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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식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
 신대식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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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든 찻집에서든 그를 만날 때마다 마주치는 '물건'이 하나 있다. 낡고 낡은 서류가방이다. 가죽의 결들은 다 일어났고, 어떤 부분은 검정색 가죽이 하얗게 변했을 정도로 닳고 닳은 가방이었다. 그 가방을 볼 때마다 기자는 '얼마나 오래된 가방일까?'라고 궁금해하곤 했다.

그 낡은 가방은 언제나 빵빵했다. 각종 소송자료들을 빼곡하게 넣고 다닌 탓이다. 그런데 지난 7월 26일 그 낡은 가방이 드디어 소송자료에서 해방됐다.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전 대표가 제기한 13억 원의 민사소송(손해배상)에서 원고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그의 승소가 최종 확정됐기 때문이다. 약 3년의 소송전 끝에 얻어낸 화룡점정이었다.

32년 은행원 생활 끝내고 대우조선해양 들어갔다가 '해고'   

신대식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 경남 통영 출신인 그는 유신 체제였던 지난 1974년 부산대를 졸업하고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에 입사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5·16 장학생'이었다. 반면 그의 동생 재식씨는 부산대 운동권으로 지난 79년 유신체제를 뒤흔들었던 부마항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신 전 실장은 도쿄지점장을 거쳐 임원급인 리스크관리본부장을 끝으로 지난 2006년 5월 한국산업은행에서 퇴직했다. 그리고 같은 달 대우조선해양의 감사실장에 발탁됐다. 대우조선해양은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사실상 공기업인 회사였다. 32년의 긴 은행생활을 마치고 기업 내부감시자인 감사실장으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시기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건'이 터졌다. 대우조선해양은 감사업무 수행으로 취득한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고, 회사경영에 부정적 시각을 견지했으며, 근거없이 경영진을 비방했다는 등의 이유로 신 전 실장을 2008년 10월 징계해고했다.

하지만 신 전 실장은 "나를 무리하게 징계해고한 것은 여권 인사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의 L행정관이 민유성 한국산업은행총재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3명을 보낼 테니 현재 근무중인 외부 영입인사 3명을 빠른 시일 안에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청와대의 외압에 의해 자신이 징계해고됐다는 주장이다.

신 전 실장의 주장대로 지난 2008년 10월 1일 정하걸 재경포항향우회 사무총장, 오동섭 전 이재오 특임장관 특보, 함영태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 등 여권 인사 3명이 대우조선해양의 상근고문으로 들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등에서 보은인사를 벌여온 관행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들의 연봉은 1인당 1억8000만 원에 이르렀다.

청와대 외압 의혹 제기하자 13억 손해배상 등 '소송폭탄'

신 전 실장은 지난 2010년 7월 <프레시안>과 <민중의 소리>, <내일신문> 등과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 외압에 의한 징계해고'를 거듭 주장했다.  이어 같은 해 8월 23일 열린 이재오 특임장관 인사청문회에도 증인으로 나와서 같은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때부터 대우조선해양 및 남상태(현 상임고문) 전 대표의 소송전이 시작됐다. 먼저 신 전 실장이 언론들과 한 인터뷰 내용을 문제삼아 지난 2010년 9월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으로 형사고소했다. 이어 같은 해 10월 13억 원(대우조선해양 10억 원, 남상태 전 대표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냈다. 신 전 실장은 "언론 인터뷰에 이어 청문회에서까지 공개적으로 청와대 외압 의혹을 주장하니까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9월과 10월에 연달아 민·형사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형사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약 7개월간 수사를 벌인 뒤 '청와대 외압 의혹'만 불구속기소했다. 공교롭게도 수사검사는 남상태 대표의 경동고 후배로 알려졌다. 다만 고소장에 포함된 ①임천공업, 건화기업과의 부당거래 의혹 ②남상태 대표의 비자금 조성과 연임 로비 의혹 ③부당징계해고 ④감사실 폐지와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 등은 불기소했다.

하지만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과 항소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제9형사부)는 잇달아 신 전 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2년 10월과 12월). 그리고 검사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결국 지난 1월 4일자로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서 불기소한 혐의들(앞서 열거한 ①-④)을 서울고검에 항고했다(2011년 6월). '항고'란 검찰이 내린 결정에 불복해 상급청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서울고검은 이들이 항고한 지 17개월 만에 항고를 기각했다(2012년 11월).

또한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대표는 13억 원 민사소송에서도 완패했다. 서울중앙지법 제25민사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2012년 11월),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도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2013년 7월). 그리고 원고가 대법원의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지난 7월 26일 신 전 실장의 승소가 최종 확정됐다.

대우조선해양쪽이 작성한 합의서.
 대우조선해양쪽이 작성한 합의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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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쪽에서 '합의' 제안... 신대식 "항복문서여서 수용불가"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대표는 아주 집요하게 소송전을 끌어갔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010년 10월 13억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 또다른 민사소송(약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냈고, 업무상 배임으로 신 전 실장을 고소했다. 신 전 실장이 근무지를 이탈했고,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해 회사에 약 5000만 원의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99단독은 1심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했고(2012년 7월), 항소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제5민사부)도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2013년 5월).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고, 신 전 실장의 승소가 최종 확정됐다.

법인카드와 관련한 형사사건(고소)에서도 신 전 실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지난 2011년 11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이 항고했고, 서울고검은 재기수사명령을 내렸다. '재기수사명령'은 상급청이 항고사건 가운데 수사가 미진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더 수사하라고 지휘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재기수사에 나선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다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했다.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전 대표는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형사사건에서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혐의들을 항고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것도 기각했다. 신 전 실장은 이러한 항고 남발을 두고 "저를 집요하게 괴롭히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6월 재판부에 합의 조정을 건의하기도 했다. 회사쪽에서 작성한 합의서에는 신 전 실장이 언론을 통해 제기한 청와대 외압 의혹 등이 "사실과 달리 보도된 점을 인정"하고, 향후 국회, 수사기관, 언론 등에 "인터뷰, 제보, 자료제공, 고발, 진정" 등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신 전 실장은 이러한 합의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자백하고, 대우조선해양이나 남상태 대표와 관련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것이다"라며 "이는 사실상 항복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어서 수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매출 12조 회사 상대로 민·형사소송 등에서 '5전 5승'

신대식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
 신대식 전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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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전 대표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를 동원해 소송전에 나섰다. 신 전 실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소송과 고소사건은 안종택 변호사가 맡았다. 그는 대검 중수2·3과장과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춘천지검장, 서울북부지검장을 지내다 지난 2008년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특히 안종택 변호사와 문규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은 부산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 동창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소송전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문규상 부사장은 창원지검과 부산지검 특수부장,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 안산지청장을 지냈다.

이와 별도로 신 전 실장이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등 지급 소송은 울산지법원장과 대전지법원장, 서울북부지법원장을 지낸 김경종 변호사가 맡았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10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직후 전관예우로서 소송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 2011년 4월 항소심 재판부는 "신 전 실장을 징계해고한 사유는 무효로 판단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도 같은 해 10월 이러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관련기사 : '청와대 외압' 제기 전 대우조선 감사실장 '해고무효' 확정).
  
결국 신 전 실장은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대표가 낸 3건의 민·형사소송과 2건의 고소사건(재기수사를 명령받은 사건 포함)에서 모두 승소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매출 12조여 원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과 남상태 전 대표의 집요한 소송 폭탄을 이겨내고 '5전 5승'을 거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전관예우 변호사까지 동원해 소송전에 나섰지만 일관된 진실 앞에서는 그것도 역부족이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겁박하는 소송 제기... 법을 빙자한 폭력행위"

신대식 전 실장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받고 법정에서 재판받은 날만 해도 70일이 넘고, 각종 소송에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어갔다"며 "시도 때도 없이 검찰과 법원에서 조사나 법원 출석 등을 이유로 보낸 특별송달 우편물이 도착했을 때 제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신 전 실장은 "주변에서는 '자금과 조직이 있는 대기업과 싸우는 것은 힘드니까 적당한 선에서 끝내라'고 조언했다"며 "하지만 제가 비위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고,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던 것도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적당하게 타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전 실장은 "저는 강제로 퇴직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는 가해자에 해당한다"며 "그런데도 적반하장격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겁박하는 소송을 수 건이나 제기한 것은 법이라는 이름을 빙자한 폭력행위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신 전 실장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실상의 공기업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불의와 비상식적인 처사가 벌어지고, 가해자의 적반하장이 활개칠 수 있는지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남상태 전 대표가 자신을 둘러싼 비리 의혹들이 집중적으로 나와 곤경에 처하자 자신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 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신 전 실장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회적 강자의 불의와 대기업의 폭력에 항거한 사람은 쫓겨나 거리에 나앉았고, 그러한 불법행위를 저지른 남상태 전 대표는 고문으로 회사에 남아 수억 원의 보수를 받고 있다"며 "대주주로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한국산업은행이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신대식,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청와대 외압 징계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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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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