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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돼버린 경쟁에 미쳐, 똑같은 틀 안에 갇혀, 아무도 모르게 묻혀… 고개를 들어봐 아무도 없어, 네 위엔 아무도 없어,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죄인이 돼버린 춤 추고 노는 사람들 여기로 여기로 다 같이 뭉쳐… 노래나 부르며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살고 싶어… 그 누가 뭐래도 네가 더 멋져, 즐기는 그런 게 멋져, 내 눈엔 네가 더 멋져….

그룹 써니힐의 노래 <베짱이 찬가>의 가사이다. 이 노래는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개미처럼 열심히 노력하여 미래를 준비해야만 추위에 떠는 겨울날의 베짱이 신세를 면할 것이라는 교훈을 가지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를 읽는 독자들은 모두들 예술을 사랑하고 현재를 즐기는 베짱이를 한심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베짱이 찬가>는 이 교훈을 비틀어 생각한 노래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개미처럼 살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베짱이처럼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아내 인기를 끌었다.

<베짱이 찬가>의 가사처럼, 경쟁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인생을 사는 베짱이의 모습은 확실히 멋져 보인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재기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패배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경쟁 현실을 즐거이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뜻 베짱이가 되지 못하고, 개미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승자 독식 사회라 할 수 있다. 일부 승자들에게 부귀영화가 집중되어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개미처럼 죽어라 노력하며 타인과 경쟁한다. 특히 이러한 경쟁은 오늘날의 20대 청년들에게 더 가혹히 다가온다.

기성세대에서는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고, 굳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취업의 문은 활짝 열려 있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 한국 경제 사회의 모습은 매우 가혹해졌고, 취업의 문도 아주 좁아져버렸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서 평균 임금 88만 원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 오늘날의 20대, 이른 바 '88만원 세대'들에게 베짱이, '호모 루덴스'의 삶은 아득히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호모 루덴스란 무엇인가. 기존에 인류를 지칭하는 말들로는 생각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 걷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에렉투스', 정치적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폴리티쿠스', 호모 하빌리스'(손을 사용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등이 있었다. 호모 루덴스라는 말은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새로이 내어 놓은 말이다. 호모 루덴스란 유희하는 인간, 쉽게 말해 놀이하는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

하위징아는 놀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라 말하며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유희와 놀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하위징아가 정의내린 놀이는 할 일을 미뤄가며 장난을 치고 노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주어 다양한 창조활동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과 대립된 개념이 아니라 힘겨운 노동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즐거운 일이라면 이 역시도 놀이라 할 수 있다.

쉬운 예로 언론사 기자 이야기를 해보자면,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신속히 취재하기 위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밥도 제때 먹지 못한다. 본인만의 생활을 포기하고 취재 현장을 쫓아다니는 일은 몹시도 힘든 일이지만 기자 스스로가 그 일을 좋아서 하는 것이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기자의 '일'임과 동시에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88만원 세대들에게 있어 놀이와 할 일은 융합될 수 없는 극과 극의 개념이 되어버렸다. 명문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잘 되지 않는 것이 최근의 현실이다.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는다.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조차도 취업 전선에서는 라이벌이 되어버린다. 스스로를 채찍질 해가며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도 모자랄 판국에 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20대들이 겪게 될 경쟁이 20대들끼리의 경쟁인 '세대 내 경쟁'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기존의 기성세대들과의 경쟁 또한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치명적인 것은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패자부활전의 기회도 주지 않는 승자 독식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88만원 세대로서는 놀이와 일을 동일시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는 달리, 현대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놀 줄 아는' 호모 루덴스들이다. 공업이 경제의 주축을 이루며 놀이보다 노동이 중요했던 과거 산업사회와는 달리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는 문화 콘텐츠 사업이 주를 이룬다. 풍부한 창의력과 상상력 등의 능력을 갖춘 이들이 주목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발 맞춰 기업에서도 보다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호모 루덴스들을 요구하고 있다. "잘 놀아야 성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문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들의 수가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한정적인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하고, 그러한 경쟁에 지쳐 오히려 창의성과 상상력을 잃어가는, 노는 법을 잊어버리고 일을 즐기지 못하게 되어 호모 루덴스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이야기이다.

뭐든 즐기며 하는 사람이 더 잘 하는 법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 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도 재미가 있으면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에 따라 능률도 절로 오르게 된다. 무조건 '열심히'만 하는 88만원 세대들에게는 일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호모 루덴스의 삶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노는 법을 잊어버렸다. 개미로서의 역할을 강요하며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에, 놀이조차도 놀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재의 20대들에겐 호모루덴스의 삶은 무리가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그:#88만원세대, #호모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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