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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기자가 취재원을 만나 인터뷰 한 뒤 취재원의 동의하에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편집자말]
태명이요? 그랬죠. 태명도 있었죠. '튼튼이'라 지었던 내 아기….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요. 저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는 서른여섯 살 주부 김선희(가명)라고 합니다.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지만,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15년이나 근무한 삼성전자에서 조장도 맡으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반도체 공장 생산직이라 늘 서 있어야 하고 교대 근무도 힘들었지만 그때까진 그래도 별 걱정 없이 행복했어요. 한 가지, 결혼한 지 6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안 생기는 것만 빼고 말이에요.

제 이름은 김선희(가명), 삼성전자에서만 만 15년을 꼬박 일했습니다.
 제 이름은 김선희(가명), 삼성전자에서만 만 15년을 꼬박 일했습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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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결혼식을 올린 뒤 곧바로 임신을 시도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동네 산부인과부터 대학병원까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반복했는데도 임신이 되질 않았어요. 나중에는 불임클리닉을 다니면서 인공수정도 6번, 하다하다 안 돼서 시험관 아기도 두 번인가 해봤는데 자꾸 실패만 하는 거예요. 나팔관에도 이상이 없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었어요. 그런 과정이 5~6년 지속되니까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더라고요.

저는 가족력이나 그런 것도 없거든요. 친정엄마만 해도 7남매를 낳으셨고, 언니 3명도 모두 2명씩 어려움 없이 출산했는데 왜 저만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사실 시험관 아기 하려면 난자도 채취하는 등 여자 몸이 많이 상하거든요? 그런데도 가족들 모르게 혼자 병원 찾아가서 치료 받고, 또 그 상태로 아픈 몸 이끌고 일하러 가고…. 회사에 인원이 적어서 저만 따로 쉴 수가 없었으니까요. 가족도 친구도, 아무한테도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혼자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6년 만에 만난 내 아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3월 7일인가? 마침 그 날이 휴무라 집에 있다가, 별 생각 없이 임신테스트를 해봤는데 결과가 '임신'으로 나오는 거예요. 왜 약국에서 파는 긴 막대기 같은 거 있잖아요? 거기에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져있는데…. 이게 진짜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어요. 믿기지도 않고 꿈만 같아서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남편한테 전화로 얘기했더니, 회사라 크게는 못 웃는데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이틀 후에 바로 근처 산부인과 가서 확인했더니 임신이라고, 축하한다면서 아이 초음파 사진도 줬어요. 남편이랑 같이 태명도 지었죠, '튼튼이'라고. 튼튼하고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진단받고는 바로 연차휴가를 썼어요. 6년을 기다려 겨우 만나게 된 내 첫 아이, 하루하루가 날아갈 것 같은 시간이었죠.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받을 때마다 날짜를 적어 책에 붙여놨어요. 그렇게 한 20일인가 지났는데, 병원에서 갑자기 이상하다면서 아기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는 거예요. 임신 10주차 정도일 땐데 아이집도 잘 안 보인다고 하대요? 아이한테 이상이 있을 확률이 80%가 넘는다기에 겁이 확 나서, 여성전문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아봤어요.

거기서 '악성 포상기태'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 말로는 포상기태라는 게 태반의 영양세포가 병적으로 커지면서 포도송이처럼 자라는 거래요. 그러면서 포상기태의 태아는 자라는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5일 전까지만 해도 초음파사진에 동그랗게 보이던 아기집 형태가 찌그러져 나오더라고요.

왼쪽 사진에서는 아기집의 형태였는데 오른쪽 사진에서는 형태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며칠 사이에 그만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했어요.
 왼쪽 사진에서는 아기집의 형태였는데 오른쪽 사진에서는 형태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며칠 사이에 그만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했어요.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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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돌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무 생각도 안 나지, 병원에서는 위급하다고 바로 수술해야 된다고 그러지…. 거기다 더 청천벽력인건, 이게 '침습성 포상기태'라서 융모성 암으로 진행되는 중이라고 하대요. 병 자체도 희귀암인데다 암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다섯 명 중 한 명뿐이라는데, 그 한 명에 제가 들어갔다나 봐요.

임신 진단 3주 후 중절 수술에 항암 치료... '왜 하필 나일까'

생명이 위급하다는 데 어쩌겠어요. 진단 받은 다음날, 3월 30일에 바로 임신 중절 수술을 했어요. 유산 휴가 5일에 일반 휴가까지 다 끌어다 쓰면서 상황을 봤는데 떨어져야 할 호르몬 수치가 올라간다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했어요. '융모상피암'이라는 게 굉장히 활동적이고 전이가 빨라서, 먼저는 폐로 전이돼 각혈이 일어날 수 있고 다음으로는 뇌로 전이돼 뇌졸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대요. 대학병원으로 옮겼는데 바로 C코드, 그러니까 암에 걸린 사람한테 주는 코드를 발급하더라고요. 아마 그 때 치료를 못하거나 늦어졌으면 죽을 수도 있었겠죠.

항암 치료도 원래는 네 차례 정도만 하면 낫는다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내성이 생긴 건지 더 이상 치료효과가 없는 거예요. 더 독한 약으로 바꿔서 치료를 다시 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눈물만 나요. 항암치료를 하면 사람이 맥을 못 추거든요. 약 성분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서 아무것도 못 먹어요. 병원 복도에서 밥 차가 저 멀리서 오기만 해도 토하러 뛰쳐나가요. 그래도 치료를 하려면 먹어야 하니까 코를 막고 밥을 먹는데 바로 토하고, 힘이 없어 하루 종일 쓰러져있고.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어요. 정말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고 너무 힘들더라고요.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을 당시 제 모습입니다. 그래도 의지를 굳게 가지려고 노력했었지요.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을 당시 제 모습입니다. 그래도 의지를 굳게 가지려고 노력했었지요.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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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관련 암이 다른 암보다 전이도 빠른데, 치료로 안 되면 나중에는 아예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더라고요. 그러면 아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거잖아요. 다른 병원 같은 경우는 비슷한 상황에서 자궁 적출 수술을 많이들 한다고 담당 의사가 고민하더고요. 자궁 적출 수술을 권유하는 선생님께 매달렸어요. "선생님 저 항암치료 한 번만 더 해주면 안돼요?"하고. 저 몸 괜찮다고, 한 번만 더 해달라고 울고불고 했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길었던 머리도 다 빠졌던 거예요.

작년 4월부터 11월까지, 내리 8개월 동안 병원을 다니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 집은 암에 걸린 사람도, 유산한 사람도 없는데 왜 나만 이럴까? 왜 암에 걸렸을까? 곰곰이 고민을 해봤는데 걸리는 게, 회사 동료들 중에 불임이나 유산, 생리불순인 사람이 많았거든요. 시험관 아기도 저보다 먼저 해본 동료들로부터 추천 받아서 병원에 간 거였고요.

불임 판정이나 유산을 한 동료들 이름을 쭉 적어봤더니 약 60~70명 일하는 저희 공정에서만 10명 정도가 있었어요. 평소에도 우리끼리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많아서일 거라고 얘기는 했는데, 저희야 뭐 전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식은 없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저도 일하면서 탈모에 두통에, 갑상선 질환도 걸렸었어요.

삼성 반도체 공장에 안 다녔어도 이렇게 됐을까

제 근무지는 삼성전자 반도체 EDS 공정이었는데, 여기는 '테스트 공정'이라고 해서 웨이퍼 위의 칩이 고온에서 잘 견디는지 어떤지 등을 시험해보는 과정이에요. 웨이퍼가 담긴 박스를 직접 여는데 그때마다 시큼한 냄새가 났고, 어떨 땐 타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작업 자체를 멈춘 적도 있었어요. 장갑을 끼고 일하는데도 뜨거워 손을 덴 적도 여러 번이었고요. 나중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이종란 노무사님 설명을 들어보니까 고온 공정에서 테스트 할 때 발암물질이 발생할 수 있대요. 저는 원래 그런 줄 알았지, 불임이나 유산과 연결시킬 생각은 못해봤어요.

반도체 교육은 일하는 공정마다 다르게 받아야 합니다. 교육을 다시 받을 시기에 찍은 사진입니다.
 반도체 교육은 일하는 공정마다 다르게 받아야 합니다. 교육을 다시 받을 시기에 찍은 사진입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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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초에야 항암치료가 끝났고, 지금은 계속 병원에 다니면서 추적치료 하고 있어요. 그동안 든 비용이 한 1700만 원인가 그래요. 혹시나 제가 매달 냈던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회사에 물어봤더니, "당신이 퇴사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하더라고요. 2007년인가에는 입원 때문에 휴가를 써야 하는데 인원이 없다고 해서 휴가를 못 쓴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인사과에서는 제가 병가(질병 휴가)를 안 썼기 때문에 규정에 위반이 된다면서, 질병으로 인한 퇴사도 인정해 줄 수가 없대요.

반도체 공장을 안 다녔어도 내가 이렇게 됐을까,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요. 아직 회사 때문에 그런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너무 억울한 거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이 다 망가졌는데…. 병원에서는 내년 2월까지 임신도 하면 안 된대요. 그 전에 임신하면 또 잘못될 가능성이 높고, 그 후에도 또 암이 재발할 수 있다니까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정말 잘 돼서 임신이 된다고 하더라도, 출산할 때까지 아이가 건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튼튼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도 그 얘기만 하려면 눈물이 나요.
 '튼튼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도 그 얘기만 하려면 눈물이 나요.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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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997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삼성전자에 뽑혔어요. 그때부터 기흥공장, 화성사업장에서 15년간 일하면서 회사에 정말 순종적으로 살았거든요. 최대한 회사에 폐 안 끼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런데 이렇게 일이 생기니까 막상 회사는 모른 체하더라고요. 회사를 1, 2년 다닌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던 사원한테…. '그런 것도 전혀 알아주지 않는 회사에 내가 다녔구나, 나만 미련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회사는 여사원을 너무 일하는 기계로만 보는 것 같은 거예요. 원망스러웠어요.

삼성전자에 다닐 때는 제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 계속 거기서 일했고, 기숙사에 지내면서 그 안에만 있다 보니까 이런 사실들을 너무 몰랐어요. 만약에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차라리 돈을 좀 적게 받아도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예요. 지금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제 후배들도 그럴 걸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똑똑하게 자기 건강도 좀 챙기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회사에서 눈치보고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건의도 하면서 지냈으면 하고요.

삼성전자에 입사하던 날 썼던 일기장이 아직도 있더라고요. 후배들은 저같이 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삼성전자에 입사하던 날 썼던 일기장이 아직도 있더라고요. 후배들은 저같이 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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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에는 반올림 단체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냈어요. 불임과 융모상피암, 갑상선 질환이 병명인데 불임으로 산재를 신청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래요. 반올림 관계자분은 저 말고도 생리불순이나 무월경, 무정자증 등으로 고통 받는 생식독성 피해자 제보가 많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저만 해도 회사에 다닐 때는 생리통도 무척 심하고 어쩔 땐 한 달 내내 생리를 한 적도 있었는데, 퇴사하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듣기로는 산업 재해를 인정해도, 실질적으로 회사에서 돈을 내는 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원이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삼성 측도 이제는 좀 관련 피해자들을 인정해줬으면 싶어요. 솔직히 이제는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다 알잖아요. 그러니까 산재 처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해주면 오히려 이미지가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산업재해 신청, 인정받기 힘든 건 알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요.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저는 끝까지 시도해볼 거예요. 그래서 우리 '튼튼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2013년 8월 현재까지 제보된 반도체·전자산업 직업병 피해자는 210여 명으로 사망한 80명 중 삼성 출신은 70명에 이른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노동자의 질병이 산재로 인정받은 경우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걸린 김지숙(37·여)씨와 고 김도은씨(유방암), 고 김진기씨(백혈병) 등 세 명뿐이다. 

반도체 작업환경과 난임·유산 등 생식독성과의 연관성을 묻자 삼성전자 관계자는 "따로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만 올해 3월부터 여직원들을 위한 난임휴직제를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답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공채6기 신입 기자들로 구성된 '독립편집국'에서 생산한 기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편집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편집국'은 오마이뉴스 모든 기자들이 뉴스게릴라본부(편집국)에서 독립해 1인 혹은 팀을 짜서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기획-취재-생산합니다.



태그:#삼성 반도체, #불임, #생식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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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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