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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울산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말썽이 생겼다. 해고노동자가 강사여서 교장 선생님의 걱정이 컸던 모양이었다. 행사가 중단될 위기까지 갔었다는 얘길 강연 뒤에 들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교장 선생님은 강연하기에 앞서 나를 따로 불러 몇 가지 당부를 하셨다.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겠다는 말을 하고선 강연을 시작했지만, 끝날 때까지 교장 선생님의 훈화 같은 말씀이 머릿속을 계속 따라다녔다.

어쩌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도 스스로 검열을 했을 것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은 처음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고민과 관심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얘기의 주제와 눈높이를 맞춰 말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 강연은 듣는 이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긴장했던 기억으로 남은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노동자는 '덜 배운자', '외국인', '거지'...

잊고 있던 강연을 떠올린 건 지금도 1200건 넘게 꾸준히 리트윗되고 있는 어떤 트위터 내용 때문이다. 평택지역 중학생들이 노동 관련 특강 자리에서 '노동자는 ○○○이다'란 문장을 완성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중학생들은 노동자들을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물론 노동자는 '힘들다', '많다', '불쌍하다', '득이 없다'처럼 노동자들의 처지를 통찰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감인지 상태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고등학생들이 이 트윗을 많이 리트윗하고 있다.

질문의 내용을 바꿔 '근로자'라 했다면 달랐을까. 혹은 영화에서처럼 '아버지 뭐하냐'고 대놓고 물었다면 조금 다른 대답이 나왔을까.

그들의 답변을 보면서 기성세대 탓이란 생각이 들었던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노동자에 대한 학생들의 이 같은 인식을 그냥 두고 보는 건 이들 삶에 대한 직무유기며, 아이가 미래라는 구호가 새빨간 거짓말임을 선언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이란 말을 단 한 차례도 들어본 적 없이 사회를 경험하게 될 그들은 맹수 우리에 발가벗고 걸어 들어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평택지역 중학생들이 노동 관련 특강 자리에서 '노동자는 ○○○이다'란 문장을 완성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중학생들은 노동자들을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평택지역 중학생들이 노동 관련 특강 자리에서 '노동자는 ○○○이다'란 문장을 완성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중학생들은 노동자들을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 이창근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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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에 대한 인식 후퇴, 어른 탓이다

지금 전교조 선생님들이 정부의 법외노조 시도에 맞서 단식과 총력투쟁으로 싸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전교조를 법외노조, 즉 불법단체로 만들려 한다. 표면적 이유는 전교조 해직교사 9명에 대한 조합원 자격 문제다. 오는 23일까지 이들을 조합원으로 규정하고 있는 규약을 개정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실제로는 눈엣가시로 여기는 전교조를 이참에 확실하게 길들이겠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면 교섭권을 비롯해 노동조합으로서의 모든 권한이 박탈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전교조가 이 사회 민주화와 참교육 실현을 위해 싸워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한국 공교육의 현실은 처참할 지경이다. 그나마 전교조가 있어 근근이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 그것이 지금 붕괴 직전에 있다. 전교조가 지금 지키려는 건 해직교사 9명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가치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전교조가 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현실만이 아닌 미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에서 배우 정진영은 학생들에게 L로 시작하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무엇인지 묻는다. 학생들은 쭈뼛거리며 이런저런 대답을 한다. 학생들은 사랑(Love)과 자유(Liberty)까지는 쉽게 맞혔다. 그러나 선생님이 생각하는 마지막 단어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이라는 'Labor'였다.

이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은 20년 전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더 왜곡되고 후퇴한 측면도 있다. 이것은 특정 세대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어른이라는 우리 탓이다.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아프리카인들에게 하얀 눈을 모른다고 타박하는 아둔함과 무엇이 다른가.

중학생 가운데, 노동자는 '미래의 나다'라는 답을 적은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어떤 희망의 씨앗을 본다. 어려운 조건에서 노동 교육에 힘쓰는 선생님들 덕분일 것이다. 전교조를 지키는 건 우리 아이들의 생각뿐 아니라, 적어도 사유의 시간을 뺏기지 않게 하는 일이다.


태그:#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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