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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나는 나그네가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 인생 세간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강산을 갈수록 낫게 여겨 적막 산중에 들고 아니 나오시는고"

김성원이 장인을 위해 지어서 증여했다. 이름은 임역령이 지었다고 한다. 경관이 수려하여 그림자도 쉬어간다고...
▲ 식영정(息影亭. 숨쉴식, 그림자영, 정자정) 김성원이 장인을 위해 지어서 증여했다. 이름은 임역령이 지었다고 한다. 경관이 수려하여 그림자도 쉬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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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4일 무등산 자락 두 번째 탐방으로 성산의 절경에 취해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식영정에 다녀왔다. 광주호 상류 기슭에 위치한 식영정은 원래 김성원이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었지만 송강정, 환벽당 등과 더불어 정송강 유적으로 불린다.

지금도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식영정이 있고 위로는 부용정과 서하정이 보인다.
▲ 느티나무 지금도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식영정이 있고 위로는 부용정과 서하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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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비가 곧 쏟아질듯 하늘이 어두컴컴해졌다. 제주도에서 북상한 장마전선이 남해안에 많은 비를 내릴 것이라고 한다. 올해도 기상이변 때문인지 5월부터 날씨가 무덥다.

광주의 도심 동쪽을 에워싸고 있는 무등산은 1972넌 도립공원, 201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석대, 입석대 등 수직 주상절리상의 암벽이 석책을 이룬 듯 치솟아 장관이다.

무등산에 대한 구체적 탐사는 차후에 하기로 하고 우선은 그 주변에 있는 유적을 탐방했다. 비록 국립공원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가사문화권도 분명 무등산 자락에 위치하기에 시커먼 구름이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내릴 것 같은 하늘이었지만, 식영정을 향해 출발했다.

식영정 가는 길은 광주에서 무등산 산장 방향으로 가다가 충장사를 거쳐 가는 방법과 담양에서 광주호를 거쳐 가는 방법 두 가지다. 충장사를 거쳐 가기로 했다. 이곳을 선호하는 것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S자형 도로여서 스릴도 있지만,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상큼한 녹음 냄새 때문이기도 하다.

이 계단을 올라 가면 식영정이 나타난다
▲ 돌계단 오솔길 이 계단을 올라 가면 식영정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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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숱하게 다니면서 지나쳤던 이곳이 350여년 전에 그토록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한 가사문학의 산실이었다니 나의 무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도심을 벗어나 우거진 나무숲 터널을 요리저리 뚫고 충장사를 거쳐 광주호까지 가는데 20여분이 걸렸다. 곧 쏟아질 것 같은 소나기도 잠시 멈춰 식영정 가는 나를 반기는 듯했다.

수백년 동안 고락을 같이한 식영옂의 명물이다.
▲ 소나무 수백년 동안 고락을 같이한 식영옂의 명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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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사문화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에 위치한 사적과 관련된 인물들의 연관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충장사의 김덕령, 환벽당의 김윤재, 식영정의 김성원, 소쇄원의 양산보, 정철의 송강정 등은 스승, 인척, 사돈, 학우 등으로 맺어져 있다.

혈족과 학우, 스승, 사돈 등으로 맺어진 인맥 현황
▲ 식영정사선 혈족과 학우, 스승, 사돈 등으로 맺어진 인맥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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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은 조카 김덕령이 무고로 옥사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 성산에 은거하고 장인 임억령을 위하여 명종 5년(1560년)에 식영정을 지어 증여한다. 그리고 그 밑에 본인의 호를 딴 서하당과 부용당을 짓고 정철, 고경명, 등과 같이 풍류를 즐기면서 식영정 이십영을 지어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다. 이후 송강 정철은 식영정 이십 영을 근간으로 성산별곡을 완성시킨다.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 지은 정자
▲ 서하당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 지은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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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

"매창 아침볕에 향기에 잠을 깨니 선옹의 하실 일이 곧 없지도 아니하다. 울 밑 양지 편에 외씨를 흩뿌려 두고 매거니 돋우거니 빗김에 다루어 내니 청문 고사를 이제도 있다 할까 망혜를 죄어 신고 죽장을 여기저기 옮겨 짚으니 도화 핀 시냇길이 방초주에 이어 있구나 잘 닦은 명경 중 절로 그린 석병풍 그림자를 벗을 삼아 서하로 함께 가니 도원은 어디 메오 무릉이 여기로다."

한 방울씩 내리던 빗방울이 굵어져 소나기가 되었다. 전면에 부용당이 있고 그 우측에 서하당, 그 우측 밑으로 장서각이 보인다. 비도 피할 겸 서하당에 올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정자 기와가 비와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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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당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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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장인을 위한 식영정을 짓고 자신의 정자인 서하당과 부용당을 짓는다.
▲ 서하당 높은 곳에 장인을 위한 식영정을 짓고 자신의 정자인 서하당과 부용당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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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항당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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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당 연꽃 핀 연못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서니 임억령, 김성원, 정철, 고경명 등 식영정 사선이 머물었던 식영정이 낭떠러지 절벽위에 우뚝 서있다.  정자에 둘러 앉아 솔방울 떨어진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도화 꽃과 멀리 서석의 구름을 바라보며 읊었을 성산별곡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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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호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전에는 창계천을 내려다 보며 성산을 노래했을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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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공산에 쌓인 잎을 삭풍이 거둬 불어 떼구름 거느리고 눈조차 몰아오니 천공이 호사로워 옥으로  꽃을 지어 만수천림을 꾸며도 내는구나. 앞 여울 가리워 얼어 독목교 비꼈는데 막대 멘 늙은 중이 어느 절로 간단 말인가. 산늙이의 이 부귀를 남에게 자랑 마오. 경요굴 은거지를 찾을 이 있을까 두렵도다."

벼슬을 초개같이 버리고 성산에 은거하여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 외씨 뿌려 밭 가꾸며 오솔길을 유유히 거닐다가 바람에 부딪히는 청아한 대나무 잎소리, 멀리 서석대 주위를 맴도는 운무 등을 바라보며 '식영정 이십영'을 읊었을까.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다
▲ 대나무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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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비록 정신을 카메라로 담지는 못헸지만 가사문화권에 대한 선인들의 역사적 배경과 그 분들이 노래했던  풍류를 같이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크나큰 소득이다.


태그:#식영졍, #성산별곡, #성산이십영, #정철, #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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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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