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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9일) 오후 치과를 찾았다. 10여 년 전부터 아무 일이 없더라도 정기점검 차 일년에 한두 번은 찾는 치과가 있다. 이 글은 광고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의원의 위치가 중곡동이고 의사가 여성이라는 것 외엔 아무것도 밝히지 않겠다. 참고로 덴탈포커스 자료에 의하면, 2009년 전국의 치과의원과 치과병원 수는 각각 1만4242개, 183개, 그래서 총 1만4425개라고 한다.

치의학 용어로 '크라운'이라고 하는 보철물에 이상(異常)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어 치과를 찾게 되었다. 크라운 시술에 대해 경험한 바를 설명하자면, 충치(어금니)를 신경치료 해서 통증을 제거 한 후 바깥쪽을 드릴로 갈아낸 다음, 본을 뜬다. 그리고 이(齒) 원래의 크기만큼 얇게 만든 합금으로 이 위에 왕관(crown)처럼 씌운다.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경치료를 몇 번에 걸쳐서 하게 되니 통증이 심하다. 그래서 잇몸에 국소마취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치료과정과 크라운을 씌우는 과정은 최소 열흘 정도의 기간을 요한다. 금(金)으로 씌우는데 드는 비용은 치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금의 순도에 따라 대략 30만 원에서 40만 원 사이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8년쯤 전에 이 크라운(Gold Crown)시술을 받았는데, 한 달쯤 전부터 그 어금니로 씹는 것이 불편하기 시작했다.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잇몸도 붓고 칫솔질 할 때 피도 났다. 사람 만나는 일이 잦아 구취가 최대의 적인 나는 잇몸의 붓기가 가라앉자 마자 치과로 전화를 했다.

'어금니를 씌운 지 10년이 다 되어가니 다시 할 때가 됐나? 그러면 보철물을 뜯어내고 다시 보철물 속에 갇혀 있던 이를 점검, 신경치료를 하고 겉을 다소간 갈아내고 본을 뜨겠지.'

이런 생각 하면서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한참을 참아내야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떠올렸다. 예약을 위해 치과로 전화했다. 작년 스케일링을 하고 근 일년 여 만에 연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친절한 코디네이터 분은 나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색을 한다.

"아! 위쪽 어금니 브릿지 하신 분? 잘 사용하고 계시죠? 어디가 불편하세요?"
"네, 아래 쪽 씌운 어금니가 아파서요. 언제 가면 좋을까요? 제가 좀 기다려도 되니 바로 가고 싶은데, 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코디네이터의 허락을 받자마자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치과는, 오래 되긴 했지만 깨끗한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건물 옆으로 있는 주차장 입구는 철문인데 자물쇠로 잠겨있다. 열쇠를 받아 철문을 열고 주차를 하고 다시 문을 닫고 2층으로 올라갔다. 들어가서 보니 한 중년의 여자환자가 치료를 받는 중인지 치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윙'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좌측 모니터처럼 보이는 것이 형광차트고, 테이블 위에 시술시 사용하는 고무장갑과 각종 기구들 알콜 솜이 들어있는 용기가 보인다. 오래된 듯 보이지만 항상 깔끔하다.
▲ 치과의원의 기구들 좌측 모니터처럼 보이는 것이 형광차트고, 테이블 위에 시술시 사용하는 고무장갑과 각종 기구들 알콜 솜이 들어있는 용기가 보인다. 오래된 듯 보이지만 항상 깔끔하다.
ⓒ 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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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간 칫솔 꼭 쓰셔야 해요. 연세가 드시면 잇몸이 줄어들고 이 뿌리가 드러나기 때문에 칫솔질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세요."

여의사의 자상한 설명이 들린다. 내용은 꼭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의사의 재량에 달린 진단, 얼마나 객관적일까?

차례가 되어 시술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쭉 펴지면서 상체가 뒤로 넘어가고 벌린 입안으로 꼬챙이와 막대가 달린 거울이 들어온다.

"아래 어금니 이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의사는 아랫니를 쇠막대로 건드려 본다.

"네, 아파서 그 쪽으로는 잘 씹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시술 받은 지 오래돼서 빼고 다시 씌워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나는 의사도 아니면서 자가 진단을 하고 있었다.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빨리 겪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글쎄요. 일단, X-ray 한번 찍어 볼게요. 간호사 준비해주세요."

촬영 직후 사진 필름이 의자 앞 차트에 걸렸다. 의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이가 약간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어져 있고 옆 이와 간격이 좀 있어서 이 사이에 음식물 찌꺼기가 끼기 쉬운 것 같아요. 칫솔질로 잘 닦이지 않는 부분이다 보니 아무래도 잇몸에 염증이 생기기 쉬울 거예요. 일단은 잇몸 치료를 해 보죠."

나는 확인했다.

"네, 잇몸 치료만으로 가능할까요?"
"아마도 치료하시고 치간 칫솔을 잘 사용하신다면 괜찮아 질 것 같은데요."

의사의 대답은 친절하면서도 냉정하다.

매스컴에서 병원들이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유도한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수익을 위해 되도록이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술을 권유한다는 거다. 환자를 '봉'으로 아는 것이다. 요즘 환자들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불안하기 까지 하다. 물리적인 통증도 통증이지만 예상치 못한 비용발생은 심리적 통증까지 동반한다. 물론, 선량한 의사가 대부분이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치과의사가 양심적이라는 사실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니다. 양심적이고 자기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진료에 임하는 의사를 만나지 못했을 경우, 크라운을 바로 뜯어내고 새로 본을 뜨고 나서, 금으로 크라운을 해 넣자고 했을 것이다. 그럴 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하고 한 번 물어보자는 거다. 아니면, 과감하게 다른 의원이나 병원을 찾아 보는 거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치료과정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임플란트 등 다른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시술의 경우 정도는 더욱 심각해진다.

중곡동의 이 여의사는 환자에게 그런 질문을 할지 말지 갈등할 필요도 없이 진료에만 최선을 다했다. 잇몸 치료만 한 것이다.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사는 사람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X-ray 찍고, 의사가 직접 세심하게 잇몸치료를 하고 청구한 치료비는 1만2000원이다.

미국의 저명한 치과의사였다는 팬케이 박사(Dr. Pankey)의 말처럼 '의사로서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고, 환자의 입장에서 감사의 뜻으로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지불한 셈인데, 사실 감사의 마음에 비해 적은 지불이었다고 생각한다.

치료를 마치고 의원 문을 열고 나오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몇 년 전 한여름에 들른 진료실 안에 초등학생들이 왁자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방학이면 영세한 초등학생들의 이를 무료로 진료해주고 있어서요"라는 코디네이터의 답변이 돌아왔다. 의사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 분들께도 정기적으로 진료봉사를 해드리고 있다고 한다.

<덴탈포커스? 2013년 10월 24일자 기사에 의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3444곳의 치과의원이 개원했고 2321곳이 폐원했다. 연평균 773곳의 치과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10년째 변함없는 중곡동 치과의사의 건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덧붙이는 글 | 사실,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등 다섯 가지를 말한다고 한다. 이(齒)가 좋은 것이 오복 중 하나라고 하는것은 건치(健齒)가 강녕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그:#여의사, #중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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