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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알라 신이시여. 이집트를 해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시고, 이집트의 번성을 원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의 법을 이 나라에서 수행하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을 파멸시키소서."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이집트 카이로 상류층 지역인 마디(Maadi). 라마단 성월 첫째 날의 기도를 끝내면서 요스리 아카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주일 전인 3일 군부에 의해 축출된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의 지지자다. 그러자 다른 이슬람 신도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왔다. 신성한 공간에 정치를 끌어들이고, 무슬림 형제단의 이데올로기를 다른 이들에게 강요했다는 이유였다.

"잔인한 정치, 경제적 어려움으로 라마단 기쁨 쓸려가"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이슬람 성월 '라마단'이 시작됐지만, 이슬람 국가 이집트는 '친정부파'와 '반정부파' 둘로 나뉘었다. 무르시 퇴진을 주장하는 수백만의 반정부 시위대가 6월 30일 시위를 시작한 이후, 11일 현재까지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8일 하루 동안만 이집트 군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발포로 51명이 사망했다. '피의 월요일'이었다. 일각에서는 '이집트 내전' 가능성이 나오기도 한다.

라마단이 시작되면서 유혈충돌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라마단은 더 이상 '축제'기간이 아니다. 거리를 수놓아야 할 '파누스(Fanous)'라고 불리는 알록달록한 유리 램프, 해가 진 후 먹을 음식을 파는 가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알자지라>는 "나라를 양 극단으로 나눈 잔인한 정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라마단에 대한 기쁨은 쓸려갔다"고 전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축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라마단도."

램프 상인 월리드 압델 타왑은 낙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노점상에는 수십 개의 램프가 매달려있었다. 그는 "매우 안 좋은 시즌"이라면서 "보통 우리는 라마단 이틀 만에 모든 물량을 판다, 올해는 보통의 60%만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르시 축출 이후, 이슬람주의자들이 운영하는 모든 채널은 방송되지 않고 있다. 무르시 지지자인 할리마 압둘 바셋(68)은 "종교적인 TV 채널이 없는 라마단이 그들(군부)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가족과 함께 먹는 '이프타르', 올해는 거리에서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단식을 한다. 해가 진 후 음식을 먹는 것을 '아프타르'라고 한다. 반정부 시위대는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친정부 시위대는 나스르 시티 라바 광장에서 그들만의 '아프타르' 모임을 했다고 AP통신은 11일 전했다.

"라바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정신이 나간 건지, 세뇌를 당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25세의 변호사 쉐누다 윌리엄이 말했다. 윌리엄과 함께 타흐리르 광장에 있던 이들은 무슬림 형제단에 있는 무르시 지지자들을 '무식한 사람들', '먹을 음식이나 잘 곳을 찾는 팔레스타인인이나 시리아인들'이라고 말했다.

라바 광장에는 수천 명의 무르시 지지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텐트 안에 들어가 있거나, 기다란 푸른색 천 위에서 기도를 드렸다. 하루의 끝을 알리는 불꽃이 터지자 사람들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대추 야자열매를 먹었다. 

라마단 첫 번째 날 이프타르는 전통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 만수라에서 온 대학생 모하메드 엘 사예드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해 모든 가족들을 이곳 라바 광장에 데리고 왔다. 그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이고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지만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닭고기와 밥을 먹었다. 여성들은 예외 없이 이슬람 전통 의상을 입었다. 이들은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받고 나왔거나 어리석은 이들"이라면서 진정한 이집트인들은 자신들 주위에 앉아있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기도의 끝에 이렇게 외쳤다.

"이슬람 국가 이집트! 우리는 이슬람을 위해 우리의 피와 영혼을 희생할 것이다."

타흐리르 광장에 있는 이들도 닭고기를 먹었다. 건설노동자인 아메드 압델 아지즈는 "타흐리르에서 라마단의 첫째 날을 축복하게 돼서 좋다"면서 "이곳에 있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 여기에 오니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수천 명이 모여 있는 라바 광장과 달리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사람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 무르시 시위대는 그들이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의 힘을 거리에서 보여줄 필요가 적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AP 통신이 전했다.

2년 반의 정치적 혼란, 경제는 '붕괴 직전'

이번 라마단이 조용한 것은 이슬람의 경제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2011년 '시민혁명' 이후 2년 반, 이집트 GDP의 11.3%를 차지하는 관광 산업은 불황을 맞았다. 외국인의 직접적인 투자 또한 흔들렸다. 2010년과 비교했을 때 외환 보유액은 60% 감소했다. 지난 6월 이집트의 인플레이션은 최근 2년간 가장 높은 9.8%였다.

나스르시티의 제빵사 아이만 압둘라 마흐무드(34)는 "쿠나파(아랍 빵) 1kg이 지난해에는 6이집트 파운드에 팔렸는데, 올해는 1.5~2 이집트 파운드 비싸다"면서 "원재료 값 또한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세계 최대의 밀 수입국이다. 내년 1000만 톤의 밀을 들여온다. 하지만 자국 화폐인 이집트 파운드 가치가 폭락하고 외환보유액이 줄어들면서 현재 이집트의 수입 밀 비축량은 50만 톤으로, 이대로라면 두 달도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마흐무드 맞은편에서 대추야자열매를 팔던 아흐메드 하산(25)은 "견과류들을 미국에서 들여오는데 이집트 파운드 가치가 계속 떨어져서 가격이 5% 정도 비싸졌다"고 말했다.

임시 정부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은 미국의 반응. 미 정부는 연간 15억 달러를 이집트에 지원해주고 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0일 "무르시 정부가 민주적 통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2200만 명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에서 이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나왔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카이로 임시정부는 이를 미국이 15억 달러의 원조를 삭감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내홍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 형제단은 임시 정부의 조기 총선·대선 제안을 거부했고, '결사항전'을 다짐했다. 임시정부는 무슬림 형제단 지도부 체포를 명령했다.


태그:#이집트, #라마단, #무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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