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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일, 저희집을 방문하신 목사님께서 저와 일행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지난 9월 1일, 저희집을 방문하신 목사님께서 저와 일행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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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조정위원으로 활동하신 어르신과의 만남에서 한 조정사례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부인이 갑자기 한 종교에 지나치게 집착했습니다. 가정의 일상생활이 방해받을 만큼 교회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고 기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기 위한 노력의 결실로 적금을 통해 마침내 500만 원의 목돈을 마련했습니다. 부인이 남편과 상의 없이 그 돈을 헌금으로 냈습니다. 그 돈은 함께 소망해 온 그 가정의 희망이었던 돈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남편은 분노했고 이혼을 청구했습니다.

이 어르신은 어린 두 아이가 있는 이 부부의 이혼만은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남편과 부인을 따로 혹은 함께 만났습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느끼는 배신감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화해는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500만 원은 이 가정의 전 재산에 가까운 큰돈입니다. 하지만 부인이 이 500만 원을 주고 얻고자했던 것이 부인 혼자의 쾌락이나 안락이 아니라 이 가정의 행복이었습니다. 부인의 무리한 판단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한다면 두 아이의 행복도 함께 잃는 것입니다. 어찌 두 아이의 미래와 행복이 500만 원보다 못하단 말입니까?"

긴 시간, 거듭 설득했습니다. 최종 판결이 있는 법정에서 남편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부인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오직 나와 자식을 위해서 했던 당신의 일에 책임을 묻고자했던 이 어리석은 남편을 용서해주시오."

조정기간 내내 이혼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남편의 극적인 태도변화에 법정은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가정의 어려움을 안 한 목사님의 배려로 이 가정은 교회의 사택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2 

종교는 기복(祈福)과 벽사(辟邪) 그리고 깨달음의 요소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거부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각득(覺得)하여 진리에 이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것에 이르고자하는 사람들의 종교를 대하는 태도와 방법입니다. 

한 중소기업대표인 장로님께서는 신심이 두터워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일에는 늘 앞장섭니다. 그에게 속한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고 자신은 단지 관리자일 뿐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그 재물을 쓰면 쓸수록 하나님이 이 관리자에 대해 더 기뻐하시고 다른 사람보다 이 좋은 관리자에게 더 많은 재물을 맡긴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교회를 짓고 그 교세를 확장하는 일이 모든 일의 으뜸입니다. 그 분의 자녀 중에서 가장 대견스러운 딸에게 많은 재산을 등기해주었습니다. 그 딸을 예뻐하는 이유로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십의 일조가 아니라 십의 삼조를 헌금하는 두터운 신앙심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호주의 시드니에서 후세인이 왔습니다. 그는 서아프리카의 프랑스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세네갈에서 태어나서 프랑스를 오가며 공부했고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호주에서 독립 요리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종교를 물었습니다. 

"저는 무슬림의 아들로 태어났고 당연히 이슬람교를 믿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기독교도가 되었지만 이제는 저를 믿고 있습니다."

그는 다른 문화적 배경의 삶을 살아오면서 종교에 집착하기보다 오히려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3 

<종교, 심층을 보다>의 저자인 오강남 교수님은 비교종교학자로서 세계 여러 종교를 비교하고 분류하면서 각 종교의 본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 교수님은 각 종교를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 등의 종교전통에 따라 분류하는 대신 그 종교 현상을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하고 의미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그 종교들의 전통들이 관통하고 있는 내용에 따라 '표층'과 '심층'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지난 4월 28일, 일산의 향음홀에서 코리안 아쉬람의 모임에서 강연중인 오강남 교수님
 지난 4월 28일, 일산의 향음홀에서 코리안 아쉬람의 모임에서 강연중인 오강남 교수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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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되지 않은 지금의 나 (그리스도교적 용어로 죄인인 나, 불교적 용어로 탐진치에 찌든 나)를 잘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표층 종교라면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죽여 더 큰 나 (참나, 진아, 대아)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심층 종교'라는 것입니다. 이런 접근법에 따르면 기독교도 표층 기독교와 심층 기독교가 있고, 불교에도 표층 불교와 심층 불교, 유교에도 표층 유교와 심층 유교가 있다는 것이지요. 

같은 기도와 헌금이라고 하더라도 현세의 복과 내세의 영생복락을 간구한다면 표층이며 이기적인 나를 극복하고 새로운 나 즉 '참나'로 거듭나기 위한 영적 훈련이라면 심층으로 분류합니다. 신앙에서 기복이 중심이 되면 종교 행동자체가 이기적인 행위가 됩니다. 

오 교수님은 표층이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경향을 지닌 반면 심층은 '이해'나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고 전자가 신과 나를 영원히 분리된 별개의 개체로 보는 반면 후자는 '내가 신 속에 있고 신이 내속에 있다'고 여기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내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나 인내천(人乃天, 내가 한울님이다)라는 만유재신론(panentheism)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4 

저의 아내도 잠시 출가를 고려한 적이 이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조금함으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지난 8월 29일 새벽 3시, 김천 증산면의 수도암을 방문한 저의 아내가 새벽예불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9일 새벽 3시, 김천 증산면의 수도암을 방문한 저의 아내가 새벽예불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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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조정위원이셨던 어르신의 조정사례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부인에 대한 배신감에 이혼을 고집했던 남편의 입장을 이해할만했습니다. 신과 인간의 문제는 항상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종교생활이 일상의 영위에 무리를 주거나 가정의 정상적인 유지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종교기관과 종교지도자의 책임이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를 섬기는 교인들이 신앙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해야합니다.

종교자체는 '불립문자(不立文字)'입니다. 문자로는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문자로 세우고자하니 종교지도자나 신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주장과 수단이 범람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게 종교를 묻습니다. 

"저는 열심히 청소하고 정성을 다해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고 지금의 제 아들딸들을 위해 아낌없이 소비하기보다 그들의 아들딸들을 위해 한 숟가락의 밥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교회에도 가고 절에도 갑니다. 그것이 저의 종교생활입니다." 

저의 변함없는 대답입니다. 

자기의 일상을 흩트리지 않고 각각의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은 교회나 법당을 찾아 기도하는 것 보다 중요하며 자신의 가정과 가족의 안위에 대해 책임지는 일 그것은 헌금과 보시보다 중요하며 내 이웃에게 안부를 묻고 나의 시야가 미치는 곳의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일, 그것은 유목의 초원에 벽돌 교회를 세우거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 수목을 벌목하고 법당을 짓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종교적 행위임이 분명합니다.

덧붙이는 글 | 관련글 | 아내가 출가를 선언했어요. http://motif_1.blog.me/30086476742



태그:#종교, #신앙, #심층종교, #표층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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