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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자 먹지 못하고 추운 자 입지 못하고 일해서 힘든 자 쉬지 못한다며 당시 하층민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그들을 대변하고, 특히 일하는 자들의 권리와 그들이 누려야 할 기초적인 생활 보장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 - <묵자> 11쪽

인권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활동가 이력을 소개하는 내용 같지만 2000년 전에 생존하였던 사상가, 묵자를 <묵자>의 저자 임건순이 '길잡이의 초대장'에서 소개하는 글의 일부입니다.

유행가를 따라 부르다 보면 마치 내 사연을 읊는 것 같은 노랫말에 시나브로 빠져들어 혼잣말처럼 흥얼거리는 걸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겁니다. 어느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다가 그런 감정에 몰입되는 걸 경험하기도 합니다. <묵자>를 읽는 내내 그런 느낌과 감정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2000년 후를 내다보고 쓴 글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거나 처한 현실을 너무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자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며 느끼는 가장 큰 애로는 고전을 충분히 소화시킬 만한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고전에 밑그림으로 들어가 있을 시대·역사·사회·문화·인물에 대한 배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너무 추상적거나 공허해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묵자>

<묵자>┃지은이 임건순┃펴낸곳 시대의 창┃2013.07.15┃2만 8000원
 <묵자>┃지은이 임건순┃펴낸곳 시대의 창┃2013.07.15┃2만 8000원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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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건순 지음, 시대의창이 펴낸 <묵자>가 갖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여느 책들과는 달리 묵자와 묵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사전(배경)설명이 아주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묵자는 이런 사람이었고, 묵자가 살던 시대는 이런 시대, 이런 문화였으며, 묵자가 주장한 사상들은 이런 내용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줘 이질감이나 별다른 괴리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됩니다. 

묵자는 철저히 전국 시대 사람이다. 통일 추구, 전쟁 반대, 그리고 씨족 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통치철학 제시, 구리고 보편적 맥락에서 인간에 대한 논의와 사유, 모두 바로 눈앞에 닥쳐온 전국 시대적 상황과 수요에서 그가 해낸 것들이라는 점. 전국 시대 사람 묵자. 잊으시면 안 됩니다. 전국 시대에 묵자의 가게가 그렇게 장가가 잘된 건 다 이유가 있다는. ㅎㅎ. 전국 시대가 가져온 변화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걸었던 사상가이자 운동가, 묵자! 자,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 <묵자> 93쪽

책 분량 절반에 가까운 배경 설명을 읽다보면 묵자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알 수 있음은 물론 공자와 맹자 등 춘추전국시대와 동양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이 주창한 사상과 묵가(묵자 사상)와의 관계까지도 충분히 알게 됩니다.

묵자는 2000년을 앞서가는 노동 운동가이자 반전 운동가, 시대적 활동가이자 좌파적 진보주의자입니다. 추상적이거나 뜬구름 같은 내용을 주장하던 관료적 선비가 아니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박애주의자이자 천민 사상가입니다. 묵가는 공자로 상징되는 유가, 손자로 대표되는 법가처럼 독단적으로 형성된 사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사상입니다.       

하나라 걸왕은 간신과 추치에게 물들었고, 은나라 주왕은 숭후와 악래에게 물들었고, 주나라 여왕은 려옥 장보와 영이종에게 물들었고, 유공은 부공 이와 채공 곡에게 물들었다. 이들 네 임금은 물든 것이 올바르지 못했으므로 나라를 망치고 자신마저 죽게 했으며 천하의 죄인이 되었다. 그러니 천하의 의롭지 못하거나 치욕스러운 사람을 거론할 때마다 반드시 이 네 임금을 말하곤 한다. - <묵자> 307쪽

2000년 전 사람인 묵자는 2000년 후를 미리 예견한 듯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치욕스럽게 거론되고 있거나 구차해 보일 수도 있는 삶을 연명하고 있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묵자는 이미 2000년 전에 그들의 최후를 경고했는지도 모릅니다.

향수는 착각 불러일으키기도 해

향수는 가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미 폐교가 된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추석을 전후해 운동회가 열리는 걸 보게 됩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한때는 그 운동장 주인공이었던 사람들, 어느덧 나이 50이 넘은 어른들이 달리기를 하다 그대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은 초등학생인데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데서 오는 사고, 향수에 젖다보니 그때처럼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는 데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무릎과 손바닥 정도가 까지는 사고로 끝날 수도 있지만 아주 가끔은  후유증으로 남을 만큼 착각의 결과가 엄청 날 때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유신헌법을 초안한 경력이 있는 분을 어제(8월 5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고 합니다. 한 때 유신에 물들어 살던 대통령이었기에 모든 것이 대통령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던 유신시절이 향수처럼 그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 인사들을 기용하면 그때처럼 일사불란하게 국정이 움직여질 거라고 기대 내지는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2000년 전, 묵자가 이미 말했고 달리기를 하다 곤두박질치는 어느 중년의 모습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옛날에 성왕들은 현명한 사람을 숭상하고 유능한 사람을 등용했다. 아버지나 형제라고 해서 감싸지 않았고, 부귀한 사람들에게 치우치지도 않았으며, 아첨하는 낯빛을 띤 사람을 총애하지도 않았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등용하여 높은 자리에 올려주고, 부유하고 귀하게 하면서 관청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못난 사람이라면 벼슬길을 막아, 가난하고 천하게 하면서 허드렛일을 하게 만들었다. 상현 중편 - <묵자> 345쪽

마지막으로 묵자가 말하는 겸애에 대하여 <묵자> 원문을 근거로 조금만 더 부연 설명하자면 고아, 과부, 홀아비, 형제 없는 자, 이런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도 겸애를 향유하는 데서 소외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죠. - <묵자> 411쪽

묵자는 문제점만을 제시하지 않고 구제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훗날 추앙 받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는 모범답안입니다.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합니다. 향수에 젖어 착각하거나 권력욕에 집착하지 않고 제대로 된 인사를 기용하는 것이야 말로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는 첫걸음입니다.

묵자는 보편적 복지로 회자되고 있는 복지정책까지도 이미 2000년 전에 주장했습니다. 대통령다운 대통령, 장관다운 장관, 사장다운 사장, 가장다운 가장,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과 가야할 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8글자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임건순 지음, 시대의 창 펴냄, <묵자>에서 감명 깊게 새길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묵자>┃지은이 임건순┃펴낸곳 시대의 창┃2013.07.15┃2만 8000원



묵자 :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임건순 지음, 시대의창(2015)


태그:#묵자, #임건순, #시대의 창, #묵가, #천민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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