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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지난 9일 낮 12시.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선동씨. 덥다고 말하는 건 사치인 듯 거기엔 공사가 한창이다. 더위의 한가운데서 더위를 잊은 채 그와 그들의 동료가 열심히 공사 중이다.

그는 어젯밤에 밤샘 공사를 했다고 했다. 현재 영업하는 가게 앞이라 낮 시간엔 공사를 할 수 없어서 이루어진 공사라 했다. 이렇게 밤샘 공사를 하고도 낮에 쉴 수가 없다. 왜? 삽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공사전체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는 매사 "허허"란 웃음으로 산다. 그의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 힘든 일을 해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듯. 무더위도, 밤샘 공사도 그의 미소 앞에는 무릎을 꿇은 듯 보인다.
▲ 한선동 사장의 미소 그는 매사 "허허"란 웃음으로 산다. 그의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이 힘든 일을 해도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드는 듯. 무더위도, 밤샘 공사도 그의 미소 앞에는 무릎을 꿇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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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밤샘 공사는 1년에 몇 차례 정도 있다고 했다. 이러고도 점심식사 후엔 자신의 5톤 트럭으로 경계석을 실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졸음운전이 걱정되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터뷰 약속이 벌써 몇 주 전부터 있었지만, 공사의 연속이라 겨우 만난 날도 점심시간을 약속으로 잡아야 했다. 막노동 현장에서 그의 삽차 운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인부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우리의 대화가 이루어진 게다. 그야말로 틈새 시간이라고나 할까.

그는 한 때 공무원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한때 공무원이었다. 면사무소에서 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했다. 왜 남들은 못 들어가서 안달인 공무원을 그만두었을까. 그런 이유는 끝까지 들어보면 될 듯하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중장비 다루는 회사에 취직했다. 거기서 페로다, 지게차, 삽차 등 중장비를 다루었다. 그의 타고난 손재주는 중장비의 대가로 등극하게 했다. 회사에선 그가 꼭 필요했다. 중장비는 모두 잘 다루니까.

그런 회사조차도 18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의 삽차 자영업자(10년 째)가 되려고 말이다. 삽차 덕분에 경기도 안성 부근은 거의 다녔다. 안성은 기본이고 평택, 진천, 성환, 여주, 장호원 등. 공사현장에서 부르면 전국 어디에나 갈 수 있지만, 삽차는 5톤 트럭에 실어 옮기기에 너무 멀리 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서라고 했다.

힘드신 거 없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허허, 만날 그래유"라고. 삽차 운전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없냐고 물었다. "허허. 만날 그래유"라고 했다. 짜증나는 일 없으시냐고 물었다. "허허 만날 그래유."

이 사람, 알고 보니 타고난 낙천주의자다. 지나간 모든 일을 "만날 그래유"라고 웃어넘긴다. 어제 밤샘 한 것도, 이어서 더운 낮에 일할 것도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훗날 "허허, 만날 그래유"라고 할 게 분명하다.

그는 이번 삽차가 세 번째 바꾼 거라고 했다. 일을 하다가 삽차가 잔고장이 나면 공사측에 미안하기에 잔고장 날 거 같으면 아예 교체를 한다고 했다. 10년 삽차 운전하면서 세번 삽차를 바꾼 이유라고 했다.
▲ 작업중 그는 이번 삽차가 세 번째 바꾼 거라고 했다. 일을 하다가 삽차가 잔고장이 나면 공사측에 미안하기에 잔고장 날 거 같으면 아예 교체를 한다고 했다. 10년 삽차 운전하면서 세번 삽차를 바꾼 이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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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 여행을 혼자 다녔다고?

일이 없는 날은 주로 등산, 고스톱하기, 술자리 등을 한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나도 그는 다투는 법이 없다고 했다. 웬만하면 "허허"하고 넘기니 싸울 일이 없다고 했다.

이런 그가 놀라운 이야기를 해줬다. 이렇게 고된 일을 하면서도 그는 틈만 나면 세계여행을 혼자 한다고 했다. 그동안 가본 나라는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동남아시아의 웬만한 나라는 모두 여행했다고 했다. 왜? 그냥 재밌고, 궁금하니까.

그는 여행을 갈 때도 계획을 세우고 가는 법이 없다고 했다. 한 번은 청주공항에 갈 일이 있어서 갔다가, 바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적도 있다고 했다. 그의 삶의 철학, 그건 바로 '무계획이 상팔자'라고 했다.

이런 그도 별명이 있다고 했다. 바로 '배짱이'. 베짱이를 패러디한 별명이다. 그의 배짱이 두둑하다고 친구들이 별명을 붙여준 거라고 했다. 세상에 대해 별로 겁이 없고, 자기 끌리는 대로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배짱이' 아저씨도 한 가정의 가장이었네

중장비 회사에 다닐 때도 30일 중 10일은 자기 맘대로 놀러가거나 땡땡이를 쳤다고 했다. 그래도 회사에선 그를 나무랄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 그건 바로 회사의 모든 중장비를 다루는 베테랑 기사였다. 그에 의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그에게 있다고 했다.

불경기라고 하는 요즘도 사방에서 그를 부른다고 했다. 일하러 오라고 말이다. 이유? 당연히 일을 성실하게 잘하니까. 그가 일하고 간 자리는 두말할 것도 없으니까 입소문이 난 게다.

이쯤하고 나니 그가 왜 공무원을 그만두고 중장비에 손을 댔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말했다. 사람은 다 자기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고. 바꿔 말해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고. 그의 자유스럽고 호방한 성격에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공무원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거다. 고된 노동의 세계에 살면서도 그는 자유영혼이었다.

그가 잠시 벗어 놓은 그의 신발이다. 흙투성이의 그의 신발은 그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열심으로 자녀를 키워내고 가정을 지켜냈다. 그의 특유의 자유스러움과 호방함도 가꾸어가면서 말이다.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를 혼자서 여행하고 다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 한선동 사장의 신발 그가 잠시 벗어 놓은 그의 신발이다. 흙투성이의 그의 신발은 그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열심으로 자녀를 키워내고 가정을 지켜냈다. 그의 특유의 자유스러움과 호방함도 가꾸어가면서 말이다.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를 혼자서 여행하고 다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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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에게 계획을 묻자 "굴러가는 대로 살규"라고 했다. 역시나 싶었다. 그래도 5년 뒤에 까지는 삽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 때가 그의 막내딸(현재 고2, 장녀는 현재 대2)이 대학 졸업하는 해라고 했다.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영혼도 자녀 앞에선 약해지는가 보다. 밤샘을 해도 끄떡없이 그 다음날 일하는 에너지원이 거기에 있었던 거다. 그도 대한민국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책임을 다 하면서도 자유롭게 사는 삽차 사장, 그는 멋있었다.


태그:#굴삭기, #한선동,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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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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