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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비또요>(戀人). 뜻도 모르고 노래 전편의 곡조에 먼저 매료되었던 노래였다. 그리고 곡조만큼이나 가수의 목소리에 온 마음을 내준 노래이기도 했다.

일본어엔 문외한이라 들리는 발음 그대로 기억했다가 뒤에서야 '고이비또요'라는 제목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연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느낌은 적중한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결코 탁월한 음색을 가졌다거나 성량의 특출함이 보이지 않는 이쓰와 마유미의 목소리. 누구든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한 소절 한 소절 정직하게 또박또박 부르는 그녀의 노래는 이상하게 듣는 순간부터 가슴에 새긴 것처럼 내 안에서 나가질 않았다.

소소한 제스처 하나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정적이고 지극히 평이하며 소박하다 못해 덤덤하기까지 한 그녀의 노래,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오랜 울음을 그친 후의 적요함과 마주 서 있는 한 사람을 보았다. 광기의 열정보다 진한 정의 두께를 보았다. 포효하 듯 외치는 구애의 웅변보다 거르고 걸러내 고른 숨소리를 갖게 된, 미세한 머리카락 한 올의 흩날림도 탄식 없이 거둬낼 수 있는,  이제는 조용해진 한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은 쏟아낸 눈물만큼 가슴이 휑하게 비어 깨끗하게 단장되었고, 오래 젖어 있던 두 눈은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을 만큼 맑았으며, 푹 절인 채 매 시간 익사를 꿈꾸었던 어지럽던 머리는 추억이라는 새로운 간판으로 단장한 채 맑은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오랜 연인 자리는 그럴 것이다.

혈연이나 법적으로 묶인 일 없이도 사람이 내어주는 자리 중에, 또 사람에게 내어놓을 자리 중에, 가장 사람을 사람이게 하고 희노애락의 곡선을 원형으로 이끌어 합일의 충만함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십 년을 이십 년을 보지 않고 살아도 상대의 생일이면 묵주기도 120단의 영적선물을 바칠 수 있는 사람, 일 년에 한 번 많이 그립다는 짧은 문자 한 번으로도 지난 일 년이 귀하게 들어올려지게 하는 사람, 예수와 마리아 앞에서도 상대의 안녕을 비는 묵주기도가 진정한 선물이게 떳떳할 수 있는 사람, 생일이면 다시 일 년을 살게 하고 또 살아가는 사람, 일상에 속하지도 속할 수도 없지만 살아가는 세월 내내 파수꾼처럼 시간을 지켜주고 자리를 지켜주며 그래서 온전하게 각자의 의무를 다하게 하는 사람.

서로의 세월 옆에 서 있는 사람...

그렇다면 그들은 연인이다. 그렇게 불러도 좋다.

살갗이 타고 머리끝이 일어서는 몰입과, 내일을 잊은 짐승 같은 소유욕, 미친 맥박의 곤두박질, 24시간 날뛰는 환청과 환시,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들어찬 호흡불능의 가슴만이 사랑은 아니다. 또 그런 관계만이 애인이요, 연인은 아니다.

연인은, 상대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늙어가며 어떻게 세상을 떠날 것인가 염려하고 그때까지의 시간을 지켜주는 사람. 일상적인 '함께'라는 틀을 벗고도 '자유롭게' 시간과 삶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진정한 연인이 된다. 그 누군가도 나의 연인이라 부를 수 있다. 이쓰와 마유미는 노래한다.

낙엽이 지는 저녁 무렵은
닥쳐올 추위를 말해주네요
비바람에 부서진 낡은 벤치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노래도 없네요
연인이여 내 곁에 있어줘요
떨고 있는 내 곁에 있어줘요
그리고 한 마디만 해줘요
작별의 말들은 농담이었던 거라며 웃어줘요
자갈길을 뛰어서 마라톤 선수가 뛰어갑니다
완전히 망각을 바라는듯
멈춰 있는 나를 부르고 있네요...
              - 이쓰와 마유미 <고이비또요(戀人)>

"자갈길"을 "마라톤 선수"를 닮은 세월이 "완전"한 "망각"을 바라는듯 "뛰어"서 지나가지만, "멈춰 있는 나를 부르"는 사람, 당신의 연인은 그런 사람이다.

일 년에 한 번 하루 종일 듣게 되는 노래, <연인>을 들은 하루가 저문다.


태그:#이쓰와 마유미, #고이비또요, #연인, #생일, #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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