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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바위가 보이는 행사장. 들녁엔 들꽃이 만발하고 행사장 주변엔 노랑 바람개비로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부엉이 바위가 보이는 행사장. 들녁엔 들꽃이 만발하고 행사장 주변엔 노랑 바람개비로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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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3시, 저는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가 있는 산아래 잔디밭에 있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알게됐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평소 방송인 김제동씨가 하는 강의를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봉하마을에 뜬다는 소리를 접하곤, 만사 제쳐두고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와 기차로 가려니 여러 경로를 거쳐야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봉하마을 가는 길 정보를 보고서 다른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노사모 울산모임도 있지 않을까? 검색하니 진짜로 온라인 카페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장 가입하고 인사말에 글을 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목에 살아요. 28일(토) 오후 3시에 봉하마을에서 김제동씨 특강 한다는데 단체로 가나요?"

얼마 후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더군요.

"그동안 봉하마을 갈때는 언제나 개별로 갔었습니다. 이번 행사에도 함께 갈 예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보니 또다른 댓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어떤분이 "제 승합차로 가는데 마침 한자리가 빕니다, 함께 가시려면 연락주세요." 그분은 친절하게도 연락처까지 남겨두었습니다. 함께 가도 되냐고 문자를 날렸더니 전화가 와서 같이 갈 장소를 말해주었습니다.

당일 아침,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니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같이 가실분이 다 모여서 봉하마을로 향했습니다. 모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많이 존경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운전 하시는 분은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을 하는 분으로 남성이었고 중년 여성이 세분이었습니다. 제가 함께 해서 모두 5명이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초면이었지만 관심사가 같아 우리는 금세 친해졌습니다.

마당이 있고 헛간이 있었습니다. 담장 앞엔 자료를 전시해 두었습니다.
▲ 고 노무현 대통령 복원된 초갓집 마당이 있고 헛간이 있었습니다. 담장 앞엔 자료를 전시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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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억, 김제동씨에 대한 매력을 이야기 하다보니 봉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분은 봉하마을을 여러차례 다녀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길을 잘 찾아 갔습니다. 부산을 거쳐 김해로 가서 봉하마을로 갈줄 알았더니 그분은 밀양쪽 도로를 선택해 갔습니다. 주변으론 중소기업이 즐비하게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부터 노란색의 바람개비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 들녁엔 익어가는 벼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오지 않는 흐린날이라 덥지 않고 좋았습니다. 마을에 다가서니 멀리 부엉이 바위가 보였습니다. 길거리 장사하는 분들은 '고 노무현 헌화 꽃 1000원'이라는 글을 코팅해 놓고 하얀색의 국화를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봉하마을 식당에 들어가 같이 점심을 먹고 고 노무현의 생가와 전시관을 관람했습니다. 봉하마을 곳곳에 그분의 흔적이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캐리커처 그림과 함께 쌀을 도정하는 공장도 있었습니다. 그곳엔 온통 고 노무현에 관한 내용으로 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노란 바람개비가 들판 곳곳에 많이 세워져 있기도 했고, 곳곳에 그분의 흔적을 찾는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부엉이 바위 앞쪽으로도 그분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유언에 적힌 대로 돌로 무덤을 세웠습니다. 많은 분들의 이름이 세겨진 돌판들이 운동장 만큼 많이 놓여 있어 이채로웠습니다. 그분이 나고 자란 생가터는 작고 평범한 옛 초가집이었습니다. 앞 마당엔 그 분 관련 선전물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분 전시관엔 태어나고 자란 과정과 변호사되고 정치인 되고 대통령 된 정보가 사진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제동 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도 접근하여 사진 찍으려 하자 옆에 있던 분이 더이상 접근말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담배 한까치 달라더니 피웠습니다. 왼손에 담배가 들려 있습니다. 그는 소탈해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김제동 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저도 접근하여 사진 찍으려 하자 옆에 있던 분이 더이상 접근말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담배 한까치 달라더니 피웠습니다. 왼손에 담배가 들려 있습니다. 그는 소탈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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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 특강도 들었습니다

어느 논길엔 차량이 지나 다니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승용차들이 줄지어 계속 주차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같이 온 분들이 앞자리 앉으려면 일찍 가야 한다면서 강연장으로 갔습니다. 강연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 노무현 재단에서 마련해 둔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쳐 의자에 못 앉은 분들은 옆 잔디밭이나 산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2년 전 김제동씨가 봉하마을에 왔을 때와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강의를 들으러 온 거 같다고 했습니다. 무대 양 옆으론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무대 왼쪽엔 '사람이 사람에게'란 글자가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 강의 제목인가 봅니다. 오른쪽으론 김제동씨 사진이 있었습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웅성 거렸습니다. 멀리서 김제동씨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신사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팔을 걷어 올렸습니다.

저도 무대 뒤로 가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더 가까이 가려하자 관계자들이 더 앞으로 오지 말라며 제지를 했습니다. 김제동씨는 그냥 나무 아래 쪼그려 앉더니 같이 온 관계자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떨려서 그럴까요? 그가 담배를 물고 몇 모금 빨자마자 무대에서 다른 사회자가 김제동씨를 소개해버렸습니다. 김제동씨는 담배를 빨다말고 급히 끄고는 바로 무대로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말솜씨로 이야기를 풀어 갔습니다. 사회자는 40분 강의를 하고 40분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강의를 서서 하기도 하고 앉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무대 뒤에도 많은 분들이 앉아 들었습니다.
 그는 강의를 서서 하기도 하고 앉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무대 뒤에도 많은 분들이 앉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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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초상권이 없으니 제 사진 맘대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 강의를 해야하니 나중에 사진 찍을 시간 충분히 드릴 테니 그때 찍으시고 지금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씨는 가족 이야기부터 했습니다. 원고는 준비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함께 공유하고 재밌게 즐겨보자 했습니다. "제발 공부 강요 말라"고 모인 분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부모 말 안 듣는 아이 일수록 부모를 뛰어 넘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려면 민주주의 가족관계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괜찮다 라는 마음 가지고 사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상대방이 가진 권리를 서로 인정해주면 되는 겁니다. 이게 어렵습니까? 저는 어려운 이야기 쉽게 합니다. 저는 연애에 대해 사귀는 것에 대해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합니다."

김제동씨는 웃으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측 가능하면 웃깁니까? 우리가 우리 몸을 아무리 간질여 봐야 우리는 절대로 웃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나를 간질이려 하니 내가 나를 이미 간질인다는 사실을 인식해 버립니다. 예측 가능한데 웃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측 불가능 한 일에 대해 자지러지게 웃지요. 예측 했는데 이상하게 꼬이면 웃깁니다. 세상 일에 자세히 관찰하고 참여해보면 웃기는 일이 참 많습니다."

참석자 한분이 마이크 틀고 질문을 했습니다. 김제동 씨는 재밌게 풀어가며 대답을 했습니다.
 참석자 한분이 마이크 틀고 질문을 했습니다. 김제동 씨는 재밌게 풀어가며 대답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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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기는 일 보면 웃긴다 말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남들 시선에서 자유롭게 사세요. '또라이'처럼 사세요. 행복하게 사는 법은 그겁니다. 남들에게 피해 안주면서 무조건 웃는 겁니다.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으며 사는 겁니다. 민주주의 하자하자 하면서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방은 절대로 걱정 없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세상에서 제일 싸움 잘 할 겁니다. 임진왜란 때 풍신수길이 쳐들어 오다 기겁하고 도망 갔지요? 전국 도처에서 스스로 용감하게 싸우는 의병이 있음을 예상치 못했습니다. 언제나 수렁에 빠진 나라 위해 싸우는 건 민초들이었습니다."

김제동씨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나갔습니다. 그런 재주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짧게 짧게 읊조리는 그의 정치, 사회, 국제분야의 한마디에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그는 우리 서민들이 가지는 애환을 잘 집어내는 만담꾼이었습니다.

"성경에 왼쪽 뺨 때리거든 오른 뺨도 내밀어라, 오리를 가자거든 십리를 가주어라는 말이 있지요? 빠진 말이 있습니다. 왼쪽 뺨 때리거든 웃으면서 오른 뺨을 내밀고, 오리를 가자거든 웃으면서 십리를 가주어라.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웃으며 대주고 내주고 그렇게 삽시다. 또라이가 힘 가지면 문제가 됩니다. 왜냐구요? 남들에게 강요하니까. 색만 가지고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좌파, 우파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이제 체제 싸움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더 나은 나라 만들자 하면 빨갱이라 합니다. 좌우 욕하는거 말고 사람이 사는 세상을 보면 좋겠습니다. 사상, 이념 다르다고 비난말고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웃으며 또라이처럼 살아야지 재밌게 살 수 있죠. 안 그렇습니까?"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이 모였습니다. 김제동 효과가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이 모였습니다. 김제동 효과가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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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녀 만남 이야기를 하면서 "선입견이 얼마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느냐"고 반문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우익 신문에서 칭찬하는 교과서를 문제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그리 좋으면 일본 가서 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또 "일본 때문에 근대화 되었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진보나 보수나 모두 대한민국 발전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되는 곳은 우리 시민이 나서서 고쳐야 합니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좌,우 모두 대한민국 깨지 말고 좌나 우나 진보나 보수를 넘어서는 세상 만들어야 합니다. 통일조국, 통일 대한민국 그래서 군대 안가도 되는 나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가까운 미래에 기차 타고 남쪽에서 북쪽을 거쳐 유럽으로 여행 다닐수 있어야 합니다."  

김씨는 웃기는 말로 이야기로 청중을 사로잡는 강의를 하다가도 정치, 사회, 경제, 국제 이야기를 할 때는 정중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도 하고 부탁도 하고 어떨 때는 현실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40분 예정된 강의는 1시간 10분을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가서 질문 시간이 짧아 졌습니다. 젊은 남자분은 헤어진 여자 친구를 못있겠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잊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김제동 씨가 웃기기도 하며 진심으로 이야기 하자 다 듣고난 질문자는 "고맙습니다, 김제동 님 이야기 듣고나니 속이 후련합니다"라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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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거리상인이 하얀색 국화를 1천원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주변 거리상인이 하얀색 국화를 1천원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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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을 한 사람은 광주여대 학생이라 했습니다. 정신대 할머니 돕기 자선행사를 하는데 도와 달라 했습니다. 김제동씨는 그 여학생과 이미 알고 있는 거 같았습니다. 광주여대 강연 갔을 때 그 문제로 질문을 했었나 봅니다. 김제동씨는 그 여학생을 무대로 나오라 했습니다. 그들은 동아리 모임에서 작은 수제품을 만들어 팔아 그 수익금으로 아직 살아계신 정신대 할머니를 돕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설명을 듣자 김제동씨는 도우미를 부르더니 노무현 재단에서 받을 강사료를 달라고 했습니다. 김제동씨는 즉석에서 강사료를 그 여학생에게 주면서 "오늘 관계자들과 저녁 먹으려 했는데 주는 것이니 좋은 일에 쓰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참 감동스런 장면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에서 왔습니다. 나이 오십줄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김제동님에게 상담을 해봅니다. 저는 울산에 있는 현대차 공장에서 10여년 동안이나 불법파견 된 채 일하다 정리해고 당한 지 3년이 넘었습니다. 가족 생계를 위해 지금은 학교 일용직 다니고 있습니다만 3년째 월급 한푼 안오르고 있습니다. 현대차에도 교육부에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저는 대법원에서 판결 난 대로 현대차에 정규직 전환 복직 되거나 아니면 학교 비정규직에서 교육감 직고용이나 교육공무직으로 전환하고 싶은데 벽이 너무 높은게 현실 입니다. 김제동 님이라면 이럴때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 여학생과 대화가 끝나면 즉시 손을 번쩍 들고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준비를 잔뜩하고 있는데 김제동씨가 "오늘 제 특강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무대에서 내려가버렸습니다. 그 여학생과의 대화가 마무리 되면서 갑자기 엄숙하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마무리 해서 손을 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만나기 힘든 방송인인데 질문 기회를 놓쳐버려 정말로 아쉬웠습니다.

김제동 특강을 들으러 좀 일찍 온 분들은 저처럼 다니며 고 노무현 자료관을 관람했습니다.
 김제동 특강을 들으러 좀 일찍 온 분들은 저처럼 다니며 고 노무현 자료관을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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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전 단체사진 촬영을 하기로 했던 김제동씨는 참석자가 너무 많아서 일정상 무리가 따른다며 사과하고 무대를 내려 갔습니다. 김제동씨는 바로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참배 한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더 있고 싶었지만 함께 간 일행이 빨리 빠져 나가려면 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봉하마을엔 차량으로 꽉 차서 논길에 세워놓은 승용차로 큰 길까지 빠져 나오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우린 그렇게 울산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훈훈하고 감동적인 김제동 씨 강의 잘 듣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방송인 김제동씨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자기자신 입니다. 소중한 자신을 잘 보살피고 우리모두 하나되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끝에는 조용하게 고맙다 인사하는 그가 생각납니다. 웃기는 강의 속에 날카로운 정치 현실 꼬집기는 제 정신마저 번쩍 들게 했습니다. 금빛 물결을 이루는 벼와 노랑 바람개비가 어우러져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예쁘게 만발한 들꽃들마저 잘가라 인사 하는 거 같았습니다. 김제동씨가 올라서서 강연했던 자리 아래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습니다.

"노무현은 지키지 못했지만 노무현 정신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다하고 청와대를 나오며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 "야! 기분좋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다하고 청와대를 나오며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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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봉화마을, #노무현 대통령, #김제동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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