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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6일 오전 10시 30분]

인천 송도 국제업무지구역에서 내려 공연장으로 가는 길
▲ 딸과 함께 락 페스티벌에 가다 인천 송도 국제업무지구역에서 내려 공연장으로 가는 길
ⓒ 김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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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록을 좋아한다. 어쩌면 지적 허영심일 수도 있다. 총각 시절에는 들국화, 그 가운데서도 전인권의 음악을 즐겨들었다. 퇴근 후 두어 평짜리 자취방 창가에 서서 <사랑한 후에>를 듣는 기분은 삼삼했다. 하지만 대중공연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경기도 평택의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한 뒤로는 짝사랑으로만 일관했다.

방학인데도 하루 종일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을 하는 딸아이가 안쓰러웠다. 감수성이 충만한 나이에 가슴보다는 머릿속만 채워가는 모습은 나의 이상과도 맞지 않았다. 딸아이는 나이를 먹어 젊은 시절을 무엇으로 추억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니 가슴이 답답해왔다. 지난 주 금요일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슬며시 유혹했다.

"인천 송도 락 페스티벌에 가지 않을래?"

평소 B1A4에 미쳐 사는 딸아이는 록이라는데도 반색을 한다.

"아빠 그거 너무 비싸잖아. 그리고 엄마가 보내줄까?"

아내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딸에게 '까짓거 사고 한번 치지 뭐'라고 응수했다. 우리의 계획은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종종 내가 일하는 컴퓨터방에 와서 속닥거리는 모습을 아내에게 들키기도 했지만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티켓 발매는 나에게 맡긴 아내의 카드로 결제했다. 목표가 정해지자 딸아이는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프로그램을 미리 다운받아 시간대 별로 동선을 미리 정했고, 그늘막 텐트를 칠 장소라던가 오가는 교통편도 미리 알아봤다. 출연하는 그룹들의 약력과 대표곡을 선행학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댄스 발라드 마니아가 록 마니아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신선했다.

탈출을 감행하다

송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장 입구
 송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장 입구
ⓒ 김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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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하고 송도 락 페스티벌에 다녀올 거야."

갑작스런 선언에 아내는 깜짝 놀랐다.

"토요일에는 피아노 레슨도 해야 하고, 일요일에는 비올라 첫 번째 레슨이 있는데 어디를 간다고?"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는 눈길이 매서웠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매일 공부에 악기 연습만 한다고 실력이 늘겠어. 은채 삶에도 여백을 주려는 거야."

내 말에 아내는 발끈했다.

"고등학생이 무슨 여백. 그런 것은 대학 가서 해도 되잖아."

아내의 강력한 프레싱에 나도 끝까지 저항했다.

"대학생 때는 그때의 감성이 있는 거고, 고등학생 때는 이때만의 감성이 있는 거잖아."

일단 불은 질러놨고, 딸아이와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며 착착 계획을 진행했다. 지난 3일 토요일 아침 딸을 피아노학원에 태워다 주고 서둘러 배낭을 꾸렸다. 날씨가 뜨거울 것 같아 그늘막 텐트까지 챙기고 났더니 배낭이 묵직하다.

인천 송도까지는 거의 두 시간 거리. 우리는 탈출에 성공했다는 해방감에 들떠 기차와 전철을 갈아탔다. 송도 국제화지구역에 내려 행사장으로 가는 길은 실망 그 자체였다. 실내공연장만큼은 아니라도 낭만적인 풍광 정도는 기대했는데 이건 순 황무지다. 작열하는 한여름 태양광을 쪼이며 걸어가야 하는 500m 진입로도 만만치 않았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다. 행사장은 간척된 습지여서 곳곳에는 흙무더기가 싸여 있었고, 급히 잔디를 덮어 놓은 바닥은 발이 푹푹 빠지고 있었다. 딸아이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빠 나 저기 좀 다녀올게. 먼저 텐트 치고 기다려"라고 말하고는 휑하니 달려가버렸다.

록의 정신은 '저항'이라고?

인천 송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장 모습이다. 많은 락 팬들이 공연에 따라 이동을 한다.
 인천 송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장 모습이다. 많은 락 팬들이 공연에 따라 이동을 한다.
ⓒ 김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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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무대가 건너다보이는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정말 오랜만에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에 눈이 쓰라렸다.

'정말, 이놈은 어디 가서 안 오는 거야?'

혼자 궁시렁 거리며 텐트를 완성해갈 무렵 딸아이가 두리번거리며 다가왔다.

"어디 갔다 왔냐?"

핀잔 아닌 핀잔에 딸아이는 헤헤거리며 '저쪽에서 이거 나눠주길래 받아왔지 뭐'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채를 흔들었다. 텐트 안에 배낭과 짐을 모두 집어넣을 때쯤 메인 무대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일어난 딸아이는 총알처럼 무대 앞으로 튀어나갔다.

짐을 정리하고 점심거리를 구하러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았다. 주변 환경은 거칠었지만 행사장 곳곳은 음악과 젊음으로 차고 넘쳤다. 어쩌면 거친 환경이 록의 정신을 대변하는 듯한 분위기처럼 느껴졌다. 새우밥을 살까, 케밥을 살까 고민하고 있는데 또 다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나 무대 앞으로 밀려들어왔는데 찾지 마."

"점심은 안 먹을 거야? 그래도 밥은 먹고 놀아야잖아"라는 내 말은 "조금 있다가 딕펑스 공연한단 말야"라는 대꾸에 묻혀버렸다. '딕펑스'라는 말은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딕펑스는 나도 봐야 되는데. 서둘러 새우덮밥을 사서 그늘에 앉아 허겁지겁 우겨넣었다.

사실 딕펑스는 보고 싶었지만 그들의 연주실력은 반신반의 하는 편이었다. 음악이라는 것이 소질과 노력뿐 아니라 철학과 연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헌데 내 생각은 기우였다. 딕펑스는 사운드도 수준급인데다 보컬의 목소리도 탄탄했다. 딕펑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피스(PEACE)'라는 외국그룹은 그저 그랬고, 하드록을 연주하는 외국 그룹 '스토리 오브 더 이어(Story of the year)'는 강렬한 사운드로 가뜩이나 뜨거운 오후의 태양을 용광로처럼 달궜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재발견한 그룹은 '뜨거운 감자'였다. 나는 '뜨거운 감자'는 김C가 리더이고 염세적인 음색으로 부조리한 세상을 비아냥거리는 팀 정도로만 알았지 이렇게 깔끔하고 강렬한 사운드와 보컬을 가졌으리라고는 상상해보지 않았다. 기타를 치는 조정치의 연주 실력을 직접 보고 즐긴 것은 '왕덤'(?)이었다.

노는 것도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지

김씨가 리더인 뜨거운 감자의 공연은 놀라운 실력을 재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 뜨거운 감자의 공연모습 김씨가 리더인 뜨거운 감자의 공연은 놀라운 실력을 재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 김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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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은 음악이 아닌 미(美)의 페스티벌장이기도 하였다. 세상에서 젊고, '쭉쭉빵빵'한 몸매에 열정과 싱그러움을 두루 갖춘 미인들은 모두 펜타포트 페스티벌에 모인것 같았다. 참가자들 가운데는 가족들끼리 참가한 사람 그리고 몇몇 외국인도 있었지만 나처럼 딸아이 한 명 데리고 참가한 50대의 중늙은이는 없었다.

나는 한 무더기의 젊은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안구정화하기에 바빴다. 공연이 달아오르면 그들과 함께 뛰고 손을 흔들며 열광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에서는 "로큰롤"을 외치며 힘차게 따라 불렀다. 초반만 해도 힘차게 놀고 얼른 생맥주 가판대로 달려가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 들이켜면 체력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어둠이 밀려들면서 체력은 고갈되어갔고, 소시지와 닭꼬치로 저녁을 먹었어도 다운된 체력은 '업'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7시 30분에 있었던 YB 공연은 명불허전이었지만 신나게 놀고 난 뒤에는 복부에 남아 있던 에너지마저 모두 소진되었다는 신호가 왔다. 급히 맥주 한 컵과 남아 있던 케밥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신없이 무대 앞을 고집하던 딸아이도 숨 막힐 듯 열광하는 분위기를 견딜 만한 체력이 고갈되었는지 그룹 '스웨이드(Suede)'의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달려 나갈 생각을 안 했다.

스웨이드의 공연은 토요일 밤을 불태울 만한 환상적인 연주였다. 1시간 30분이 넘는 공연에도 강렬하면서도 탄탄하고 매력적인 보컬을 들려준 브렛 앤더슨, 매력적인 보컬로 선물한 <뷰티풀 원스(Beautiful ones)>, 관객의 입장과 분위기를 먼저 생각하는 무대매너, 쩍쩍 달라붙게 만드는 드럼 연주. 정말 텐트에 앉아서만 관람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한 판 더 놀까?'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자마자 다시 열광하는 무리 속에 몸을 던졌다. 장우혁의 춤을 꼭 보고 가야겠다던 딸아이는 스웨이드의 공연이 끝나자 머뭇거렸다.

"장우혁 보러 안 갈 거니?"

딸아이는 잠시 내 눈치를 봤다.

"글쎄, 힘도 들고 내일 비올라 레슨도 있고…."
"그래, 그러면 짐 싸자."

나만 빼놓고 자기들만 갔다 오냐!

팬들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열광적으로 호응하며 즐겼다. 나와 딸도 팬의 일원이었다.
▲ YB 공연에 열광하는 팬들 팬들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열광적으로 호응하며 즐겼다. 나와 딸도 팬의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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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역 근처의 찜질방에서 1박을 하고 서둘러 평택으로 내려온 시간은 9시 15분. 아내는 여전히 뾰로통했지만 마음은 벌써 눅어 있었다. 몽롱한 정신이었지만 서둘러 아침식사를 준비하였다(일요일은 필자가 밥 당번이다). 밥은 묘한 매력이 있어 일단 먹고 나면 마음이 풀어지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갔다. 예배가 끝난 뒤 딸아이는 무사히 레슨을 마쳤고 긴장이 풀어진 나는 오후 내내 잠을 잤다. 마음이 완전히 풀어진 저녁시간, 아내는 그때서야 속마음을 털어놨다.

"가지 말란다고 나만 쏙 빼놓고 자기들만 갔다 오냐!"


태그:#딸과 함께 여행, #락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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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연구를 하고 있으며 평택인문연구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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