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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 한 명이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세계 최대 도서관을 설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공화국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30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알렉산드리아에 들어오는 모든 방문객의 책을 압수해 복사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보를 가진 자가 세상을 통치한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까?

오늘날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정보의 보고, 인터넷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된다. 인터넷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통치한다는 전제도 가능할 법하다. 이런 인터넷을 실제로 지배하는 자가 미국이다. 세계 통신의 많은 부분은 미국을 경유해 이뤄진다. 각국의 개인 간의 통화와 이메일, 채팅 까지도 미국의 통신망, 인터넷 기업 등의 서비스를 통해 상당부분 이뤄진다. 이번 스노든의 폭로로 밝혀진 미국 국가안보국의 정보수집 도구인 프리즘의 정보 수집 대상 9개사의 가입자만 해도 수십 억 명에 이른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차치하고 인터넷 기반의 정보력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나라가 없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정보력을 이용해 잠재적 테러위협을 제거하고자 만든 것이 프리즘이다. 프리즘은 2008년에 개정된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따라 해외 테러리스트들의 이메일과 첨부파일 등 해외 정보를 합법적으로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 정부 내부의 컴퓨터 통신망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비밀리에 법원의 영장을 받아 의회에 보고되면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스노든의 폭로로 프리즘의 존재가 드러나자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가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다. 이에 대해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 국민에 대한 정보 수집은 해외 테러리스트와의 관련성이 있을 때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0%의 안보도 없고 100%의 사생활 보장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시 행정부 시절의 과도한 군사력 사용을 비판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 병력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지양하고 드론이나 첩보요원을 동원한 표적공격으로 대테러전의 성격을 바꿔왔다. 프리즘도 국가안보를 위해 물리적 충돌은 최대한 피하면서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는 대테러전 노선을 따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절차적으로 법원과 의회의 사전 동의하에 작전을 수행한 점도 인정해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인터넷망을 통해 쥐고 있는 정보는 미국 국내법의 적용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내국인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정보 수집을 한다는 원칙을 밝혔으나,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규정된 외국인의 사생활은 무차별적으로 사찰 대상이 된다는 것이 문제다. 미 국가정보국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은 프리즘의 사생활침해 우려에 대해 "국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미국 시민권자, 미국인,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비밀 해외정보감시법원은 프리즘을 통해 이뤄진 1789건의 감청 요청 중 단 한건만 거부했다. 물론 외국인의 정보라도 잠재적 테러리스트 색출을 위해 순수하게 이용될 수만 있다면 그 유용성을 부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국가안보의 영역이 단순히 테러방지에 국한된다는 보장은 없다. 경제적, 정치적 영역에도 국가안보의 개념은 적용될 수 있다. 미국 내 사법부와 의회의 승인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비밀리에 유지되는 정보수집 활동이 언제든 미국의 국익과 국가안보를 위해 얼마든지 남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는 셈이다.

인터넷망을 이용한 사생활 침해는 단순히 한 국가, 정부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 간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타국 정부에 의해서도 얼마든 침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초국가적 성격을 띤다. 그리고 인터넷의 실질적 지배자는 미국이다. 미국 정부는 믿을만한 존재인가. 불과 10년 전 부시 행정부는 의회의 만장일치 승인 하에 이라크를 침공했다. 대량살상이 가능한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생화학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미국 정부가 그릇된 판단에 이를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국익이라는 명분 앞에 자유로운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에게 현대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미국이 쥔 힘을 제어할 방법이 있는가. 스노든의 폭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위험을 깨우쳐줬다.


태그:#프리즘, #사생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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