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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는 모티프원의 리프레쉬 작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휴일은 맞은 아내가 도왔고, 서울의 둘째딸 주리도 합류해서 순조로울 수 있었습니다.  

딸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손님을 맞다보니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고 아내와 저는 아직 점심 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늦은 점심, 이른 저녁을 겸해서 우리 부부는 외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둘 만의 집 밖 식사는 몇 개월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그간의 긴 장맛비에도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피었고, 벼가 몸집을 키우는 초록빛 들판 끝, 메숲진 장릉의 소나무능선이 너그럽습니다.

긴 장마와 폭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긴 장마와 폭염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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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현리의 논과 장릉의 소나무숲
 갈현리의 논과 장릉의 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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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먹을 양을 시켰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적지 않은 양이었습니다. 남은 볶음밥 몇 숟가락은 싸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내일 제가 먹을 속셈으로…. 아내가 그 밥을 끓어서 싸다가 말했습니다. 

"당신 옛날 기억나세요? 우리 두 사람이 삼겹살 1인분을 시켜서 함께 먹던…."

배불리 먹고도 남은 볶음밥이 28년 전,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삼겹살 1인분으로 둘이 나누어먹던 젊은 날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배불리 먹고도 남은 볶음밥이 28년 전, 주인의 눈치를 보면서 삼겹살 1인분으로 둘이 나누어먹던 젊은 날을 기억나게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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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아내가 문뜩 떠올린 그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났습니다. 80년대 중반, 아내는 일을 하고 저는 공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내는 공부하고 있는 저의 기력을 위해서는 한 번쯤 고기를 먹어야한다고 생각했고, 아내가 앞장서서 흑석동 산동네 아래의 고깃집으로 갔습니다.  

고깃집으로 들어갈 때의 용맹스러웠던 모습과는 달리 메뉴판 앞의 아내는 주눅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주머니 속의 돈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제적 사정으로는 메뉴판 가격의 2인 분 고기를 냉큼 시킬 형편이 아님을 안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집 메뉴판에 표기된 것 중에서 제일 싼 가격이었었던 삼겹살 1인분을 시켰습니다. 하지만 타박하지 않고 불판을 얻어주시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주인 할아버지의 너그러운 표정에 용기를 얻어 물김치 두어 접시를 더 달래서 먹었었지요. 배를 꽉 채우고도 남아서 밥을 싸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다시 들추어진 28년 전 그 고깃집의 기억에 중첩되어 새삼스럽습니다.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 갈현3리 정자나무 아래의 평상에서 두 할머니께서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날의 더위를 시키고 계십니다. 머지않아 기억 속에나 남을 풍경입니다.

느티나무가 정자나무 역할을 하고 있는 갈현3리. 이 마을의 끝에는 대형고깃집이 성업 중입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 풍경을 유지하고 있을지….
 느티나무가 정자나무 역할을 하고 있는 갈현3리. 이 마을의 끝에는 대형고깃집이 성업 중입니다. 과연 언제까지 이 풍경을 유지하고 있을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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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長陵)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는 장릉(長陵)은 조선 제16대왕 인조와 그의 비(妃)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韓氏)의 능으로 강원도 영월군 영월면 영흥4리에 있는 조선 제6대왕 단종의 능인 ' 장릉(莊陵)'과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에 있는 조선 제16대왕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仁獻王后具氏)의 능인 '장릉(章陵)'과 한자표기가 다릅니다. 갈현리의 장릉(長陵)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삼겹살, #장릉, #추억, #갈현리, #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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