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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공직생활 마지막 날 근무중이 김선균과장
 39년 공직생활 마지막 날 근무중이 김선균과장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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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0일 자로 홍천군청 김선균 과장(농정축산과)이 명예퇴직을 한다. 1974년 서석면에서 시작한 공직생활, 그는 2005년 농업사무관으로 승진해 39년을 근무했다. 스무 살의 나이로 시작해 청춘을 다 보낸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농업분야 업무를 배워가며 공직생활을 했다는 그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나이가 됐다.

김선균 과장은 농업관련 부서에서만 16년의 세월을 보냈다. 서석면장을 거쳐 농정축산과 과장으로 6년을 근무했다. 농업전문가이다. 지역 사회에서도 부지런한 공무원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가 농정축산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홍천의 농촌 마을이 많이 변했다. 새농촌 건설 마을과 정보화 마을 및 농촌 체험 마을이 곳곳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동료와 후배들로부터는 성실하고 청렴한 공직자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마지막 근무를 하는 지난 28일 홍천군청 농정축산과 사무실로 찾아갔다.

"좀 더 일찍 자리를 비워줬어야 했는데, 이제야 비워줍니다"

39년의 공직 생활 마지막 날인데도 김선균 과장은 여전히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기자와는 오다가다 얼굴 정도만 보고 지나쳤던 사이였다. 명함을 내밀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망설이는 김 과장에게 잠깐이면 된다고, 홍천 지역의 농축산 분야와 관련해 듣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하자 승낙했다.

정년퇴임이 아직 2년 남았는데, 명퇴를 선택한 이유를 먼저 물었다. 김 과장은 멋쩍게 웃으면서 "쉬고 싶어서 하는 거죠"라고 말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기자는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 후배들에게 미안해요. 20년 전만해도 농업관련 부서가 많았고, 인력도 많이 채용했죠. 하지만 근래는 농업관련 부서가 줄어들면서 진급을 하지 못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제가 좀 더 일찍 자리를 비워줬어야 했는데, 이제야 비워줍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인들을 대상으로 홍천을 소개하는 김선균과장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인들을 대상으로 홍천을 소개하는 김선균과장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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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직원이 들고 온 결재 서류 하나를 검토하여 사인했고, 며칠 전에 퇴임 소식이 지역 신문을 통해 알려져서인지 음료수를 사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한눈에도 농사짓는 사람임을 알 수 있는 복장이었다.

지방공무원으로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낸 소감을 물었다. 기억 중에 아쉬웠던 것도 있을 것이고, 보람도 있었을 테니 하고 싶은 말도 많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게 없다며 머리만 쓸어 올렸다. 그래서 기억나는 거 말고 지금까지 농촌에서 농축산 업무를 보면서 느낀 것들과 앞으로 농촌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의견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전에는 농촌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근무했는데, 지금은 돌아오는 농촌이 됐지요. 하지만 귀농보다 귀촌인구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농촌의 현실이 어떻게 될지 안타깝습니다. 기후환경 변화로 농촌도 변하고 있지만, 농업인들의 고령화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입니다. 도시의 젊은 측이 귀농해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그런 부분에 대한 인식이 강조되는 시점입니다."

귀농인들이 정착할 수 있으려면?

젊은 세대의 귀농은 사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따른다. 기자 역시 서울 생활 정리하고 귀농(2000년도에 귀농함)을 실행했지만 4년 만에 포기했다. 농사일도 만만치 않았고, 경제 활동이 어려워서였다. 배추나 풋고추·옥수수 등을 지어서는 사실 먹고 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비싼 농기계 구입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 가림 하우스를 이용한 시설재배가 대안으로 떠올라 보조 사업이 많이 진행되었지만 그 혜택이 귀농인에게 돌아가기는 어렵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전문 적인 농사일을 하기에는 초기 자본도 많이 들어가고, 준비 기간이 충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귀농을 권장하는 분위기는 옳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홍천은 귀농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마다 귀농을 권장하면서도 마땅한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녀 교육을 위한 시골 지역의 학교 운영을 꼽을 수 있지요.

그래서 강원도에서는 작은 학교 희망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면단위 학교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산물 유통 시스템의 문제가 해결돼야 귀농하는 분들도 쉽게 정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농촌에서 기껏 재배한 배추 한 포기 값이 산지에서는 500원 정도하는데, 마트에서는 5000원에 판매하는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농사를 지어서 자녀 교육을 시키고, 경제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귀농을 하는 분이 대농을 한다든지, 처음부터 초기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시설재배는 할 수 없거든요. 또한 정부에서 준비했다가 포기한 '농가단위직불제' 운영으로 농가 소득을 일정부분 책임져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홍천군청 농정축산과 직원들이 마련해 준 전별금을 지역 장학금으로 기탁한 김선균과장(가운데)
 홍천군청 농정축산과 직원들이 마련해 준 전별금을 지역 장학금으로 기탁한 김선균과장(가운데)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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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균 과장은 이번에 퇴임하면서 농촌의 바쁜 영농기임을 감안하여 퇴임식을 생략하자는 뜻을 담당 공무원에게 전했고, 지난 25일 조그만 뷔페에서 부서 직원들이 마련한 조촐한 저녁 식사 자리로 퇴임식을 대신했다. 또한 이날 지역 관계기관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아 전별금으로 내놓았는데 저녁 값도 본인이 부담하고, 전별금으로 받은 230만 원을 지역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그 의미가 남달라 하고 싶은 말과, 향후 계획을 물어봤다.

"그동안 공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직원들과 군민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작은 정성이지만 장학금으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농업 분야에서 그동안 경험한 것들이 많으니 지역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열심히 봉사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공직자로 생활하며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것도 우리 홍천군민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앞으로는 보답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40여 분 동안 두 번이나 결재 서류를 검토하는 김선균 과장을 더 붙잡고 있기가 미안했다. 어느 직원이 점심시간 전에 결재를 받아야 하는 서류를 들고 또 다가왔다. 기자는 근무 마지막 날이어서 한갓지게 있을 줄 알고 미리 인터뷰 요청을 하지 못한 점을 사과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김선균 과장은 그 동안 자연보호운동추진유공 내무부장관 표창(1996년), 푸른들가꾸기사업유공 농림부장관 표창(2002년), 농업농촌발전기여 농림부장관 표창(2007) 등을 수상했다.


태그:#홍천군, #김선균과장, #홍천군공무원, #홍천군청, #명예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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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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