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용환이네 할머니와 용환이 아빠 엄마가 왔지만 용환이 엄마와 우리 엄마는 서로 인사도 안했다. 외갓집 식구들이 싫어할까 봐 은지네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못했다. 외갓집 식구들이 우리 아빠가 장례식장에 있는 걸 막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왔다. 외삼촌뿐 아니라 외숙모들도 불편해서 계속 있을 수가 없었다.
-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본문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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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 보리	관련사진보기

미리내는 동화책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의 주인공이다. 미리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동네 사람들은 문상 오는 것을 꺼려 한다. 그뿐만 아니라 상주인 자식들도 불편한 마음에 장례가 끝나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이유는 바로 강정마을 해군기지공사로 마을 사람들이 찬성파, 반대파로 나눠졌기 때문이다.

보리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책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는 김중미 선생님이 쓴 동화책이다. 김중미 선생님은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종이밥>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해군기지가 만들어지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미리내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리내와 은지, 용환이는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 해군기지를 만든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찬성, 반대파로 갈라진다. 아이들 또한 찬성파, 반대파가 따로 논다. 미리내와 은지네는 반대파이고 용환이네는 찬성파다.

마을 아이들은 구럼비바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방과후 시간에 강정마을에 명소를 소개하는 글을 발표했다. 은수 오빠가 발표한 글이다.

나는 (구럼비 바위) 통물에서 수영을 배웠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거의 다 통물에서 수영을 배운다. 통물에서 수영을 배운 다음에 강정천에서 가장 깊은 남동지소로 가는 거다.
통물은 물이 두 군데서 나온다. 통물은 일년 내내 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여름에 천둥 번개가 친 다음에 물이 나온다. 물이 나올 때가 되면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이끼가 끼고 올챙이가 알을 까서 미끄덩거리는 통물을 깨끗이 청소해 준다.
-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본문 45쪽.

구럼비 바위에 대한 은지의 추억이다.

여름에 구럼비 바위에서 하루 종일 놀았어요. 할망물식당에서 동규 삼촌이 해 주는 밥을 먹고, 구럼비 바위 위 천막에서 잤어요. 구럼비 바위 위에 누우면 별이 총총 보여요. 파도 소리도 들려요. 모기가 무는 것만 빼고는 천국이에요. 구럼비 바위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본문 47쪽.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구럼비 바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구럼비 바위의 길이가 1km가 넘는다는 글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나는 갑자기 구럼비 바위가 얼마나 큰지, 그 모습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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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사진 공모전에서 은상을 받은 정우철 감독의 사진 <구럼비>
ⓒ 정우철	관련사진보기

인터넷으로 구럼비 바위의 사진을 살펴보고 구럼비의 실제 모습을 보려고 했다. 물론 길이가 1km가 넘는 바위의 모습을 한 눈에 살펴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구럼비 바위의 사진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구럼비 바위에서 노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붉은발말똥게와 새뱅이, 맹꽁이가 사는 구럼비 바위의 모습은 이제 제주도에 가도 보기 쉽지가 않다. 해군기지 공사가림막 때문이다. 미리내는 주문을 외운다. 구럼비 바위가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게똥말발은붉이꽁맹이뱅새비럼구"라는 주문을.

강정마을은 제주도 남쪽이라 태풍이 많이 올라오는 곳이다. 강정 앞 바다에 공사를 위해 아파트 8층 높이에 무게가 8800톤이 넘는 케이슨이 떠 있다. 그런데 태풍 때문에 케이슨이 망가졌다고 한다. 3만 년 동안 구름비 바위는 끄덕이 없었는데... 그런데 그 망가진 케이슨을 바다에서 폭파해서 해체를 한다니 바다 속이 얼마나 오염이 될까? 바다 속에 물고기들은 살 수가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염려가 되었다. 태풍에 쉽게 부서지는 케이슨을 강정 바다에 다시 띄우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일까?

얼마 뒤, 미리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러나 장례식장엔 동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 찬성파인 외삼촌네 때문에 반대파인 은지네가 오지 않고 반대파인 미리내 부모님 때문에 용환이 엄마는 미리내 엄마와 눈을 맞추치지 않았다. 사실 미리내 외할머니도 해군기지 찬성파이다. 외할머니는 강정마을에서 물질을 하셨는데도 찬성을 했다. 할아버지 제삿날, 찬성파인 큰외삼촌과 미리내 아빠가 크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는 미리내 아빠에게 처갓집에 오지 말라고 호통을 치신다. 그래서 미리내와 외가집 식구들 사이가 서먹하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병원에 다녀온 미리내 엄마가 미리내 아빠의 품에서 안겨 울며 할머니의 말을 전했다.

"어망이 그랜. 물질이 하도 지겹고 돈을 많이 준대서 찬성 쪽에 섰다고, 보상금 받은 거 자식들 나눠 주려고 했다고, 해군기지는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까 반대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핸. 어차피 해군기지 들어설 거 미리 찬성해서 보상금 받아신디 뭔 잘못인가 했댄.
"장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션? 진짜로?"
"응. 근데 이젠 후회된대. 당신한테 미안하댄. 나더러 만날 정문에 나가서 그러고 있지만 말고 마을 어른들이랑 내 또래 엄마들 설득하라고. 엄마 말이 '개 구진딘 살아도 사람 구진딘 못 산다.' 고 지금처럼 서로 미워하며 살민 우리 마을 진짜 끝이렝."
- <너영 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본문 97쪽

한편으로는 찬성표를 한 할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다.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할머니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미리내가 다시 예전처럼 친구들과 구럼비 바위에서 즐겁게 노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