그때는 어디를 가게 해달라는 소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호흡기를 끼지 않고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새벽 기도실에서 울며불며 빌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무슨 불평을 하는 걸까? 이제 아내는 집에도 내려갈 수 있는 정도가 됐고 휠체어에 앉아 목을 버티고 견딜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정도만 해도 큰 소원 중 하나였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게 욕을 먹나 보다. 아주 힘들 때 바라던 최소한의 소원이 이루어져도 고맙단 소리는 슬그머니 까먹고, 더 좋아지지 않은 것을 물고 늘어지는 불평이라니..."
"나눔아, 미안해 ㅠ.ㅠ, 다음에 올 때는 아프지 않고 웃으며 돌아갈 만큼 좋아져서 올게."

덧붙이는 글 | 2010년 9월, 추석명절을 맞아 아이 혼자 지내는 집을 갔다가 생긴 이야기입니다.



태그:#투병, #가족, #희귀병, #간병,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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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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