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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경인지방우정청 평택우체국에서 발송된 우정사업본부 내부 회람용 이메일. 택배기사 파업을 주도했던 기사 5명이 타 우체국에서 재취업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6월 28일 경인지방우정청 평택우체국에서 발송된 우정사업본부 내부 회람용 이메일. 택배기사 파업을 주도했던 기사 5명이 타 우체국에서 재취업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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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에서 내부적으로 일선 우체국 위탁업체 택배기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통해 파업에 참여한 택배기사들의 재취업을 막아온 정황이 드러났다. 국가기관이 중간 위탁업체를 이용해 책임은 회피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 지위에 있는 택배기사를 실질적으로 관리해 온 셈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5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우정사업본부 내부 이메일에 따르면 경인지방우정청은 지난 6월 28일 각 지역 우체국장 등 택배 업무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소포위탁 운영 관련 사항을 하달했다. 이 메일에는 2011년 11월 택배기사 파업을 주도한 김 아무개씨 외 4명의 이름, 차량 번호와 함께 이들이 다른 지역 우체국에서 채용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파업한 택배 기사들 재취용 안되게...'외부에는 비밀'"

우체국 택배 기사들은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에 해당한다. 우체국에서 택배 업무를 위탁받은 중간 업체와 '한 다리 건너' 계약을 맺고 개인 소유의 트럭을 이용해 수화물을 배달하면서 건당 기본 96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우체국 물건을 배달하는 노동을 하지만 원칙적으로 따져보면 우체국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계약관계에 놓여있는 셈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10년이 넘게 제자리 걸음 수준인 낮은 위탁수수료를 받으며 하루 평균 12시간이 넘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기사들의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이유로 이 점을 지목한다. 기사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을 이유로 파업을 하거나 집단으로 대화를 요구할 때마다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당사자인 우정사업본부가 위탁업체를 내세우며 뒤로 빠져왔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측은 그간 자신들이 택배 기사들과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날 입수된 이메일 내용에 따르면 그같은 태도는 실제 운영 행태와는 달랐다. 우정사업본부 내부 회람용으로 작성된 이 이메일에는 '특별관리명단'이라는 단어와 함께 택배기사 5명의 실명과 영업용 차량 번호가 등장한다.

메일 작성자는 경인지방우정청 우정사업국의 한 공무원. 수신자는 우정청 소속 복수의 공무원들이다. 그는 메일에서 "2011년 11월 서울금천우체국에서 배달원 스트라이크(파업)을 주동했던 명단"이라면서 "현재 수원우체국에서 배달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만 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의도, 양천 우체국 쪽으로 갈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경인청내 다른 우체국에서 채용되지 않도록 업체에 주지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파업 주동자 등 '문제 기사'들에 대해 우체국이 적극 관리해 왔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메일 작성자는 이 대목 앞에 "보안사항을 별도 관리하고 바로 삭제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당부를 한 뒤에도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보안 유지를 재차 강조했다. 또한 "외부 유출시 유출자는…"이라면서 내부 제제를 암시하는 구절을 넣기도 했다.

이 메일에 실명이 등장하는 한 우체국 공무원은 이같은 지시가 우정사업본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런 문서를) 어떻게 개별 우체국 차원에서 만들겠느냐"면서 "우리는 (경인지방) 우정청의 지시를 받은 것이고 청은 본부에서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 측 관계자는 "택배 기사들의 채용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그는 "위탁배달 기사가 업무 수행 도중에 범법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바꿔달라고 할 수 있지만 외주 업체가 누구든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제 목소리 내는 택배 기사들...우체국 요구에 계약해지"

내부 이메일의 내용을 접한 택배 기사들은 반발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취업을 막을 정도라면 우정사업본부 지시로 중간 업체에 압력을 넣어 계약 해지를 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진경호 우체국택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실제로 일선 우체국에서는 제 목소리를 내는 기사들에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 강북우체국에서는 택배기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도맡았던 서 아무개 기사가 우체국의 강력한 요구로 지난 7월 이유없이 계약해지 됐다"면서 "중간 업체가 서씨를 해고하면서 기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배달 수수료를 80원(한 달 기준 20만 원 이상) 올려주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진 위원장은 자신이 일하는 충남 동천안 우체국에서는 "위탁기사 전원이 해고(계약해지) 될 뻔 했다"고 털어놨다. 택배 기사 비상대책위를 만드는 등 진 위원장이 도드라지는 행동을 보이자 동천안 우체국 국장과 물류과장, 집배실장 등이 위탁 계약업체에 소속 택배기사 전원을 계약해지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는 "기사들이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이다 보니 중간업체를 끼고 계약을 해지해버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서 무력감을 토로했다. 그는 "기사들이 보통 한 달에 비용 제외하고 170만 원 가져가는데 부당하게 계약해지가 되더라도 바로 다른 생업을 찾아야지 (복직에) 매달려있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태그:#우체국 택배, #우정사업본부, #블랙리스트, #택배, #위탁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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