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상추에 밥을 놓고 된장을 조금 올려 쌌습니다. 그것을 입에 넣고 느리게 씹고 또 씹었습니다.
 상추에 밥을 놓고 된장을 조금 올려 쌌습니다. 그것을 입에 넣고 느리게 씹고 또 씹었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1

아버지께서 입원해 계시는 동안 주로 아내가 간병을 맡았습니다. 특별한 날 쓰기위해 미루어두었던 휴가를 모두 사용했고, 그 후로는 회사의 근무 스케줄을 조절해서 아버지 곁을 지켰습니다.

병원의 환자식이 공급되면 아버지는 식사를 반만 하셨습니다. 평소 밥 알 하나도 남겨서는 안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밥의 반을 남기는 이유를 아버지는 '나이를 먹으니 배가 줄었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아내는 제게 그 이유를 달리 설명했습니다.

"제가 밥을 굶는 줄 알고, 제 몫으로 남기는 거예요."

아무튼 막무가내로 반만 덜어서 드시는 아버지의 나머지 반을 아내가 함께 먹었습니다. 아버지의 느린 식사 속도에 맞추다 보니 아내도 밥을 느리게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느리게 씹고 또 씹었습니다. 

아내가 제게 말했습니다.

"천천히 먹으니 입안에서 밥알 하나하나가 구르면서 씹히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입안에서 절로 밥이 없어질 때까지 여러 번을 씹으니 밥이 설탕처럼 달았습니다. 하루도 먹지 않는 날이 없이 살면서 제 입에 들어가는 그것 자체에 집중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사 후의 바쁜 일들만 생각했던 거예요."  

#2

청소를 마치고 늦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저의 이웃으로 텃밭 농사를 지으시는 김성규 선생님께서 제 몫으로 가꾸어주신 상추를 따왔습니다. 그리고 옹기뜸골의 우태영 선생님께서 거창에서 보내주신 된장 한 숟가락을 퍼서 함께 놓았습니다.

제가 이 가을에도 상추를 먹을 수 있는 것은 김 선생님께서 지난여름 내내 먹었던 제게 싱싱한 푸성귀를 제공해주던 그 자리에 꽃을 피운 상추를 걷어내고 다시 새로운 모종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옹기뜸 된장은 건강한 미생물들의 활동에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의 울력을 합해 만들어진 전통된장입니다.

90세 시아버지의 느린 식사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느리게 밥을 씹다가 마침내 밥의 단맛을 알았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상추에 밥을 놓고 된장을 조금 올려 쌌습니다. 그것을 입에 넣고 느리게 씹고 또 씹었습니다. 

가을볕을 받아 자란 상추와 전통된장 그리고 밥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산뜻하고 쌉싸롬한 맛은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순수하고 깊었습니다. 

그 순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식사 후의 바쁜 일들은 잊고 입안의 그것 자체에 집중해서 천천히 씹고 느리게 삼킬 일이었습니다. 

본질과 그 본질에 대한 감사는 느린 속도에서 비로소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된장, #상추쌈, #느림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