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여직원 성추행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자신의 상사와 밤늦게 술을 먹다니, 그 인턴여직원도 좋아서 술을 마신 게 아니냐."

한 때 유명 연예인의 연예인 지망생 성폭행 사건도 화제였다. 그 때도 일부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 연예인 지망생이 '꽃뱀' 아닐까. 남자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먹다니, 그 여자의 '행실'이 문제다."

2011년 캐나다 토론토에 '마이크 생귀네티'란 경찰관이 한 법과대학원 강연에서 "여자들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slut)처럼 보이는 난잡한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하자 전세계적으로 대규모 슬럿 워크(Slut Walk)가 일어났다. 행진에 참여한 수 만 명의 여성은 속옷 같은 도발적인 옷을 입고 "내가 어떤 옷을 입건 (남자들은) 상관 말라"는 피켓을 들고 도심을 행진했다. 시위자들은 성범죄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 여성을 비난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내가 무엇을 입고 있더라도 심지어 네 앞에서 벗고 있더라도, '아니오'(No)는 '아니오'(No)다."

"우리는 '강간하지 말라' 대신 '강간당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나에게 '어떻게 입을지' 말하지 말고, 그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말하라."

슬럿 워크 피켓의 문구들은 가해자 중심 사고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건 성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고, 가해자의 죄를 묻지 못하게 한다. 이는 이미 정신과 육체의 고통에 처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다. 여성이 무엇을 입고 있든, 어디에서 누구와 있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일어나선 안 된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노출 의상과 성범죄 발생률 간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 성범죄자의 범행동기를 '성'보다는 '권력'으로 풀이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단순히 성욕을 느껴서라기보다 가해자 남성이 자신보다 약한 대상인 '여성'을 굴복시킨다는 생각에 느끼는 쾌감이 범죄의 동기라는 거다.

이렇듯 성범죄의 원인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해자 '남성'을 대상으로 한 제대로 된 예방과 처벌 없이 그저 여성이 행실을 조심하길 원한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전 세계 135개국 중 108위로 최하위권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여성은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 "너무 짧거나 몸에 붙는 옷을 입지 말라" "남성과 술을 먹을 때는 조심해라" 등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한국사회는 여성에게 성범죄 당하지 말라고, 스스로 행동을 조심해 남성에게 성범죄를 저지를 '여지'를 주지 말라 고 말해왔다.

여성은 한 인격체로서 어떤 옷을 입고 어느 장소에 갈지 자유로우며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여성의 선택이며 개성이지 성범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떠한 이유로도 성범죄는 정당화 될 수 없다.

이제는 그동안 알려진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잘못을 제대로 따질 수 있어야 한다.


태그:#성범죄, #가해자중심, #여성인권, #슬럿워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