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보신 적이 있는가? 금기(禁忌)의 상징, 월담(越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담장을 넘는다는 것은 가진 것을 전부 잃을 수도 있지만 새 세상을 향한 화끈한 도전의 유혹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기를 깨고 박차고 오른 담장 너머에는 꿈 속에 그리던 신비로운 세계가 무한한 자유와 함께 우릴 기다리고 있다. 단, 담장 이쪽에 있으면서 보장됐던 안전과 이익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말씀!

독서의 계절이다. 독서의 첫 번째 덕목은 무엇일까? 물론 '재미'다. 재미가 있어야 읽힌다. 독서에 깊은 맛을 들인 대부분의 석학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느니 '작가는 시대의 스승'이라느니 하면서 책 읽기를 독려하지만, 대부분의 범인(凡人)들은 책 속에 들어있을 재미에 일단 중독되어야 읽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딱 좋은 책을 발견했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읽게 된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그것이다. 읽다 보면 얻게 되는 세계사 지식은 보너스.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스웨덴 사람이다. 15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차린 미디어사업을 통해 직원 수가 백 여명에 이르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다. 그러나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매각하고 업계를 떠나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하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자랑한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건강 악화로 사업을 접었다는 작가는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작업으로 소설을 택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는 건강도 되찾고 작가로서도 꽤 성공한 셈이다. 그의 처녀작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데 무려 오백만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장편소설은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박진감과 유머가 만발한다.

100세 노인의 인권을 보장하라,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리!

100세 노인이 슬리퍼만 신은 채로 창문을 넘어 도망쳐 범죄를 저지르며 마구 도망다닌다. 그 걸음과 행동에 거침이 없다. 주인공의 고백처럼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100세 노인이 슬리퍼만 신은 채로 창문을 넘어 도망쳐 범죄를 저지르며 마구 도망다닌다. 그 걸음과 행동에 거침이 없다. 주인공의 고백처럼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서?
ⓒ 열린책들

관련사진보기

주인공 <알란 칼손>은 2005년 5월 2일 만 100세가 된다. 그 기념으로 그가 살고 있는 요양원에서 잔치를 열기로 되어 있다. 요양원장 알리스와 요양원이 있는 마을, 말름셰핑이 속한 시의 시장(市長), 여러 미디어의 기자들이 알란의 백회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대기 중이지만 알란은 창문을 열고 팬지 꽃 화단이 있는 뒷마당으로 뛰어내리며 26일 동안의 아슬아슬한 여행을 시작한다.

"누구를 위한 파티란 말인가. 시장님?, 요양원장?, 기자님들? 아무래도 나를 위한 잔치는 아닌 것 같은데…" 길을 나서며 알란이 뇌까리는 말이다. 요양원에서는 금주 금연은 물론 식사시간, 취침시간, TV시청 시간까지 정해져 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요양원장 알리스의 잔소리와 밥을 굶어야 하는 등의 벌칙이 원생들을 괴롭힌다.

이야기는 주인공 알란이 백세를 맞는 현재(2005년 5월)를 그리면서, 그가 태어난 해인1905년부터의 이야기가 별도로 소급된다. 또한 소설은 '알란 칼손'이라고 하는 한 남자의 전기(傳記)를 이용해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도 만나게 해준다. 1·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란, 중일전쟁, 중국내전,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소설 속 '알란 칼손'은 직접 프랭클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마오쩌둥과 장제쓰와 쑹메이린 부부, 레닌, 스탈린, 후루쇼프 등을 만나 이야기하고 술도 마신다. 그는 장제쓰의 국민당으로부터 마오쩌둥의 셋째 부인 장친을 구하기도 하고, 윈스턴 처칠과는 한 비행기에 같이 타기도 하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머리 나쁜 이복동생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과는 절친이 된다.

스웨덴은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을 이웃나라로 두고 있으며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인구 천만의 소국이다. 여기서 태어난 '알란 칼손'이라고 하는 남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20세기의 급박한 국제 정세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어떤 주의나 주장이 없는 '알란'은 그러기에 미소 냉전 체제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체제의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고 전세계를 좌충우돌하게 된다.

그는 미국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에서 1945년 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쑥대밭으로 만든 원자폭탄 개발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그 몇 년 뒤엔 한 물리학자를 통해 소련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소설 속에서는 너무나 그럴 듯하게 얽혀져 있어 독자는 우습다가 심각하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알란'은 어머니가 해준 말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란다"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어떤 주의나 주장도 무의미하기에 필요 없다는 것일까. 사회주의적 경향을 보이던 아버지가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을 겪으면서 차르 편에 서게 되고 레닌의 토지몰수 정책에 항거하다가 레닌주의자들에게 총살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은 주인공 알란의 인생을 더욱 비정치적인 방향으로 몰게 된다.

남편의 사망소식에도 땔감을 구해다 팔기 위해 산으로 가는 매일의 일정을 그대로 진행한 엄마처럼, 알란은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알란'은 '정치적 입장'이라는 게 없다. 그는 여행과 보드카, 그리고 친구 몇이면 족하다. 그는 불평불만 또한 하는 법이 없다. 그에게 불평할 일이 생긴다면 그건 누군가 정치 얘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가 된 핫도그 장수 베니와 보세가 지난 일로 감정이 격해지자 알란은 '지구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분쟁은 대개 <네가 멍청해! – 아냐, 멍청한 건 너야! – 아냐, 멍청한 건 너라고!>라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둘이서 보드카 한 병을 함께 비우고 나서 앞일을 생각하는 거란다.

잔인한 일상의 연속도 알란에겐 흥미진진한 인생의 여정이 된다. 겨우 여섯 살 된 알란에게 그의 아버지는 말한다. "아들아, 성직자들을 조심해라.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조심해. 가장 고약한 것은 술을 마시지 않는 성직자들이란다." 이어서 어머니의 충고가 이어진다. "알란아. 주정뱅이들을 조심해라. 사실 제일 조심했어야 하는 사람은 나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알란은 '믿을 만한 사람은 과일주스를 마시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동감하고, '사람이 가끔 술을 한잔 할 수는 있지만 이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충고에도 귀 기울인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알란은 생계를 위해 다이너마이트의 소재를 다루는 니트로글리세린사(社)에 입사하게 된다. 몇 년 뒤 폭약전문가가 된 알란, 어머니마저 잃게 되면서 그는 스웨덴을 벗어나 스페인 내란을 거쳐 소련의 전진기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의 평양으로 중국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이집트로 수십 년간의 여행을 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는 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에 휴전선이 그어지는 과정도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가 스웨덴 자신의 집으로 돌아 왔을 땐 이미 팔순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복수는 좋지 않은거야. 복수는 정치와도 같은 것이라서 하나는 다른 하나를 낳고, 악은 개악을 낳아 결국 최악에 이르게 되거든"이라던 알란은 백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소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아끼던 고양이를 물어 죽인 여우를 혼내주기 위해 집 뒷마당 닭장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 폭발은 닭장만 날려버린 것이 아니었다. 닭들은 물론, 집까지 날려버린 이 폭발로 알란은 끔찍이도 싫은 알리스가 원장으로 있는 말름세핑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는 것이다. 이 폭발은 창문을 넘어 도망치기 몇 달 전 일이다. 15살에도 집 뒷 마당에서 폭발 실험을 하다 사고를 낸 알란은 정신병원 신세를 진다.

백세를 기념해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만나게 되는 사람과 상황은 또 어떨까.
이 26간의 스릴 넘치는 여행 중에 알란은 조폭 갱단, 좀도둑으로 잔뼈가 굵은 70세 노인, 30년 동안 대학만 다닌 핫도그 장수, 핫도그 장수의 형, 욕쟁이 중년 여자, 형사, 검사 등을 만나 친구가 된다.

우리 독자들은 동유럽 라트비아와 아프리카의 지부티까지 여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 권총과 엽총이 소품으로 등장하고 셰퍼드와 코끼리도 빠질 수 없다. 한 달간의 여행에는 이동수단도 준비해야 한다. 벤츠와 포드 머스탱, 볼보, 버스까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을 모두 파라다이스로 실어 날라야만 하는 수송기도 한 대 필요하다.

평생을 총각으로 지내던 알란은 심지어 100세를 기념해 절친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아내였던 사만다와 결혼도 한다. 그것도 인도네시아의 파라다이스 발리에서! 우리의 알란 할아버지가 안락한 요양원생활을 때려 치우고 얻은 것은 이뿐이 아니다. 이야기는 범죄자들, 성격적으로 문제아들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형사와 검사들도 알고 보면 몸 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우리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닿게 해준다. 한 무리의 친구들까지 영원한 알란 편이 된 것이다.

잠깐! 그가 백세까지 총각으로 지내게 된 말 못할 사연은 독서의 계절이 지나가기 전에 소설 속에서 직접 만나시라!

덧붙이는 글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3년 7월 25일 초판인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영화 에디션)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2014)


태그:#100세, #알란칼손, #보드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