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마조리 켈리의 치열한 주주 자본주의 비판도서들이 번역되어 대안경제 붐 이는 우리 사회에 새뜻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 켈리의 대안경제 책 두권 마조리 켈리의 치열한 주주 자본주의 비판도서들이 번역되어 대안경제 붐 이는 우리 사회에 새뜻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 강상헌

관련사진보기


어렸을 적 토끼몰이, 날쌔지만 앞발이 짧은 이 녀석들은 산 아래 골짜기를 향해 쫓아야 한다. 위쪽으로 몰면, 쉬 내뺀다. 아이들 막대기, 그물도 다 소용없다. 심마니 약초꾼 같이 산 잘 아는 이들은 깊은 산에서 길 잃으면 골짜기를 버리고 위쪽을 향한다. 웬만한 등마루에만 서도 산은 길을 보여준다. 생존의 방식들, 본능이다.

해결책은 단순할 수 있다. 다른 해답도 있겠지만 왜 굳이 쉬운 길, 자연스러운 방법을 외면하겠는가? 세상이 헝클어져 암울한 골짜기처럼 헤쳐 나가기 어렵다면, (꼭대기로 올라) 원래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 어진 판단이다. 꼼수는 무지나 욕심에서 나온다.

주식회사로 대표되는 지금의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가 세상을 먹여 살릴 마땅한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은 미국의 월가에서도 꾸준히, 가끔은 충격으로, 입증되고 있다. 다만 호랑이 등을 타고 있는 상황 때문에 출구전략 마련에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호랑이 등을 내리면, 잡아먹힌다. 쉬쉬 하고는 있지만, '갈 데까지 가보자'가 구성원들의 황량한 심리일 게다.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새로운 생각을 진리로 채용하자면 우선 '내 밥통'이 작아진다. 기득권 세력 얘기다. 그 자유는 여러 이유로 지체될 수 있다. '그들'은 그 밥통 크기로 이 지체를 설명하지 않는다. 자기 밥통의 '안전'을 이데올로기로 포장한 논쟁으로 '승화'시켜 세상의 생각들을 흔든다. 흔히 밥통은 우익, 자유는 좌익이 된다.

미국의 경제저술가 마조리 켈리의 책 두 권을 읽었다. 최근 나온 번역본 <주식회사 이데올로기>(원제 The Devine Right of Capital)와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Owning Our Future-The Emerging Ownership Revolution)다.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는 10년 전쯤에도 번역판으로 조용히 소개됐다.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는 그 후속타인 셈이다. 오래 전 첫 번째 책에 관한 뉴스를 보고 흥미롭게 생각했었는데, 최근작과 함께 상하권처럼 짝을 이뤄 나왔다 해서 같이 읽었다.

의외였다. 월가 타입처럼 보이는 인상과 매끈한 경력의 이 여성 저자는 인간(세상)의 본디를 말하고 있었다. 돈을 '자본'의 손에서 구출해 '사람'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는 얘기였다. '경제정의' 등을 위해 자본주의를 수리(땜질)하자는 따위의 '분석'이 아닌, 본디로의 회귀를 보듬어내고 있었다.

마치 '골짜기를 등지고 산을 오르라'는 얘기를 모성의 언어로 조단조단 들려 주는듯한 켈리를 시쳇말 '좌빨'이라 삿대질할 이는 없겠다. 그러나 톺아보면 '주주'로 대표되는 현대의 (경제적) 귀족세력을 우상처럼 섬기는 자본주의에 큰 회의론을 들이밀고 있다. 그러나 '점령하라!' '물러나라!' 구호는 없다. 대신 재미가 있다, 신세계가 보이는 까닭이다.

한 언론인은 골치 아픈 저자, 어쩌다 눈이라도 한번 주면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는 '비공식적 금서'라고 했다. 하고 많은 책 중에 그런 책을 일부러 언급해 말썽을 자초할 언론인이 어디 있겠느냐고도 했다. 재벌이 싫어한다고도 했다. 재벌은 곧 광고주다. 그래서 유명하고 큰 출판사들도 이 책과 저자를 향해 곁눈질만 하나보다.

'북돋움'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다. 편집자인 이 출판사 김기호 대표는 "삿대질 대신, 이 책들로 '부드러운 대안'이 있음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편집기획전문가이기도 한 제현주씨가 번역했다. '내용'도 알고 '언어'도 아는 이의 번역, 번역본을 읽으며 번역 때문에 기분이 좋아보기도 참 오랜만이었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다. 아부나 광고성 코멘트 아니다. 

주주를 신처럼 모시는 이 시스템이 '돈'과 얽힌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풀었다. 생산자를 도와 세상을 이롭게 하자고 만든 금융 시스템이 생산자와 소비자 등 나머지 관련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이나, 결과적으로 '금융'이 가진 돈이 세상 돈 보다 많아진 상황도 그 중 일부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속담을 켈리는 알고 있었나? 발가락은 발보다 클 수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주주를 위해 주가만 신경 쓰면(올리면) 되는 것이 경영이란다. 주가 관리 잘하는 CEO에게 실로 엄청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기능의 모두인 이 시스템을 바꾸는 결단 말고는, 이 뻥튀기 경제의 욕망의 가속도를 당할 수 없다. 파멸이다. 주주는 웃고 '지구 전체'가 운다. 미국 발 심각한 몇 차례 신호, 다들 또 잊어간다.  

켈리에 따르면, 주주를 그렇게 '모셔야 하는' 근거가 없다.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모두들, 나도, 궁금해 하지도 않았던 대목이다. '주주의 몫, 역할'이 그렇게 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봉건주의가 민주주의로 뒤집어지는 정치적 변혁에도 불구하고 '시민을 수탈하는' 경제 구조는 워낙 똬리가 짱짱했다. 경제의 역사다.

역사 뒤적이니 켈리가 옳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맨날 당하는 놈만 당하는 구조다. 약간의 예외는 해외토픽 같은, 이색적인 얘기 거리일 뿐. 재벌과 정치의 환상적인 짝짜꿍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배해온 이 땅 사정은 더 처절하다. 그럼에도 88만원 세대 등 시민들은 '내가 게을러서' '세상 변화에 발을 못 맞춰서' 따위 반성문을 마음속에서 끓여낸다. 착해서인가?

구조는 정치다. 정치를 잊고 살다보니 엉뚱한 놈이 '내 밥통' 가지고 장난친다. 참다 참다 소리 한번 질러보면 돌팔매가 날아든다. 그 구조, 변하지 않을 것인가? 예전엔 '없는 자' '여자'는 투표권도 없었다. 대통령 오바마의 나라에서 흑인은 사람대접도 못 받았다. 그 땐 당연했다. 주주 자본주의는 정녕 인간세상의 흔들릴 수 없는 본성인가? 켈리가 거듭 묻는다.

기업의 구성원인 직원의 가치, 그 기업이 놓인 땅과 사람들인 지역사회의 몫이 대부분 무시되는 주주 자본주의의 구조에 대한 분석은 매섭다. '삶의 가치' '시민의 자연' '후손에 대한 예의'와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주주 몫만 챙겨주면, 모로 가도 좋다. 아니, 모로 가야 '경영의 귀재'다. 주가만 오르면 스타 경영자다. 옳은가?

주주와 스타의 그 돈은 세상을 약탈한 전리품이다. 그 중에는 개미투자자 군단의 피눈물도 많이 섞여있다. 얽히고설키다 보면 피아간의 식별요령, '저들'과 '나'의 구분선이 모호해지곤 한다. '저들'의 노림수다. 선량한 개투군단은 그 약탈구조의 희생물이면서 또한 인질이기도 하다. 

'밥 굶으면 배고프다' 정도의 당연한 얘기다. 금융공학이니 뭐니 해서 잔뜩 요란하게 포장한 월가의 기발한 전략들에 눈이 뒤집힌 세상, 하도 모로만 도는 '이론' 때문에 상식이 가려진 블랙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성장'을 전제로 하는 경제 구조는 과욕을 넘어선, 사기다. 물로 가는 자동차처럼.

그 책을 인용한다.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주식회사 같은 (세상을 지배하는) 경제 시스템을 바꾸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

그리고 그는 그 권리를 실행할 방법론을 제시한다. 공생의 지혜 세우는 대안의 경제 시스템과 적절한 비유와 해학으로 무장한 즐거운 뒤집기 이벤트는 통쾌하기도 하다. 현장을 켈리는 보여준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함께 가자'는 움직임이 이 땅에서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거품도 적지 않아 보인다. 옛 생각으로 새 틀 짜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투쟁'으로만 되는 일도 아니다. 그 '즐거운 혁명'을 배워야 한다.

내 듣는 바, 그대도 듣는가? 당돌하게, 켈리는 외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대안경제, #마조리 켈리,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북돋움, #김기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