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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고문은 신문사에서 30여 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퇴직 언론인 이성두(가명)씨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정조사를 보며 느낀 점을 적어서 보내온 것이다. 이씨는 현재 한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다. [편집자말]
민주당 박영선 박범계 신경민 위원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의사진행발언을 방해하는 새누리당 위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박영선 박범계 신경민 위원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의사진행발언을 방해하는 새누리당 위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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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에 관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는 21일 증인 불출석과 새누리당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번 청문회는 새누리의 방해전술과 국민 무시, 군림과 억지, 민주당의 무력과 함량 미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무대였다. 이중 민주당의 책임이 더 크다. 새누리야 본래 성분(?)이 그러니까 이를 교정하는 작업은 야당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야당, 즉 민주당은 없었다. 무기력 무능력의 몰골이라서 야당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하다. 이러니 새누리당이 활개치고 물타기에 비틀기, 거짓말, 조롱과 야유까지 휘두르고 있는 것 아닌가. 강한 야당이 좋은 여당을 만들고, 변화하는 여당을 만들고, 자숙과 자성의 여당을 만든다. 하지만 지금 여당이 좋은 여당이 될 생각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무력하고 무능한 야당을 옆구리에 끼고 있으니 무슨 그런 생각까지 하겠는가. 한마디로 오만과 군림과 광기를 부려도 괜찮은 것이다.

의혹은 전혀 밝혀지지 않고 화만 나는 청문회로 끝났다. 가림막 뒤에 숨어서 이미 밝혀진 사실을 냉소하고 희화화하는 연극만 하고 나왔다. 검찰 수사결과를 더 파헤치는 것이 국정조사와 청문회의 목적인데 새누리당의 궤변을 들어주는 자리로 끝났다. 국민이 모욕당한 느낌이다. 민주당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짜증이 여름날의 무더위보다 더 무겁게 사람들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전략도 전의도 없는 야당

과거 야당으로 돌아가보자. 김영삼, 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는 그 엄혹한 유신시대, 국민의 억눌린 숨통에 산소를 제공하려 맨 주먹으로 나섰고,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려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다. 때로 비수와 같은 레토릭과 투옥을 마다하지 않는 행동으로 국민의 분노를 대신해 주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당면한 민주주의를 해결해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해결해 주지 못했다고 해서 국민이 실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투쟁의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국민 분노에 대한 응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어떤가. 전략도 전술도 없다. 공격수다운 공격수도 없다. 이번 국정조사는 국정원-경찰-새누리당 사이의 커넥션을 밝히라는 국민의 요구를 민주당은 철저히 들러리만 서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무엇 하나 내놓을 만한 전략도 전의도 없었다. 그러니 수확물이 있을 리 없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나온 국조 청문회에서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고 탈북자 출신 새누리당 의원이 생뚱맞게 물었을 때 진중권 교수가 "당신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냐 평양 국회의원이냐"고 물었다. 민주당 국조위원 중에는 이렇게 대응하는 위원이 없었다.

가림막 안에서 모범답안을 보며 답변하는 국정원 김하영씨와 국정원 3차장에 대해서도 이의 제기하는 위원이 없었다. "전라디언은 죽여야"라는 댓글이 대북 첩보활동이란 점에 대해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국가를 위해 댓글을 달았다면 그것을 삭제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대대적으로 삭제를 한 것을 두고 범죄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니냐고 따지는 치밀함과 공격성도 없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심문에 응하고 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심문에 응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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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새누리당 의원이 권은희 수사과장에게 "14명의 다른 경찰관은 모두 권 수사과장의 의견과 다른데 권 수사과장이 사물을 잘못 보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도 "진실과 정의를 숫자로 판별하느냐. 다수결로 결정하느냐"(표창원 박사 지적)고 응수하는 민주당 의원은 없었다.

돋보인 사람은 단연 권은희 과장이었다. 권 과장은 작년 12월 16일 경찰의 수사발표에 대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부정한 목적이었다"고 밝혔고, 경찰의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적 없다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언에 대해서는 "거짓말"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번 청문회는 권은희 과장의 정의감과 양심을 확인한 것이 전부이다시피 했다.

새누리당의 통치 프레임

민주당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새누리를 청문회에 끌고 오기 위해 진행표에 충실한다는 변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따위 거짓말 경진대회에 행사진행표를 내팽개친들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런 국조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새누리당의 시간 끌기, 물타기, 방해공작, 생뚱맞은 여름휴가 사보타지 등에 대응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야당이 야당일 수 있는가. 군사정부시절 야당 선배들의 투혼의 족적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한편 새누리당의 주장을 보면 참 희한하게도 서로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그들이 그토록 비방하고 혐오하는 북한과 너무 흡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든 권력을 만들고 향유하겠다는 어거지, 가진 자만 잘 먹고 잘살기, 대를 이어 권력 이어받기를 위해 무리수나 자충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행하는 등등 북한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우리가 알다시피 새누리당의 통치 프레임은 지역분열과 지역패권주의, 남북대결, 종북 좌빨 타령을 기본 메뉴로 한 냉전 이데올로기 증식 아닌가. 다분히 이기적 감정적 지배논리로 오늘 여기까지 왔다. 한마디로 극우의 모습이다.

그들이 그게 좋아서 선택한 통치 프레임은 아닐 것이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즐겨 사용하는 지배술이다. 여기에 이익을 함께 하는 수구보수 매체가 성실히 나팔수 역할을 해준다. 해방 이후 70년 세월 동안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고 지역을 분열시키면서 반대파를 적으로 몰아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마술을 부려왔다. 단순반복적인 이런 통치논리로도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을 수 있다. 그것이 또 너무나 손쉽게 통용되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오만과 광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사건이 바로 그런 상징적 사건이 되고 있으며, 그래서 더 이상 제대로 숨쉬고 사는 이성적 민주사회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 단초나마 마련하기 위해 국정원 개혁을 위한 촛불을 들고 있는 것 아닌가.  

야당이 해야 할 네 가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정의와 진실의 칼은 간단명료하다.

첫째는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야당세라면 모든 세력이 결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구누구 가릴 것이 없다. 야당은 인물난이 문제라고 하지만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참여하고 독려하는 리더십이 부족해 인물을 모으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 이들이 모여 하나씩 훈수를 두면 여당이 이처럼 무참하게 야당을 유린하진 못할 것이다. 편을 가르는 것은 집권세력과 수구보수언론이다. 그들의 이간질과 음해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둘째 건강한 투쟁력이다. 야당은 말 그대로 들판의 패거리다. 풍찬노숙이 기본이다. 새누리가 한때 야당을 하면서 영등포 포장마차 시대를 가보(家寶)인 양 자랑해 왔다. 본래 야당이었던 민주당이야말로 눈보라 휘몰아치는 광야가 진정한 자기 자리 아니던가. 뱃살에 낀 기름기도 빼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언제 따뜻한 밥먹고 살았던가를 생각해보라. 명분과 명예를 먹고 살아온 자부심 있는 민주세력 아닌가.

셋째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이다. 이번 국조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이것이었다. 공부하지 않는 야당, 연구하지 않는 야당은 존재 가치가 없다. 전략과 전술이 눈에 안보이고, 역할 분담과 팀워크도 신통찮았다.

마지막으로 야당지도자들의 조력과 대변인단의 보강이다. 야당에게 정책정당이란 말은 호사스럽다. 사실은 말로 장사하는 패거리다. 말싸움에 능한 사람을 전진 배치시켜야 한다. 우선 레토릭으로 국민적 불만과 억울함을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이번 야당이 보이지 않는 것은 내로라 하는 야당지도자들의 참여의 빈곤과 대변인단의 지원사격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야당 지도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더라도 이런 낭패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 대안은 차후의 문제다.


태그:#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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