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적대정책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취임 5개월동안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어떤 정치적 파고에도 끄떡없던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상태다. ‘남북 간 신뢰를 만들겠다’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정책효용성이 있는 건지, 오히려 불신의 골을 깊게 하는 건 아닌지 짚어볼 때가 됐다. 박근혜정부가, 또 김정은 정권이 서로에게 취한 조치들을 짚어보면서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말]
2013년 민간단체의 인도적 대북지원 승인신청 현황.
 2013년 민간단체의 인도적 대북지원 승인신청 현황.
ⓒ 안홍기

관련사진보기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 28일 "우리 정부는 정치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추진할 것"이라며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방침을 밝혔다. 동시에 이미 신청이 들어온 5개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계획을 승인하겠다고도 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민간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승인한 건 지난 3월 유진벨재단이 북한에 결핵 치료약을 지원한, 단 1건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재개' 방침은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고 있는 민간단체에겐 희소식이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에만도 56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단 '1건'

북민협이 집계한 내용에 따르면 2013년 들어 대북 지원 반출승인을 신청한 단체는 유진벨재단 외에 7개가 더 있었고, 56개 단체를 대표한 북민협 차원의 승인신청도 있었다. 올해 1월부터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승인신청이 이어졌다. 

그동안은 통일부에 승인신청을 해도 계속 보류될 뿐이었다는 게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주장이다. 지난 22일 북민협은 "통일부는 반출 신청 이후 길게는 수개월에서 짧게는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기다려달라'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고 주장하며 조속한 승인을 촉구했다.

류 장관의 이번 발표로 5개 단체가 신청한 대북지원에 대한 승인은 기정사실화됐지만, 나머지 3개의 대북지원 건은 여전히 보류중이다. 한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밀가루와 같은 식량이 포함되면 전용 우려가 있어 곤란하다'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29일 승인이 보류되고 있는 대북지원 승인 건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지원의 시급성과 필요성, 지원 계획에 대한 사전 협의 등을 감안해서 하는 것이다. (28일에) 승인하겠다고 발표한 5개 단체의 신청 내용은 여러 상황적인 요인을 감안해 승인을 해도 계획대로 이뤄지겠다고 판단해서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회담 제안'에 '인도적 지원' 덧붙여... "오해 소지"

정부가 민간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도 '비인도적'이지만, '인도적 대북지원 재개' 발표가 나온 상황도 인도적 지원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류 장관은 인도적 지원 방침을 발표하기 전 북한을 향해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에 나서서 정부가 요구하는 '개성공단 중단 사태 재발방지' 조항을 받아들이라는 '마지막 회담'을 제안했다. 

'정치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북한을 돕겠다'는 내용을 '마지막 회담' 제안에 덧붙여 발표했으니, '우리가 이렇게 돕겠다는데, 마지막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냐'고 해석되는 게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 제안을 "강경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제시했다"고 해설하고 있다.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상황"이라면서도 인도적 지원 재개 방침이 발표된 시점과 상황에 대해선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민간단체의 지원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받아들일 소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북한에 중요한 제안을 하면서 '인도적인 지원'을 결부시킨 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부터 최근까지 강조해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도 어긋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시종일관 "인도적 문제는 정치와 관계 없이 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인 지난해 11월 5일 발표한 통일·외교·안보공약 중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부분에서 "인도적 문제는 정치적 상황과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북한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대북지원을 투명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독교 지도자들과의 오찬에서도 "북한의 영·유아라든가 고통받는 주민들을 생각해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해나갈 것이고, 그것이 또 하나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는 한·중정상회담에서도 박 대통령은 비슷한 언급을 했다. 그러나 취임 뒤 5개월 여 동안 민간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꽉 틀어쥐고 있다가, 북한에 대화 재개를 제안하는 상황에서 이를 허용하고, 그 허용 범위도 여전히 정부가 틀어쥐고 있다면 누가 봐도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는 인도적 지원'과는 거리가 있다.

인도적 지원을 받아들이는 북측 입장에서는 이런 민간의 순수한 지원마저 '남측의 협상카드'로 받아들일 우려도 생긴다는 점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강조와는 달리 오히려 남북 간의 불신을 조장하는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태그:#대북인도적지원, #마지막회담, #정치상황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