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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타의 거리. 더스틴이 그린 그림.
 콜카타의 거리. 더스틴이 그린 그림.
ⓒ Dustin Burn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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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개월 동안 남편(미국인)과 인도·네팔·동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여자와 미국에서만 평생 살아온 남자가 같이 여행하며 생긴 일, 또 다른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일 등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일본 공포영화가 무서운 까닭은 그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잔인한 일들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의 인도는 우리에게 일본 공포영화와 같은 곳이었다. 끔찍하리만큼 오염이 심한 갠지스 강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맨발로 걸어 다니는 구루들, 찐득거리는 카레를 손으로 먹는 사람들, 21세기 현재에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소를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찾고 책을 읽어봐도 인도라는 나라는 좀처럼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았다.

어떤 도시나 국가를 책으로 읽고 정의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나라라고 하기엔 세계 9위라는 경제 순위가 있고, 발달이 더딘 나라라고 하기엔 간디나 타고르, 부처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가 태어난 곳이다. 알 수가 없어서 두려운 인도 여행을 앞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꺼운 인도 여행서 두 권과 인터넷의 여행 리뷰를 열심히 정독하는 것뿐이었다.

인도 여행에 대해서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여행담이 무성했다. 인터넷에는 배낭을 통째로 도난당했다든가 두바이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기당했다든가 하는 등의 끔찍한 이야기만 흘러넘쳤다.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모두 큰 전쟁이라도 먼저 겪고 온 사람처럼 한 마디씩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한 달 동안 인도여행한 지인의 조언,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여자는 반드시 긴 바지, 긴 소매를 입어야 하며, 인도 남자가 친근하게 굴면 100% 수작이며 성희롱이니 매몰차게 거절해야 한다(이런 충고에는 으레 '쉽게 넘어가는 한국 여자들을 보면 수치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는 코멘트가 따라 붙는다). 기차를 타면 타자마자 침대 아래에 배낭을 넣고 쇠사슬로 잠가야 하며 값나가는 물건이 있다면 절대로 인도인들 앞에서 꺼내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물을 조심해야 하는데, 반드시 페트병에 들어있는 물을 사 먹어야 하며 병에 구멍을 뚫어 수돗물을 채워 파는 경우도 있으니 유념해라. 

인도라는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행자들을 등쳐먹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인도에 3, 4개월 정도는 있을 것 같다고 하자 인도에 한 달을 다녀온 적이 있는 지인은 기겁했다.

"3개월! 한 달이면 충분해. 좋은 경험이긴 했는데 정말 끔찍했어. 인도라면 다시는 안 가. 인도 남자들은 온몸을 가리고 다니는 인도 여자들에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여자가 거리에 돌아다니면 눈을 부릅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쳐다봐. 다들 팔이라도 만져보려고 손을 뻗어댄다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 나는 어린 애들이 배가 고파서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런 광경은 너무 슬퍼서 못 봐. 그래서 나는 보름 동안 택시를 고용해서 주요 관광지만 돌아다녔어. 그 가이드 참 좋았는데 소개해줄까?"

이것을 끝으로, 나는 인도 여행에 대한 조언 듣기를 그만뒀다. 특히 인도 사람들의 실상을 보기가 불편해서 택시를 타고 주요 관광지만 찍고 도는 관광객의 말이라고 한다면.

콜카타의 거리
 콜카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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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콜카타로 가는 항공의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다. 더스틴은 코를 벌름거렸다.

"인도에 가는 거야~ 인도!"

신이 난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더스틴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초조함이 어려있었다. 더스틴 역시 인도에 관한 인터넷의 호러 스토리를 너무 많이 복용한 탓이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줄 앞편에 키가 큰 백인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인도에 처음 가세요?"

더스틴이 물었다. 인도에 첫발을 내디디는 동지를 만나 초조함과 불안, 흥분에 대해 나누고 위안을 받으려고 한 심사였겠지만 여자의 대답은 의외였다. 여자는 콜카타에 살고 있으며 결혼식이 있어 쿠알라룸푸르에 잠깐 들른 참이라고 했다. 더스틴은 오히려 잘 됐다 싶었는지 콜카타 주민의 의견을 묻기 시작했다.

"아…. 우리는 인도가 처음인데. 콜카타는 어때요? 호객행위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래요?" 

여자는 비행기를 처음 타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우리를 안심시켰다.

"뭐 별로 그렇지 않아요. 델리라면 모르겠는데, 콜카타는 오히려 느긋한 편이죠." 

여자의 말이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딱지는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인도 여행 안내서에는 인도 여행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몇 페이지에 걸쳐 적혀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내내 더스틴에게 이러한 주의 사항을 강조해서 통역해주었다.

"잘 들어. 택시를 탈 때 특히 주의해야 한대. 콜카타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택시 표를 공항에 있는 창구에서 끊어야 하는데, 그때 큰 단위의 지폐를 주면 안 된다는 거야. 창구 주위에 사람들을 풀어놓고 주의를 분산시켜서 거스름돈을 사기치는 경우가 흔하다는 거지! 그걸 방지하려면 한 사람은 표 사는 거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창구 주위를 유심히 살펴야 한대.

그리고 두 번째! 창구에서 받은 표를 택시 기사한테 건네주는 시점이 중요한데,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줘야 한대.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내려주고 도망가는 경우가 흔하다나 봐." 

눈으로만 읽어도 무시무시한 책의 내용을 소리 내 내뱉고 나자 나의 긴장감은 팽팽하다 못해 끊어져 버릴 지경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우리는 머릿속에 시나리오를 다시 한 번 그려보았다. 콜카타 공항에 있다는 은행 ATM기를 찾아 돈을 뽑는다. 택시 창구를 찾아 표를 산다(주위를 잘 살피는 걸 잊지 말 것!). 택시를 탈 때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전표를 준다.

비행기 착륙하기 직전, 머릿속 시나리오 다시 한 번 그려봐

콜카타의 거리
 콜카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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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이 시나리오대로 될 리가 없다. 일단, 콜카타 공항에는 우리가 찾는 ATM이 없었다. 공항을 한참을 돌다 결국 말레이시아 돈을 조금 환전하기로 했다. 복대에서 돈을 꺼내야 한다. 돈을 꺼내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는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왜 그런 데서 돈을 꺼내, 저기 저 구석 가서 하자고."
"그렇게 언성을 높이는 게 사람들 시선을 더 끌 거라는 건 생각 안 해?"

사실은 아무도 안 보고 있었을 우리 두 사람은, 일이 꼬이기 시작하자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투를 내두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허둥지둥 머릿속에 그려놓은 첫 번째 시나리오를 마감하고 돈을 바꾼 우리는 택시 표를 사러 창구로 갔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때쯤 삐끼 두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주위는 고요했다. 시나리오대로 사기꾼 일행이 나타나지 않자 오히려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하게 더스틴 옆에 서서 주위를 감시했다. 더스틴은 콜카타 서더스트리트까지 가는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300루피요."

여행서는 큰 단위의 돈은 쓰지 말라고 했지만, 인도에 처음 도착해서 큰 단위의 돈을 어디에 가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디테일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충고만 잔뜩했지 책임감은 없다고 여행서를 원망하며, 할 수 없이 1000루피짜리 지폐를 창구의 아저씨에게 건넸다.

"700루피를 거슬러주셔야지 왜 200루피만 주시나요?"
"아, 500루피를 주신 줄 알았지 뭐요. 하하하." 

창구 아저씨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머지 500루피를 순순히 내 주었다.

"여행서에서 말한 게 바로 이런 거야. 인도에 처음 도착한 오늘, 공항에서 바로 이런 일이 생겼잖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나 돼? 여행서에서, 인터넷에서 읽은 호러 스토리들이 다 현실로 일어날 거라고."

우려한 일이 벌어지자 더스틴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고 타일렀지만, 나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공항 문밖으로 나가니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택시 아저씨 4명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가장 적극적이고 목소리가 큰 택시 아저씨의 차로 순순히 끌려갔다. 아저씨는 공항 밖까지 굴러갈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워 보이는 차에 우리를 태웠다.

아저씨는 영수증을 달라고 하더니 서더스트리트를 확인했다. 영수증을 다시 달라고 하자 우리의 의도를 알 리 없는 아저씨는 이 영수증은 자기가 갖는 거라며 걱정 말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댔다. 망했다. 이렇게 되면 시나리오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택시 아저씨가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서더스트리트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기만을 기원했다.

택시가 출발했다. 우리가 탄 택시는 다른 택시들, 릭샤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난지 알 수 없는 소들과 코끼리들 사이에 섞여 차선도 없이 요리조리 길을 저어 나갔다. 차선을 지키지 않는 게 아니라 차선 자체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시야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코로는 갖가지 향신료 냄새와 도시의 먼지가 흘러들어왔고 귀로는 도로의 모든 차가 내질러대는 경적 소리가 여과 없이 흘러들었다. 인도의 강렬한 첫인상이 시청각과 후각을 마구 후벼대자, 시나리오를 지키지 못했다는 졸렬한 패배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첫 끼니, 손바닥만 한 카레와 그 4배되는 밥... 성공인가?

콜카타의 밤
 콜카타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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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호텔이 있는 서더리스트리트에 도착했다. 날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지만, 거리는 길거리 음식이나 옷을 파는 사람들, 구석에 모여앉아 기타를 연주하는 서양 히피들 등 알 수 없는 무리의 에너지로 꿈틀대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향신료와 매연과 온갖 오물의 냄새가 뒤섞여 콧속으로 들어왔다.

인도의 향신료는 속도가 빠르다. 등장했다 하면 순간적으로 내달려 강렬한 향을 내꽂아 오감을 자극한다. 우리는 냄새에 이끌려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에는 자주 찾던 서울의 인도 음식점에서 공부해 온 것보다 5배는 많아 보이는 음식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두꺼운 여행서를 쳐들고 음식의 이름을 열심히 비교했다. 여행서는 콜카타에는 인도 내륙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든 해산물 카레가 유명하다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왕새우 카레 하나와 밥 두 개를 시켰다.

"이게 아닌가 봐."

우리 앞에 놓인 건 손바닥 만한 카레 한 접시와 그 네 배 되는 하얀 밥 두 접시. 처음 온 나라에서 첫 끼니를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콜카타 식당
 콜카타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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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콜카타, #캘커타, #인도, #배낭여행, #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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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 인도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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