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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질문 하나. 과연 이 음식은 무엇일까.

1) 이 음식은 인도에서 출발했다.
2) 이 음식은 18세기 이후 대영제국의 식민지인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확산됐다. 
3) 이 음식은 이주 노동자들에 의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농장에까지 뻗어 나갔다.
4)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이 음식을 한 번이라도 먹어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정도 소개만으로도 이 음식이 무엇인지 쉽게 답을 맞히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어서 묻겠다. 당신은 이 음식을 '커리(Curry)'라고 부르는가, 아니면 '카레'라고 부르는가. 또 커리와 카레 중 어느 표현이 바르다고 생각하는가?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커리의 지구사>(콜린 테일러 센 저/강경이 역/주영하 감수  | 2013년 04월)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커리의 지구사>(콜린 테일러 센 저/강경이 역/주영하 감수 | 2013년 04월)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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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질문들에 대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커리의 지구사>(A Global History of Curry : 지은이 콜린 테일러 센 / 옮긴이 강경이, 휴머니스트, 2013)다.

개인적으로 카레를 매우 좋아하기에 '커리의 지구사'란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커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전 세계 음식 중에 가장 대표적인 혼성 문화(hybrid culture)의 결과물이었다. 이른바 유럽 대륙과 인도 아대륙 간의 교류인 '콜럼버스 교환'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퍼졌고, 이제는 전 지구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인도에서 출발한 커리는 식민지제국이었던 영국에서 세계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심지어 커리라는 이름마저도 영국산이다.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오롯이 커리의 지구사를 이끌어온 것은 아니다. 사실 영국은 인도 사람들이 커리를 지구상에 퍼뜨리는 데 거쳐간 정거장이었다…(중략)… 최근에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한국인이 제법 많다. 힌두교와 불교의 나라 인도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도를 무척 사랑하는 한국인 중에는 '카레'라는 음식 이름을 두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커리'라고 불러야 옳다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아예 인도에는 카레도 커리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 책 '초대의 글' 중에서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에서 '카레와 커리 중 도대체 뭐가 맞는 표현이지?' 하고 알쏭달쏭해하는 분들이 많으실 게다. 나 역시 <커리의 지구사>란 책을 다 읽기 전까지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으니까. 인생의 3분 2 이상을 '카레'라고 쓰다가 수년 전부터 세계화(?)의 흐름에 맞춰 '커리'란 표현에 익숙해지는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커리'란 이름은 영국인이 작명한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입맛을 사로잡고 녀석의 이름은 '카레'에 힘이 더 실린다. 그래서, 커리의 역사를, 자세해도 너~무 자세하게 소개한 책 <커리의 지구사>에 빠져들었다. 자, 함께 커리의 세계로 나가 보자.

[커리에 대한 사실 1] 정의와 의미

"커리는 향신료를 넣은 고기, 생선 또는 채소로 만든 스튜로, 밥과 빵, 옥수수 가루를 비롯한 탄수화물 음식과 함께 먹는다. 향신료는 가루나 소스 형태로 만들어 쓰거나,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구입해 쓴다." - 책 본문 중에서

이 책을 감수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초대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정의대로라면 향신료가 들어간 모든 음식은 커리가 된다"면서 "이렇게 넓은 의미로 커리를 정의할 경우, 고추장과 마늘, 생강 따위가 소스 형태로 들어간 한국의 떡복이도 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매운 떡볶이를 두고 커리라 부르지는 않는다"고 의견을 전한다.

그러면서 "커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향신료를 쓰느냐가 중요하다"며 "커리 입과 강황, 그리고 후추는 커리를 커리답게 만드는 데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향신료"라고 소개한다. 이어 "여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건너온 고추가 커리를 더욱 맵게 만들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커리는 인도 음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콜럼버스 교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커리가 '혼성 문화의 결과물'이란 주장이 새로웠다. 그 근거로 커리를 이루는 향신료 가짓수만큼이나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커리'로 불리는 음식들을 떠올리면 제각각 고유한 형태로 재탄생한 것들이 많다. 커리가 이동한 전 세계 지역마다 특색 있는 문화로 표출됐다. 결국 커리든지 카레든지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맛으로 어떤 문화를 담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는지가 중요하다.

"커리는 처음부터 세계화의 산물이었다. 상인과 교역상, 선교사, 식민지 관리들과 그들의 아내, 계약 노동자와 이민자들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향신료를 비롯해 한때 이국적이라 여겨지던 식재료들이 일상적으로 슈퍼마켓에 진열되는 21세기에도 커리는 여전히 대표적인 전 지구적 음식이다." - 책 본문 중에서

이렇듯 대표적인 글로벌 음식 중 하나로 커리를 뽑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와 탈바꿈을 거듭하는 음식이 바로 커리다. 이때 문득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이 이렇게 유명해질 줄 알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은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커리에 대한 사실 2] 이름의 유래, 식민지의 발자취, 그리고 세계화

"'커리'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기발하고 때로는 포복절도할 설명이 많다. 아마 '커리'라는 단어는 남부 인도 언어에서 유래됐을 것이다. 남부 인도에서 카릴karil 혹은 카리kari는 채소와 고기를 기름에 볶은 매콤한 요리를 뜻한다. (중략) 영어에서 카릴은 커리curry가 되었다. 앵글로-인도인 영어를 수록한 19세기의 <홉슨-존슨 사전>은 커리를 "으깬 향신료와 강황을 많이 넣어 고기나 생선, 과일, 채소와 함께 요리한 것으로 밥 위에 조금 얹어 맛을 낸다"라고 정의했다. 전통적으로 인도인들은 '커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 책 본문 중에서 

탄생은 인도인에 의해 이뤄졌으나 세계화를 주도한 것은 영국인이었던 음식이 바로 커리다. 실제로 "2001년 영국 외무부는 치킨 마살라야말로 영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나타내는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주장했다"고 책에서 소개한다. 좋게 표현해 "커리에는 다양한 지방색과 종교, 사회계층과 신분이 음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는 하지만, 문화조차 약탈해간 영국인들의 제국주의 침략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실제로 19세기 말 커리는 영국의 중산층 음식에 깊이 침투했고, 영국에는 현재 8000곳이 넘는 식당과 커리 하우스, 주점 등에서 커리를 팔며, 가장 기본적인 테이크아웃 음식이 됐다고 책은 전한다. 특히 영국의 커리에 대해 '제국의 향수'라면서 "미식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을 꼽으라면 커리가 영국의 대표 음식이 된 일일 것"이라고 밝힌다.

또한 영국 노동계급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린 음식이 커리여서 '노동계급의 음식'이라고 지칭되기도 했다고. "커리가루와 커리는 경제적인 동시에 영양이 많다고 여겨졌을 뿐 아니라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상기시키는 음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란 내용에서, 커리는 단순한 음식으로만 보기 어렵다.

이처럼 커리는 영국을 기점으로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카리브 해의 트리니다드, 가이아나, 자메이카, 모리셔스, 스리랑카, 피지,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앙골라·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동남아시아의 미얀마·타이·라오스·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싱가포르·브루나이·동티모르·인도네시아 등 90여 개국에 인도 식당과 커리하우스가 있으며 이제는 커리를 먹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커리에 대한 사실 3] 왜 인기가 있는가

커리는 왜 이처럼 전 지구인에게 인기가 있는 것일까.

"선진국에서 커리는 사회-경제적 추세에 힘입어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그중 하나는 더 자극적이고 '더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이런 경향은 소비자들이 더 세련되고, 더 국제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중략) 인구 노령화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베이비 부머들은 나이가 들면서 시력과 청력뿐 아니라 후각과 미각도 퇴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노령화 인구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더 강한 맛이 필요하다. 음식 전문가들은 맵고, 자극적이며, 대담한 맛을 선호하는 추세를 21세기 주요 소비자 동향 중 하나로 꼽는다." - 책 본문 중에서

이 책의 저자인 콜린 테일러 센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폴란드어 문학을 연구한 슬라브어 전문가이자 언론인이다. <시카고 트리뷴>과 <푸드아트> 등의 잡지에 글을 쓰는 등 음식 전문기자라 할 수 있는 그의 이 같은 설명만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세련되고 국제적이 된 사람들이 '더 자극적'인 맛을 원하기에 커리가 인기가 있다면, 다른 강한 맛을 지닌 음식들이 있지 않겠는가! 책에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이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커리의 인기 상승에 한몫했다. 수천 년간 인도와 중국, 인도네시아 의학에서 커리는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다. 오늘날 저명한 의학연구소들이 발표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오래된 지혜가 의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밝혀지고 있다." 

결국 커리 가루의 주성분인 강황이 질병 예방과 치료에 가장 효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 한몫하는 것일까. "강황은 소화불량이나 입술에 작은 물집이 생기는 구순포진부터 당뇨, 암, 다발성 경화증, 관절염, 심장질환, 알츠하이머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만성질환을 완화하거나 심지어 치료까지 할 수 있다"고까지 소개하는데, 이 어찌 커리를 안 먹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연구결과는 근래와 와서 밝혀진 것이지,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이를 알고 먹은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순하게 '환상적이고 독특한 맛'을 지녔기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한편, 책의 마지막에는 전 세계적으로 대표할 만한 커리 레시피(다양한 커리 요리법)이 소개돼 있다. 예로 약 1600년 경에 기록된 '악바르 대제의 궁정에서 먹던 도피아자의 재료'부터 시작해 '오우드 왕실의 커리', '와이번의 치킨 커리',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커리', '비턴 부인의 양고기 커리', '엘리자 액튼의 뱅골 커리' 등 1800년대부터 만들어 먹던 커리 레시피들이 있다. 물론 모던 레시피(최근 요리법)도 소개돼 있다. 요리에 재능 있는 분이라면 '트리니다식 염소 고기 커리', ' 렌당 다깅', '말레이시아 노냐 스타일 치킨 커리', '가이아나 치킨 커리', '프리카델', '타이 무사만 쇠고기 커리', '타이 통조림 생선 커리'를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으리라.

<커리의 지구사>는 커리(또는 카레)를 좋아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커리의 역사와 문화 등 미래가 어떠할지 궁금하다면 커리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이 책을 손에 넣기를 권한다.



커리의 지구사

콜린 테일러 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 휴머니스트(2013)


태그:#커리의 지구사, #커리, #카레,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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