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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가정보원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대선 개입'과 'NLL 대화록'으로 갈라졌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에 요청해 '서해북방한계선(NLL) 대화록'을 열람한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날 "국정원이 보관해온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공공기록물"이라며 "공공기록물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열람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이를 받아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에 따르면"이라며 'NLL 대화록' 내용 일부를 보도했다.

그러나 기록학 전문가들은 새누리당의 열람부터 공개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몇 가지 위법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쟁점1]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국정원에 있으면 '공공기록물'?

지난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서명뒤 악수하는 남북정상 지난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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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위원은 공공기록물법 제37조 1항 3호에 근거,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중 NLL발언 열람을 공식 요청했다."

20일 오후 동료 정보위원들과 국회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국정원이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공공기록물"이라며 "법대로 열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월 검찰이 이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해석해 열람한 것이 그 근거 중 하나였다.

검찰은 2월 21일 '제18대 대선, NLL 관련 고소·고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판단한 이유를 "대통령 보좌기관이 아닌 국정원이 자체 생산한 후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내에서 관리한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생산 주체가 국정원이므로 이 대화록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닌 공공기록물이라는 뜻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이 생산한 문건'으로 볼 수 있을까?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지난해 10월 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우리 측은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수기로 기록했고 나도 수기로 꼼꼼히 기록했다, 그래서 그 두 개를 합해서 정상회담 대화록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정 등에 참여했던 기록학 전문가 A씨는 "그냥 대화록이 아니고 속기록 수준이라면 국정원이 생산했다기보다는 당시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에서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며 "김 전 원장이 그렇게 말했다면 더 국정원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조명균 전 비서관은 참여정부 때 계속 통일외교안보라인에서 일했다. 말할 필요 없이 청와대 소속이다. 결국 정상회담 대화록은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 차원에서 생산한 것이지 국정원 단독 생산이 아니다. 국정원이 정상회담 진행한 게 아니지 않은가."

똑같은 내용을 담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것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국정원 소유는 공공기록물로 볼 수 있냐'도 논란거리다. A씨는 "(현행 기록물관련 법에)  법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포괄적으로 해석한다면 국정원 대화록은 명백한 대통령지정기록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보관 장소나 그걸 담고 있는 매체가 아니라 내용"이라며 "내용이 같다면 제도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기록학계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기록학계에선 황당할 뿐"이라며 "비슷한 제도가 있는 다른 나라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쟁점2] '공공기록물관리법 제37조'에 근거해 열람할 수 있다?

"대통령기록물 관련 법 2조 1항에 대통령, 대통령의 보좌 및 경호수행기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생산한 기록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고 있는데, 공공기록물법 제2조를 보면 중앙기관·지자체에서 생산한 문건이나 자료들은 공공기록물이 돼 관련 법률에 따라서 공개 또는 열람할 수 있다"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은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 전날 "국정원 대화록은 공공기록물"이라던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해당 기관이 관리하고 있는 비공개 기록물에 대하여 제한적으로 열람하게 할 수 있다."

허 실장 등이 NLL대화록 열람이 가능한 '법적 근거'로 내세운 공공기록물법 제37조, '비공개 기록물의 열람' 절차에 대한 구절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 조항에 나오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 속하지 않는다. 공공기록물법은 기록물관리기관을 크게 영구기록물관리기관과 기록관, 특수기록관으로 구분한다.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는 중앙기록물관리관, 헌법기관기록물관리기관, 지방기록물관리기관과 대통령기록관이 해당하며 기록관은 공공기관이 설치·운영하는 곳이고, 특수기록관은 '통일·외교·안보·수사·정보 분야의 기록물을 생산하는 공공기관'이다.

즉,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은 현재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뿐이고, 국정원은 특수기록관에 가깝다.

또 제37조는 '비공개 기록물'의 열람 절차를 정의한 조항이기도 하다. 기록물은 크게 공개 기록물과 비공개 기록물로 나눌 수 있다. 비공개 기록물은 비밀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한 번 더 분류할 수 있다. 참여정부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우 한신대 기록정보관장은 "정상회담 대화록은 명확히 비밀"이라며 "비밀기록 열람은 보안업무규정이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A씨 역시 "정상회담 기록은 비밀이고, 비밀은 이렇게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국가기록원에 있는 대화록을 봤다면 그것은 '비밀'이므로, 안전행정부 장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국정원 기록을 열람했어도 공공기록물상 비공개 기록물 열람조항인 제37조와 전혀 상관없다, 근거조항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무리한 법 적용이었다는 뜻이다.

대통령기록물 총괄 업무를 맡았던 B씨는 "국정원이 NLL 부분만 발췌해 만든 기록을 비공개로 관리했다면, 비밀기록관리대상을 비공개로 했다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밀은 낱말 하나, 숫자 한 개 때문에도 비밀일 수 있다"며 "국정원이 발췌록을 비공개 기록물이라고 했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얘기했다.

[쟁점3] 'NLL대화록' 내용, 공개해도 괜찮나? "무조건 위법"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은 20일 기자회견에서 "(NLL 대화록을 보고)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우리 국민들이 그 내용을 봤을 때 얼마나 많은 실망감을 가질까…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저도 가슴이 많이 뛴다"며 "세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이란 말을 남겼다. 법에 따라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공기록물법은 법에 따라 비공개 기록물을 열람했어도 그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했다. 검찰 역시 지난 2월 수사결과 발표 때 "'대화록의 발췌본'은 2급 비밀인 공공기록물로서, 열람 목적 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고, 그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된다, 수사기관이어도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21일 "여당 정보위원들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표시한, <노 전 대통령 "문제는 미국… 난 북한 입장 대변">기사에서 NLL 대화록 내용을 전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도 "축약본을 열람한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의원들은 전한다", "복수의 여당 인사들은"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발언을 소개했다. NLL 대화록을 열람한 의원들이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안병우 관장은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의) 공개는 위법"이라며 "수사목적이면 수사에만, 정책 수립 목적이면 거기에만 써야 하는데 지금은 정쟁(政爭)을 위해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말 상식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 싶다, 정말로 국익이 뭔지 또 입법 취지가 뭔지 생각하지 않고 정략적으로 국가의 기록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이건 정상 간의 외교회담 결과로 속하는 문서다. 상대방이 있는 내용이고, 외국 중에서도 특히 북한과 관계가 얽혀 있다. 이걸 다 공개한다면 상호신뢰 원칙에 위배하고, 외교적 관례를 깨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수준이란 게 그야말로 형편없이 추락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가 앞으로 있을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냐."

B씨는 현재 상황을 "대통령기록물제도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행태"라고 우려했다. 그는 "쌀 직불금 때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직접 열람해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국회가 따로 집행했고, 열어보니 아무 문제 없었다"며 "정치적으로 흐지부지 끝났지만 지정기록물제도는 아주 무너졌다"고 평했다. 그는 "2008년부터 이명박 정부가 계속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 흔들기를)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 박근혜 정부에는 기대했다"며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태그:#노무현, #NLL대화록, #대통령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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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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