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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교육청이 98억 원에 달하는 '스마트교실 구축 지원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주도 의회 이석문 교육의원이 일선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상당수가 부정적 의견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에 2년 여 추진돼 온 스마트 교육의 실태를 짚어본다. - 기자 말

2년 전 6월, 대한민국은 스마트 교육을 선언했다. 교사인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신문을 통해 그 소식을 접했다. 교과서 개정도 아니고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전환하는 엄청난 일을 교육 현장과 아무런 교감 없이 일방 통보로 확정짓는 것을 보며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스마트 교육이 학생들에게 인지·정서·신체발달 면에서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을 알게 되었고 정부의 '거짓말'도 확인하며 큰 충격에 받았다.

하나씩 살펴보자. 스마트 교육의 추진 근거로 교과부는 2009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연구에서 디지털 읽기 소양 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우리 학생들의 인쇄매체 독해 능력도 조사 대상국 중 1위였다.

비유컨대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 1600m와 100m 경기에서 1위를 했는데 100m 우승은 숨기고 1600m 1위만 부각시키며 장거리 선수로 전환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런데 정부는 PISA 연구에서 우리 학생들이 인쇄매체 독해 능력에서 1위한 사실을 숨기고 스마트 교육에 대한 장밋빛 환상만 심어주었다.

스마트 교육 효과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더욱 흥미롭다. 교과부는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과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학생들의 창의력이 향상될 것이라 홍보한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가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과연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스마트 기기의 사용이 학생의 두뇌발달에 끼칠 악영향이다. 독일의 유명 뇌 연구가인 만프레드 슈피처 박사는 저서 <디지털 치매>에서 "장기간 과도하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정신활동이 감소되고, 기억력과 집중력도 떨어지는 등 뇌가 퇴화한다. 지금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스크린 미디어로 인해 학습능력의 상실과 컴퓨터 게임 중독을 경험하고 있다. SNS를 통한 인맥 관리와 가상의 우정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이는 사회성을 해치고 우울증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교육의 핵심인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정부의 첫 예산심의 과정에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는 "디지털 교과서 사업이 도입 효과는 물론 부작용에 대한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교과부가 요구한 예산을 절반 가량 삭감해 국회에 주문했다.

스마트 교육을 주관하는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는 세종시 등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선도학교의 우수 사례를 바탕으로 스마트 교육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현장 교사의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포털 다음에서 '스마트 교육'을 검색하면 나오는 홍보성 기사 중 한 교사는 "교육은 아이들을 실험대상으로 생각하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해결된 교육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해 가는 과정"이라며 "그런데 검증되지도 않은 내용을 당장에 교육현장에 접목해서 아이들을 통해 실험해 보려고 하는 현 상황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시 된다"고 우려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교과부가 지난해 2학기 초 배포한 디지털 교과서의 내용 또한 종이 교과서와 별로 다르지 않고 활용도가 낮아 외면받고 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앞으로 교과서를 모두 디지털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아무런 공청회나 타당성 조사, 효과성 검증도 없이 어떻게 수조원대 규모의 국책사업이 대통령 산하위원회의 제안과 대통령 승인만으로 결정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필자는 어느 대기업의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정부가 스마트 교육을 발표하기 수개월 전 삼성경제연구소는 디지털 교과서를 보급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 PC를 보급할 경우 한국·미국·일본에서만 8500만 대의 잠재시장이 있으며 관련 서비스의 새로운 시장도 창출할 수 있다는 언급이다. 디지털 교과서를 이용해 교육방식이 '문제해결, 공유 및 협력'으로 바뀌며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최적의 교육이 가능하고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스마트 교육의 근간을 제시한 것도 삼성이다.

아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을 자본의 논리로부터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을 대기업에 '미래의 먹을거리'로 길들이는 길을 내줄 것인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는 스마트 교육에 대한 제주도의 추경예산안 심사는 우리 교육의 공공성을 가늠 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수열 기자는 청송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 글은 미디어 제주에도 기고했습니다.



태그:#스마트 교육, #제주도 스마트교실구축, #스마트교육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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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열 기자는 '포항 지진 - 그것이 알고 싶다' 블로그(http://blog.naver.com/bluebirdinme) 운영자로 평범한 삶을 꿈꾸는 포항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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